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가 정상적으로 리그 일정을 다 마치지 못하고 조기 종료되었지만 KBL(한국농구연맹)은 비계량 부문에 대한 시상은 정상적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문은 역시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를 가리는 MVP와 신인왕 타이틀이다. 

지난 10일까지 정규시즌 MVP 투표가 이뤄졌다. 프로농구 MVP는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를 나눠 시상한다. 국내선수 MVP는 김종규(원주 DB), 허훈(부산 KT), 송교창(전주 KCC)이 후보다. 사실상 김종규와 허훈의 2파전에 송교창이 도전하는 모양새다.

송교창은 올해 국내선수 득점 1위, 공헌도는 1위에 이름을 올리며 훌륭한 시즌을 보냈다. 팀성적도 4위로 준수하다. 예년 같으면 충분히 유력한 MVP 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성적이지만 올 시즌의 경우 개인 성적의 임팩트는 허훈, 팀성적에서는 김종규에 뒤진다. 시즌 중반 대형 트레이드로 라건아와 이대성이 가세한 이후 팀 내 비중이 다소 줄어들며 초반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허훈은 개인 성적면에서 올해 프로농구 선수 중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어시스트 부문에서 7.2어시스트로 전체 1위를 차지했고 득점도 평균 14.9점으로 국내선수 2위다. 특히 단일 경기에서 돋보이는 기록을 다수 남겼다. 지난해 10월 20일 DB전에서 3점 슛을 연속으로 9개 성공하며 은퇴한 조성원(전 전주 KCC)과 타이기록을 세웠다. 2월 9일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24점 2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KBL 한 경기에서 최초로 득점과 어시스트로 20-20을 달성한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한 경기 최다 어시스트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기도 했다.

다만 허훈은 상대적인 마이너스 요소도 분명하다. 시즌이 조기 종료된 것을 감안해도 올 시즌 부상으로 무려 8경기나 결장했다. MVP 선정에서 중요한 팀성적 프리미엄에서도 KT가 올 시즌 종료 시점에서 6위에 그쳤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외국인 선수들의 연이은 이탈로 시즌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플레이오프조차 탈락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높았다.
 
 KT의 현재와 미래로 불리는 허훈의 최대 장점은 두둑한 자신감이다.

허훈의 모습. ⓒ 부산 KT

 
KBL 사상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한 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2008-09시즌의 주희정(당시 안양 KT&G 인삼공사, 현 KGC)이다. 당시 인삼공사는 7위(29승 25패)에 그쳤지만 주희정(54경기 출전 15.1점 8.3어시스트 4.8리바운드 2.3스틸 어시스트-스틸 1위 국내선수 득점 3위)은 독보적인 활약을 펼쳐 MVP에 선정됐다. 6강 플레이오프에 탈락한 팀에서 MVP에 나온 것도 지금까지 주희정이 유일하다. 다만 이 당시에는 국내 선수들의 활약상이 유독 저조했던 시즌으로 상위 팀에 MVP급 활약을 펼친 선수가 없었던 독특한 시즌이었다.

MVP는 말 그대로 한 시즌 가장 '가치 있는' 활약을 보여준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팀 스포츠에서 소속팀을 더 많이 승리로 이끄는 선수보다 가치 있는 플레이는 없다. 허훈이 화려함에서 돋보였지만 올해는 공동 1위를 차지한 원주 DB에 김종규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는 게 불운이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올해 MVP는 허훈보다 김종규에게 돌아가는 게 합당해 보인다. 2018~2019시즌 8위였던 DB는 김종규가 합류하자마자 첫 시즌에 단숨에 1위까지 치고올라왔다. 김종규는 지난해 자유계약(FA) 시장에서 역대 최고 보수인 12억7900만 원을 받으며 창원 LG를 떠나 DB 유니폼을 입었고 이적 첫 시즌에 급상승한 팀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렇다고 김종규가 개인 활약상에서 허훈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김종규는 허훈과 달리 올 시즌 팀이 소화한 43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평균 13.3점 6.1리바운드 2어시스트 0.8블록슛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선수 리바운드 부문 1위, 득점 부문 5위다.

사실 김종규의 존재감은 기록 이상의 가치에서 더 빛난다. 올 시즌 DB가 부상병동으로 고전하는 와중에도 김종규는 변함없이 코트를 지켰다. 김종규의 높이와 도움수비 덕분에 다른 팀에서 DB의 골 밑을 쉽게 공략하지 못했고, 리바운드와 속공가담 등 궃은 일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수비와 팀플레이에서 김종규의 보이지 않는 존재감이 있었기에 DB 선수들의 고른 활약도 가능했다. 허훈과 비교하면 궃은 일을 많이 하느라 임팩트가 부족해 보일 뿐 개인 성적이나 팀공헌도, 팀성적에 이르까지 어느 하나 뒤처지는 부분은 없다.

김종규가 만일 투표에서 MVP를 놓친다면 상당한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소속팀 원주 DB는 KBL의 석연치 않은 해석으로 단독 1위가 될 수 있었음에도 서울 SK와 사상 초유의 공동 1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됐다. 여기에 유력한 개인 수상자였던 김종규마저 허훈에 밀려 탈락한다면 DB로서는 이래저래 억울한 시즌이 될 수밖에 없다. 자칫 기자단 투표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스타성에만 치중하는 인기투표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들을 수도 있다.
 
 김종규가 지난 12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정규리그 홈 경기에서 패스를 하고 있다.

김종규 선수의 모습. ⓒ 연합뉴스

 
외국인 선수상은 SK의 자밀 워니(43경기 평균 27분 51초 20.4점 10.4리바운드 3.1어시스트)가 유력하다. 최준용과 김선형이 번갈아 가며 부상을 당했던 SK가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워니의 활약 덕분이었다. 공동 1위 DB의 치나누 오누아쿠(40경기, 14.4점 10.3리바운드 2.5어시스트 1.4스틸)도 높은 팀공헌도를 보였지만 출전 경기수와 득점을 비롯하여 개인 기록에서 워니와 격차가 크다. 창원 LG의 캐디 라렌은 21.4득점-10.9리바운드로 개인성적에서 워니보다 우세하지만, 소속팀 LG의 성적이 겨우 9위에 머무르며 수상자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올해 프로농구는 그야말로 역대 최악의 신인 흉작 시즌이라고 할 만큼 신인들의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나마 원주 DB의 김훈이 23경기에서 평균 10분 48초를 소화하며 2.7점 1.4리바운드를 기록한 것이 신인중에서는 가장 나은 기록이다. 김훈이 수상할 경우 2003-04시즌 이현호(은퇴) 이후 16년만에 2라운드 출신 신인왕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누가 수상하게 되더라도 역대 가장 민망한 신인왕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올해는 시즌이 불가피하게 파행된 만큼 시상 기준을 바꿔서라도 올해 신인왕 수상을 '해당없음'으로 처리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KBL의 신인왕 요건은 출전가능한 경기수의 절반 이상만 소화하면 수상 자격을 갖출 수 있다. KBL은 아직까지 신인왕 시상에 대하여 별다른 변화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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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MVP 김종규 허훈 프로농구신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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