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게임 경험이 많은 중원의 지휘자 기성용이 돌아온다는 소식에도, 홈팀 FC 서울은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12라운드가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 20골 이상 실점한 팀은 이 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12게임을 뛰며 26골을 내줬으니 게임 당 2.17골이나 실점한 셈이다. 꼴찌 인천 유나이티드 FC보다 무려 9골이나 더 내줬다는 것은 기성용이 합류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울산 현대에서 어렵게 빌려온 센터백 윤영선이 이 게임 전반전을 끝내고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구급차에 실려간 것도 악재를 넘어 걱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김기동 감독이 이끌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가 18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원 12라운드 FC 서울과의 어웨이 게임에서 콜롬비아 출신의 팔라시오스가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3-1로 멋진 역전승을 거두고 리그 상위권 네 팀의 판도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놓았다. 맨 앞 두 팀 울산과 전북이 하루 뒤에 12라운드를 맞이하지만 토요일 밤 현재 상위권 네 팀(울산 26점, 전북 25점, 상주 24점, 포항 23점)의 승점 차이가 절묘하게 1점씩만 벌어지도록 만든 셈이다.

김기동 감독 '신의 한 수' 팔라시오스

어웨이 팀 포항 스틸러스는 5월 22일 스틸야드에서 FC 서울에게 당한 1-2 역전패를 되갚아주기 위해 단단히 마음 먹고 나왔다. 송민규와 이광혁을 양 측면에 두고 팔라시오스를 가운데 쪽에 둔 김기동 감독의 변칙 전술이 효과를 드러내며 그들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전반전에 홈팀 FC 서울에게 먼저 골을 내줬지만 포항은 결코 조급하게 달려들지 않았다. 후반전에 준비한 전술 변화 계획이 다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중 수요일 저녁에 열린 FA(축구협회)컵 16강 게임을 이기기 위해 연장전까지 뛰느라 두 팀 모두 체력적인 부담을 느꼈지만 FC 서울 공격수 조영욱은 최근 팀 공격수로서 가장 몸 가볍게 물이 올랐다는 것을 입증하는 첫 골을 터뜨렸다. 37분에 나온 역습 기회에서 동료 미드필더 오스마르가 왼발로 넘겨준 공을 향해 오프 사이드 함정을 허물고 달려들어간 조영욱은 골문을 비우고 달려나온 포항 골키퍼 강현무의 키를 넘기는 오른발 인사이드 로빙 슛을 정확하게 바운드시켜 넣었다.

이대로 전반전이 끝났으니 FC 서울은 FA컵 8강 진출을 계기로 다시 팀 분위기가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선수 부상이라는 악재가 겹쳐 나타났다. 듬직한 센터백 윤영선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구급차에 몸을 실었고, 멋진 첫 골을 도운 오스마르까지 근육 경련으로 알리바에프가 대신 뛰어야 했던 것이다.
 
 골 넣고 포효하는 일류첸코

골 넣고 포효하는 일류첸코 ⓒ 한국프로축구연맹

 
후반전 포항의 대역전 시나리오는 예상했던 대로 척척 들어맞았다. 52분에 귀중한 동점골을 뽑아낸 것이다. 바로 거기서 FC 서울 센터백 윤영선의 빈 자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윤영선 대신 들어온 김주성이 왼쪽 구석에서 빌드 업을 시작하는 패스를 넘겨주었지만 그 공을 받은 선수는 동료가 아닌 포항 스틸러스 미드필더 최영준이었다. 이 패스 미스 하나가 역전패의 결정적인 빌미가 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비교적 높은 위치에서 상대 공격의 시작을 가로챈 포항 미드필더 최영준은 감각적인 전진 패스로 오른쪽 측면을 돌아 뛰어들어간 팔라시오스를 빛냈다. 여기서 팔라시오스는 오른발 대각선 슛도 욕심낼 수 있었지만 한 박자 더 치고 들어가 FC 서울 수비 라인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완벽한 컷 백 어시스트를 선택했다. 이 공은 골잡이 일류첸코의 왼발 앞에 정확하게 굴러와 빈 골문 안에 동점골을 쉽게 밀어넣을 수 있었다.

노련한 포항 선수들은 윤영선 대신 들어온 FC 서울 수비수 김주성이 자리잡은 바로 그 쪽을 집중적으로 노려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동점골을 뽑아내자는 1차 목표를 이뤘다. 그리고 팔라시오스와 송민규의 잦은 위치 변화로 상대 수비수들이 두 번째 충격을 받고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전반전에는 최근 물오른 공격 감각을 자랑하고 있는 포항 송민규를 FC 서울 오른쪽 풀백 윤종규가 비교적 잘 막아냈지만 후반전 시작하면서 송민규 뿐만 아니라 팔라시오스가 왼쪽 날개로 변신하여 묵직하면서도 빠르게 공간을 파고들었으니 윤종규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이 전술 변화가 김기동 감독의 '신의 한 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 골 모두 만들어낸 '팔라시오스'

동점골을 뽑아내기 위해 동료 골잡이 일류첸코를 더 빛나게 만든 팔라시오스는 그로부터 6분 뒤에는 역전 결승골로 이어진 페널티킥까지 얻어내는 놀라운 몸놀림을 자랑했다. 이번에도 최영준의 전진 패스를 받은 팔라시오스가 자기 앞을 가로막는 FC 서울 수비수 윤종규와 김남춘 사이를 기막히게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몸을 내던지는 골키퍼 유상훈 바로 앞에서 반 박자 빠르게 치고나가며 넘어지고 말았다. 페널티킥이었다. 김종혁 주심은 더 정확한 판정을 위해 VAR(비디오 판독 심판) 시스템 온 필드 뷰로 재차 확인했고 유상훈 골키퍼의 글러브가 팔라시오스 오른쪽 발목을 잡아 넘어뜨린 것을 잡아냈다.

이 역전 기회에서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일류첸코는 페널티킥 방어 순발력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한 유상훈을 앞두고도 흔들리지 않아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정확하게 왼쪽 구석으로 차 넣었다. 결과로 보면 이 골이 역전 결승골이었다. 

동점골을 어시스트하고 역전 결승골로 이어진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활약을 펼친 팔라시오스는 후반전 추가 시간이 되었지만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90+3분, 교체 선수로 들어온 특급 미드필더 팔로세비치가 역습 드리블 타이밍을 잡다가 찔러준 공을 받아서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는 FC 서울 풀백 윤종규를 가볍게 따돌리고 오른발 슛을 왼쪽 기둥 옆으로 기막히게 성공시켰다. 

멋진 역전승을 확인한 팔라시오스는 골 세리머니를 펼치며 벤치로 달려와 자신을 믿고 전술 변화를 맡긴 김기동 감독을 부둥켜 안았다. 요즘 잘 나가는 포항 스틸러스 구성원들의 표정에는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미소가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팀 플레이로 뜻을 이루기 위해 선수와 선수 사이,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사이의 신뢰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포항 선수들의 밝은 표정 하나하나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상주 상무 바로 뒤에서 승점 1점 차 4위 자리에 있는 포항 스틸러스는 오는 26일 일요일 오후 7시 스틸야드로 꼴찌 인천 유나이티드 FC를 불러들인다. 반면에 수비 라인이 무너진 FC 서울은 같은 날 같은 시각 전주성으로 찾아가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를 만나서 상대적으로 초라한 전설 더비를 치러야 한다.

2020 K리그 원 12라운드 결과(18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

FC 서울 1-3 포항 스틸러스 [득점 : 조영욱(37분,도움-오스마르) / 일류첸코(52분,도움-팔라시오스), 일류첸코(분,PK), 팔라시오스(90+3분,도움-팔로셰비치)]

FC 서울 선수들
FW : 조영욱, 윤주태(71분↔박주영)
MF : 김진야, 오스마르(46분↔알리바에프), 주세종, 고요한
DF : 고광민, 김남춘, 윤영선(46분↔김주성), 윤종규
GK : 유상훈
- 경고 : 김남춘(57분)

포항 스틸러스 선수들
FW : 일류첸코(79분↔팔로세비치)
AMF : 송민규, 팔라시오스(90+3분↔남준재), 이광혁(71분↔심동운)
DMF : 최영준, 오닐
DF : 김상원, 김광석, 하창래, 권완규
GK : 강현무
- 경고 : 이광혁(56분), 송민규(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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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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