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영 작가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2019)으로 제 70회 베를린영화제 포럼 익스팬디드 섹션에 초청된 김아영 작가/감독

▲ 김아영 작가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2019)으로 제 70회 베를린영화제 포럼 익스팬디드 섹션에 초청된 김아영 작가/감독 ⓒ 민경복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19' 후원 작가로 선정되었던 김아영 작가의 영상작업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2019)이 베를린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8회를 맞는 '올해의 작가상'은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창의적 역량을 보여주는 작가들을 발굴·지원하는 대한민국 대표 미술상이다.

한국의 근현대사, 지정학, 이주 서사 및 정보의 이동 등 동시대적 문제들을 라디오 드라마 작업 (Sonic Fiction),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등을 통해 다각도로 다뤄온 김아영 작가의 신작은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2017)의 후속작으로 난민 문제를 SF영화처럼 보여준다. 이 2 채널 비디오 설치작업은 비주얼아트와 영화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포럼 익스팬디드 (Forum Expanded) 섹션에 초청되었다.

올해로 15주년을 맞는 포럼 익스팬디드 섹션의 모토는 '문제의 일부 (Part of the Problem)'다. 아르스날 필름 & 비디오아트 인스티튜트를 관장하는 스테파니 슐테 스트라타우스(Stefanie Schulte Strathaus) 프로그래머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극우가 급성장하는 정치적 기류와 어우러져 곳곳에 혐오가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가 직면한 시대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고 운을 뗀 뒤, "많은 경우 대중은 소셜미디어 및 언론 등에서 이주, 인종차별, 성차별 등 이슈를 전체적인 시스템의 맥락으로 보질 않고, 개별적인 사안으로 따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프로그래머는 "김아영 작가는 '인간의 이주'와 '데이타의 이주'라는 두 가지 복합적 요소를 가상의 시공간에 흥미롭고도 명확하게 표현해냈다"며 "우리는 이 두 사안이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인지하면서도 언어로 표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데, 김 작가는 미래 관점에서 이주의 역사와 디지털화를 바라보고 있다"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김아영 작가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주 문제에 천착해 오랜 기간 작업해왔다. 신작 역시 난민 문제를 다뤘다. <다공성 계곡> 연작의 주인공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가상의 광물 덩어리이자 데이터 조각으로 구멍이 많은 다공성 계곡이란 가상공간에서 태어난다. 예기치 못한 계곡의 폭발로 인해 떠돌다 크립토밸리에 불시착하고 그곳에서 정착에 필요한 이민국 심사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주자를 면역체계를 위협하는 낯선 바이러스로 간주하는 당국의 결정으로 스마트 그리드라는 감옥에 구금된다. 그곳에서 자신을 구해주려는 전령을 따라 섬 내부로 이동하게 된 페트라는 '어머니 바위'라는 초월적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더 단단한 공생의 시기로 나아가게 된다.  

독일의 현대 예술 전문 웹진, <베를린 아트 링크> (Berlin Art Link)는 "글로벌 이주, 몽골의 가상 신화적 요소, 제주도로 유입한 예멘 난민의 이주 등 복합적 요소를 다양한 층위로 풀어냈다"며 올해 주목해야 할 작품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김아영 작가의 영상작업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종료되었으나, 베를린 사일런트 그린 (Silent Green) 갤러리에서 다른 작품들과 함께 3월 22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김 작가의 작품은 권위 있는 아스날 인스티튜트의 아카이브에도 초대되어 향후 이 기관의 자체 배급지원을 통해 세계의 다양한 관객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아래는 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가 한창이었던 지난 2월 26일 인근 카페에서 김아영 작가와 만나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현실 문제를 가상의 상상력으로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전시회 풍경 베를린영화제 포럼 익스팬디드 섹션에 초청된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비디오 설치작업을 관객이 Silent Green 갤러리에서 관람하고 있다.

▲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전시회 풍경 베를린영화제 포럼 익스팬디드 섹션에 초청된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비디오 설치작업을 관객이 Silent Green 갤러리에서 관람하고 있다. ⓒ 클레어 함

 
-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2017)및 후속작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2019)을 기획하게된 계기가 궁금하다.
"미술, 소위 아트스트 필름, 무빙 이미지 작업은 영화처럼 계획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진 않다. 예산도 훨씬 적다. 첫 작품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은 2017년에 제가 당시 프랑스에서 레지던스 활동을 하고 있을 때 호주 멜버른 페스티벌에서 전시제의를 해왔다. 작가 한 명을 초청해 개인전을 하는 페스티벌에 초대받게 되어 처음으로 사변적 픽션, SF적인 내러티브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전에도 내러티브 및 픽션을 만드는 작업을 즐겼었는데 아예 본격적으로 현실의 문제들을 비틀어서 가상의 현실을 제시하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작업이 무척 재미있었다. 인간의 존재가 아닌, 가상의 존재 페트라 제네트릭스가 출연해 상징체처럼 행동하는 그런 요소도 마음에 들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프랑스에서 한국에 돌아온 2017년 말 이후 예멘 난민 이슈가 불거지면서 너무 충격을 받기도 했고, 심각하게 이 상황을 관망하기도 하면서 이 주제에 대해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를 만들게 되었다."
 
-사변적 픽션과 SF 장르를 혼합하는 형식이 무척 참신하고 흥미롭다.
"제가 사변적 픽션이라는 형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리얼리즘적 형식으로 그리는 게 이미 관객들에게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미적인 형식의 개발, 미적인 자율성,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새로운 인지적인 효과를 도모하는 것이 예술의 의무라고 본다. 이런 가상의 형식을 통해 현실을 다룰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변적 픽션을 깊이 연구하고 있다. 이전에도 이런 선례가 많은데, 특히 흑인 해방 담론의 중요한 문화적 운동이었던  아프로퓨처리즘 (Afrofuturism)은 <블랙 팬서>(Black Panther)라는 마블 영화로도 나왔다. 

이것은 원래 흑인의 해방 서사, 자기 긍정 담론이었다. 그런데 액티비즘의 형식이 아니라, '우리는 현재 차별과 핍박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엄청난 지능과 기술을 가진 외계인이다' 내지는 '우리가 지구에 불시착해 소외되고 있을 뿐 우리는 고향의 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등의 픽션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며 긍지를 쌓는 서사다. 국내에서 전시할 때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예멘 친구들이 꽤 많이 와서 봤고 그래서 아랍어 자막도 준비했다. 이들이 자기를 긍정하는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 현실을 극복하고 대안을 상상하기 위한 장치로 흑인 SF소설이 무척 많고, 페니미즘 사변소설 또한 발달해 있다."  

- 이주자의 신분이 된 신적 존재로 외계인, 추방자, 난민, 이주하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고 스스로 표현했는데 이런 페트라 제네트릭스를 구상하게 된 배경은.
"주인공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와 관련된 '바위에서 태어난 신'을 묘사하는 라틴어 단어이기도 하고, 고고학이나 신화학 중 바위에서 태어난 생물의 신화를 설명할 때도 사용하는 용어다. 고대 페르시아에는 빛의 신, 미트라를 섬기는 미트라교가 있는데 그 신이 바위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어 페트라 제네트릭스라고 불렸다고 한다. 전 그 명칭이 흥미로웠다. 또한 이 신은 남성이지만, 종종 여성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돌덩어리이면서 초지성이기도 하고, 데이터 덩어리이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존재. 동시에 추상적이고 상징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이고 고대의 지식을 지닌 복합적인 존재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차용하게 되었다." 
 
- <다공성 계곡>이라는 제목뿐만 아니라, 주인공 페트라 제네트릭스에서도 다공성이라는 요소가 눈에 띈다. 본인에게 다공성의 의미는 무엇인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세 요소를 구상했다. 첫째는 지질학적인 다공성의 측면이다. 현재 인류세의 시점에서 인간이 지하의 광물을 추출하는 가운데 땅속이 비어가고 알 수 없는 구덩이들이 생기고 있다. 그 보이지 않는 지하를 상상할 때 구멍이 많은 다공성을 생각했다. 두 번째는 서사 구조의 다공성이다. 후속작은 서사가 좀 더 명확한 반면, 전작은 서사가 끊어져 있다. 좋은 플롯이라고 일컬어지는 매끄러운 플롯이 아니고 일부러 구멍이 많고 분절적인 플롯을 구상했다. 플롯에 구멍이 많다는 의미에서 다공성을 적용했다.

또 하나는 데이터 속에 보이지 않는 구멍들이다. 아무리 발전된 저장매체 (CD, DVD, 하드 드라이브)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소실되는 정보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데이터를 새로운 저장매체로 옮기고 백업을 하는 건데, 그런 데이터 사이의 보이지 않는 마그네틱 소실, 자기장에 의한 소실을 비트 썩음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데이터 소실을 막기 위해 업체에 돈을 지불하며 데이터 장치, 클라우드 마이그레이션을 하지 않나. 이런 이유로 데이터 속에 보이지 않는 구멍들도 다공성의 한 측면으로 구상했다.  

왜냐면 이 페트라의 이주가 생명체, 난민의 이주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21세기에 피해갈 수 없는 데이터 이주도 뜻한다. 우리가 이동할 때마다 IP주소나 디지털 풋프린트 등 정보를 남기지 않나. 또 우리가 가진 정보를 안전하게 클라우드로 이주시켜야 하는 필요성으로 바이러스 확인하듯 데이터의 검역도 필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멘 난민들이 한국에 왔을 때 여러 명을 만나서 인터뷰했는데 자신이 겪었던 격리 검역 조치,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기까지 과정 등 그 시간의 기억들이 마치 바이러스 검역을 당하는 듯 느껴졌다고 들었다. 행정적 절차, 법이 어떻게 인간 (이주자들)을 통제하는가에 집중했다. 저도 유럽에서 이주자로 지내며 많이 경험했던 부분이다."

- 작품에서 몽골의 신화적 요소도 보이는데 실제로 몽골에도 직접 다녀왔다고 들었다.
"지난해에 아시아 이주 서사에 대해 연구하도록 주한독일문화원 (Goethe Institut)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다. 다국적의 큐레이터와 작가들이 참여해 지리적 이주 및 문화적 이주 등 다면적 양상을 고찰했던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자연스럽게 몽골의 땅과 바위를 조사하게 되었다. 돌에 관한 신화가 많이 남아있어서 매료되었다. 그 내용을 이 작품에도 많이 녹였다. '어머니 바위'라는 바위가 실존한다. 몽골에 갔더니 벌판에 '어머니 바위'가 인간과 유사한 형상을 하고 있고 인간의 옷가지를 입고 있었다. 

현지인들은 바위를 엄마라 부르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그들은 이 바위가 우주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모두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샤머니즘 신앙을 두텁게 믿고 있었다. 그 바위는 지구가 탄생했을 때 생겨났고 영겁의 세월 지구의 기운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 영험하다고 믿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저는 신작에서 '어머니 바위'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 섬의 데이터 센터, '모든 기억의 저장소'이자 '초지성적 존재'로 상정했다. 바위는 태고적 물질이기도 하지만,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는 관념을 그렇게 표현했다. 페트라는 존재가 이 '어머니 바위'와 융합하면서 더 단단하고 나은 공생의 시기로 나아간다. 공생이라는 가치가 너무 중요한 것 같다."

 
다공성 계곡 2에 나오는 광고 장면  이 영상에 나오는 디지털 신원정보 시스템이주통합프로그램 (CPIP) 광고. 김아영 작가는 그간 찾아본 테이터 이주에 관한 기술등 많은 기사들로 착안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 다공성 계곡 2에 나오는 광고 장면 이 영상에 나오는 디지털 신원정보 시스템이주통합프로그램 (CPIP) 광고. 김아영 작가는 그간 찾아본 테이터 이주에 관한 기술등 많은 기사들로 착안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 김아영 작가

 
- 트릭스터(Trickster)는 신화에서 신과 자연계의 질서를 깨고 장난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인물로 선과 악, 파괴와 생산 등 양면성을 겸비한 인물들인데 제목의 일부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맞다. 트릭스터는 혼돈을 초래하기도 하고 의도하는 것을 알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인데 작품에서는 파도 가면, 지층 가면, 돌 가면을 쓴 세 사람을 지칭한다. 약간 위협적이기도 한데, 나중에는 페트라를 스마트 그리드에서 구해주는 전령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들은 극 중에서 모호한 존재이지만 가면을 벗고 나면 예멘인들임이 드러난다. 한국에 도착한 예멘인들은 한국의 시스템을 위협하는 혼란을 가져오는 트릭스터같은 존재이고, 극 중 가면을 쓴 존재들은 극에서의 정체를 알 수가 없기에 이중적인 의미의 트릭스터를 의도했다. 

그들에게 가면을 씌운 이유는 신분 노출의 문제뿐만 아니라, 난민이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방식이 너무 지겨웠기 때문이다. 늘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약한 존재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시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난민의 존재를 강화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와 똑같은 당당한 주체로 보이길 원했다. 사실, 영어 선생님, 운동선수였던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우리도 언제든지 기후난민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이들이 가면을 벗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존재인데 가면을 벗는 순간 인지적 깨달음 혹은 인지적 충격이 한국 관객들에게 확실히 느껴졌다. 그런 효과들을 도모했다."

- 이 작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난민들과 만나 소통했다고 들었는데 아티스트로서 이들과 작업한 경험은 어땠는지.
"너무 많이 배웠다. 여러 차례 만남을 갖고 집에도 초대하면서 가까워졌다.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의 행정절차를 조사하기도 하고, 난센이나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MAP)등의 여러 관련 단체에서 어떤 대응을 받는지도 경험했다. 저도 유럽에 있었기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삶에 놓여있다는 것이 어떤 건지 저도 너무 잘 안다. 저는 국경과 경계를 넘으며 미지의 위험한 상황에 자신을 맡기는 용기를 높은 가치로 여긴다.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얼마 전엔 아랍에미리트 스카이뉴스팀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난민의 공존에 대한 다큐제작을 위해 인터뷰했을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 이주는 최근만의 이슈가 아니라, 역사의 필수인 것 같다. 21세기 이주의 특색이 데이터와 난민 이주라고 규정한다면, 과거와 미래의 이주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앞으로 이주 양상이 많이 달라지리라고 본다. 이 영상에 느닷없이 나오는 이주통합프로그램 (CPIP) 광고는 그간 찾아본 테이터 이주에 관한 기술 등 많은 기사들로 착안하게 되었다. 지금 IT업계들이 개발 투자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가 '디지털 신원정보 시스템'이라고 한다. 앞으로 해수면 상승 및 많은 재난으로 인해, 엄청난 수의 환경 난민이 예상된다고 한다. 그들이 여권을 갖고 떠날 수 없을 때, 이들의 신원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신원을 지문이나 홍채 등등 생체정보 일부를 등록해서 글로벌한 디지털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인데 유엔난민기구에서도 이를 시범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난민의 신원을 관리하는 편리한 점도 있으나, 정치적 난민의 경우 신원이 노출되면 안전에 위협이 될 수도 있고, 이 정보로 비지니스 거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생명이라는 것이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도 있고, 생명이 정치 통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의 연계 도서도 출판했다고 들었는데 주로 무슨 내용인가. 
"그건 제가 작업 때 만든 프로젝트 스크립트의 일부들, 단문들, 철학자들이나 평론가들이 바라본 제 작업에 대한 다양한 시점과 이미지들이다."

- 지난 1월 서울현대국립미술관에서 '페트라 제네트릭스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강의 퍼포먼스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앞으로 계속 퍼포먼스도 할 의향이 있는지.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워낙에 장르가 중첩되니까 자연스럽기도 하다. 저는 특히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제가 최근에 다공성 계곡에 관해서 렉처 퍼포먼스를 했다. '페트라 제네트릭스'의 기원과 신화에 대한 강의였는데 제 목소리를 다중개체처럼 계속 변조하면서 강연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전작에서 '사변적 존재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주 서사 이외에도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지.
"제 작업 초기부터 계속 관통하는 주제는 지정학인 것 같다. 이주 서사도 마찬가지로 이 범주에 연결되는 주제다. 제가 중동 이슈에 관심이 많다. 저의 부친이 80년대 건설회사 직원으로 중동에 십년간 계셨다. 그래서 예멘 난민 이슈에도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이전에 작업했던 음악극 프로젝트에서는 오일머니를 찾아갔던 한국의 근대사와 석유자원으로 인해 잦은 전쟁을 치러야 했던 중동 근대사의 오르내림을 목소리를 통한 픽션으로 다루기도 했다. 앞으로 중동관련 소재로도 영상작업을 하고 싶다. 

그리고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해서 주류 백인 미디어에서 바라보는 아시아의 미래성이라는 것에도 관심이 간다. 지난 수십 년간 SF영화에서 기술적으로 발전된 일본, 차이나타운의 이미지들이 많이 나오지 않나. 이전에 <블레이드 러너>의 전광판 이미지들을 포함, 작년엔 한국의 부산이 <블랙 팬서>의 로케이션 촬영지로 나오면서 부산도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퓨처리즘', 내지는 '테크노 오리엔털리즘'의 장소가 되었다. " 
   
감독의 바람
 
어머니 바위와 페트라 제네트릭스의 만남 "몽골에는 돌에 관한 신화가 많이 남아있어서 매료되었다. 그 내용을 이 작품에도 많이 녹였다. '어머니 바위'라는 바위가 실존한다. 이 바위는 지구가 탄생했을때 생겨났고 영겁의 세월동안 지구의 기운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 영험하다고 믿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저는 신작에서 '어머니 바위'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 섬의 데이터 센터, '모든 기억의 저장소'이자 '초지성적 존재'로 상정했다. 페트라는 존재가 면역을 위협하는 낯선 난민/데이터 존재인데 이 어머니 바위와 융합하면서 더 단단하고 나은 공생의 시기로 나아간다."

▲ 어머니 바위와 페트라 제네트릭스의 만남 "몽골에는 돌에 관한 신화가 많이 남아있어서 매료되었다. 그 내용을 이 작품에도 많이 녹였다. '어머니 바위'라는 바위가 실존한다. 이 바위는 지구가 탄생했을때 생겨났고 영겁의 세월동안 지구의 기운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 영험하다고 믿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저는 신작에서 '어머니 바위'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 섬의 데이터 센터, '모든 기억의 저장소'이자 '초지성적 존재'로 상정했다. 페트라는 존재가 면역을 위협하는 낯선 난민/데이터 존재인데 이 어머니 바위와 융합하면서 더 단단하고 나은 공생의 시기로 나아간다." ⓒ 김아영 작가

 
-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아트 디렉터가 '무엇이 영화인가?' (Was ist kino?)라는 제목의 철학적인 글을 환영 인사로 대신하며 영화라는 매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본인의 작업이 소개된 포럼 익스펜디드 섹션도 영화 매체의 의미를 계속 탐문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지난 15년간 해오고 있는데, 본인의 비디오 설치도 영화, 시네마의 영역으로 포함된다고 보는지.
"저는 어떤 장르나 미디어 형식이든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다고 본다. 시각예술은 모든 걸 흡수하기도 하고 내주기도 하고 진입장벽이나 경계가 거의 없는 편인 반면, 영화는 너무 공고한 정석의 개념을 만들어 놓고 '영화란 이런 것'이고, '좋은 것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이 보수적으로 유지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제가 베를린영화제에 놀란 것은, 이러한 영화의 확장성을 고민하는 일을 15년 전부터 지속해 왔다는 점이었다.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때부터 실험적인 무빙 이미지 작업을 초청하고 영화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 것이 참 흥미롭다. 앞으로 영화제의 이런 크로스오버 흐름은 더 많아질 것 같다."

- 2채널 비디오로 작업한 이유는.
"전형적인 포맷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가 미디어를 경험하는 환경이 영화관에 가서 거대한 압도적인 스크린에서 제한된 시간에 보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비디오 보다가 비메오 보다가 갑자기 전화하다가 메신저를 사용하는 등 정신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당히 분절된 미디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게 인간의 본질처럼 되어가고 있다. 스크린, 창을 두 개 띄워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가끔은 하나의 이미지로 확장되다가, 따로 이미지가 분할되기도 하는 것처럼, 여러 층위의 시간대와 여러 층위의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 신작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은 전시도 가능하고 극장 상영도 가능하게 작업했기에 앞으로도 다른 영화제에서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영화제에서 소개하는 것에 관심이 있고 환영한다. TV나 극장 배급에도 열려 있다. 포럼 익스팬디드 섹션은 아스날인스티튜트에 의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초청된 작품들은 아카이브에 등록된 후, 자체 배급지원도 받는다고 알고 있다." 
  
김아영 작가는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런던칼리지의 커뮤니케이션 학부에서 현대사진을 전공했고, 첼시예술대학 (Chelsea College of Art)에서 순수미술로 석사학위를 마친 재원이다.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참고 영상

1채널버전 트레일러 

2채널버전 트레일러 
김아영작가 다공성계곡 2: 트릭스터 플롯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 포럼익스팬디드 베를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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