영화 <소녀가 소녀에게> 포스터.

영화 <소녀가 소녀에게> 포스터. ⓒ 디오시네마

 
여고생 미유리(호시 모에카)는 동급생들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한다. 그 순간 손목 위에 누에가 나타난다. 미유리는 깨달은 게 있는지 자살시도를 중단하고 누에에게로 관심을 돌린다. 그는 누에에게 츠무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매 순간 데리고 다닌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이들은 미유리의 유일한 친구였던 츠무기까지 버려버리고, 다시 혼자가 된 미유리 앞에 묘령의 소녀가 나타난다. 

다음 날 학교에는 학생 한 명이 전학왔는데 전날 미유리를 도와준 소녀였다. 이름도 신기하게 토미타 츠무기, 미유리가 누에에게 붙여준 이름과 같았다. 또 다시 괴롭힘을 당하는 미유리는 어느 날 복도의 누에 실을 따라 간다. 그곳에는 츠무기가 칼로 손목을 긋더니 누에 실을 뽑고 있었다. 놀라 도망친 미유리, 다시 한 번 자살시도를 하는데 뒤따라온 츠무기가 막는다. 

미유리는 츠무기에게서 위로 받고, 누에 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 다음 날 학교에서 미유리와 츠무기는 은밀한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함께할 것을 맹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츠무기 덕분에 몰라보게 예뻐진 미유리는 학교에서 점점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둘만 오키나와 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한다.

그 이후부터 츠무기가 조금씩 미유리에게서 멀어지는 듯하다. 지각을 자주 하기도 하고 미유리, 친구들과 조금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츠무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미유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훌륭한 합작품

<소녀가 소녀에게>는 신인 감독 에다 유카와 신인 배우 호시 모에카, 모토라 세리나가 함께 한 일본 독립영화이다. 1994년생으로 이 영화를 제작한 2017년에는 불과 20대 초반의 나이였거니와 두 주연배우는 더 어렸기로서니, 합심해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새삼 대단해 보인다. 해외 영화제에서 제법 소개되었고 일본 개봉 직후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1월 9일 개봉했고 감독이 내한해 이례적으로 10일과 11일 GV를 진행했다. GV에서 에다 유카 감독은 본인의 14살 때 체험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그는 극 중 미유리처럼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불안 장애의 일종인 선택적 무언증(함구증)에 걸려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에다 유카 감독은 배우로, 사진작가로 활동한 경험도 있다. 이는 <소녀가 소녀에게>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배우가 화면에 어떻게 잡힐지 잘 알고, 조명과 빛 모두를 잘 활용할 수 있었을 테다. 본인의 경험에서 오는 진심 어린 대사와 함께, 영화라는 영상 이미지의 총합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특장점을 잘 살려냈다. 의외로 볼 만한 구석이 많은 영화이다. 

십대만의 감수성을 세밀하게 표현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영화는 전반적으로 몽환적이다. 초반엔 흐리멍텅하고 중반 이후엔 빛이 주는 자연스러운 화려함이 발휘되었다. 미유리가 혼자였을 때의 모습은 츠무기를 만나서 점점 바뀐다. 그를 둘러싼 환경도 자연스럽게 변화시켰을 테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 이미지는 관객이 아무 생각 하지 못하고 그대로 빨려들어가게 만든다. 

미유리와 츠무기가 함께 하는 순간들은 특히 인상적이다. 나무와 꽃과 풀이 만연한 곳에서 햇빛 찬란한 순간의 자연광을 있는 그대로 가져와 두 주인공을 함께 돋보이게 한다. 그 순간 그들이야말로 세상과 삶의 주인공이다. 그런가 하면, 내부에서는 독특한 화면분할로 신선함을 자극한다. 여고생의 톡톡함을 강조 아닌 부각시키는 데 만점활약하였다. 

하여, 영화는 세밀하기 그지없다. 십대 특유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 나무랄 데가 없었다. 현실과 꿈과 판타지를 구분하기 힘든 편집으로 이어나가는 방법론이 빛을 발했다. 비록 개봉하는 데 의의가 있을 정도겠지만, 이 영화가 한국에도 개봉할 수 있었던 건 10대 소녀의 감수성이 만국 공통의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거쳤을 통과의례를 이 영화는 공감 있게 그려낸다. 

빈 껍데기만 남은 누에, 그리고 학생

<소녀가 소녀에게>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누에'의 존재다. 인간을 위해 실을 뽑아내는 데에만 삶의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누에. 대부분 누에고치 속에서 산 채로 삶아 죽임을 당한다. 혹시라도 살게 되어 나방이 되어도 팔과 다리에 근육이 없어 날지 못하며 통각이 없기 때문에 이틀 만에 죽고 만다. 아프지도 무섭지도 괴롭지도 않은 무통각의 생명체, 미유리와 츠무기가 동경하는 대상이다.

극중에서 누에는 츠무기로 변신한다. 미유리와 츠무기라는 여고생, 나아가 아직 세상에 나가지 못한 모든 10대들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츠무기는 '우리들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될 뿐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학창시절 동안 학생들은 하고 싶은 게 없고 하고 싶은 걸 할 수도 없는 빈 껍데기일 뿐이라는 의미다. 통곡의 누에(학창) 시절을 지나 나방(어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이 더욱 뼈아프다. 

죽음까지 각오한 미유리가 사실은 너무나도 살고 싶어했다는 건 슬픈 아이러니다. 그녀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던 것이다,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사춘기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라며 '많은 경험을 해야 어른이 된다. 누구나 있는 마음의 병을 받아들이라'고 말할 뿐이다. 엄마도 집 근처나 통학 가능한 대학에 가는 게 좋겠다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다.

오로지 츠무기만이 그녀를 알아주었고 그녀의 진심을 끌어냈으며 그녀 곁에 있었다. 츠무기라는 소녀는 미유리라는 소녀에겐 삶의 모든 것이었을 테다. 반면, 미유리는 츠무기에게 무엇이 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끝까지 보면 그 슬픈 내막을 들여다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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