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부산 BNK 사령탑에 박정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본부장이 선임됐다고 BNK가 18일 발표했다.

여자프로농구 부산 BNK 사령탑에 박정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본부장이 선임됐다고 BNK가 18일 발표했다. ⓒ WKBL

 
여자프로농구 부산 BNK 썸이 지난 18일 박정은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박정은 감독은 BNK의 연고지이기도 한 부산 동주여고 출신이자, 선수시절 삼성생명과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의 최전성기를 이끈 WKBL '레전드'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국 여자농구의 대모 박신자의 조카이자, 배우로 활동중인 한상진의 아내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2013년 선수생활을 보냈던 삼성생명 농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은퇴한 이후 4년간 코치로 활동하다가, 2018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WKBL경기운영 본부장으로 재직해왔다. 지도자와 행정 분야를 모두 경험하여 WKBL 현장 실무에 밝고 각 구단 및 선수들에게 전반적인 이해도가 두루 높다는 것이 강점이다. 1977년생으로 44세인 박 감독은 다음 시즌 WKBL 6개구단 중 유일한 여성 감독이자 최연소 감독이 됐다.

흥미로운 것은 다시 한 번 검증되지 않은 여성 감독 카드를 낙점한 BNK의 파격이다. 2018년을 끝으로 해체한 구리 KDB생명 위너스 선수단을 인수하여 창단한 BNK는 초대 감독부터 여자농구의 또 다른 전설이었던 유영주 감독을 선임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유영주 감독은 천안 국민은행(현 청주 KB스타즈)-KDB생명에서 코치와 감독대행 등을 역임한 베테랑이었지만, 정식 감독으로서는 BNK가 첫 도전이었다. BNK는 유 감독 외에도 최윤아-양지희-변연하 코치 등 사상 최초로 코칭스태프 전원을 여성으로 구성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네 사람 모두 WKBL에서 큰 족적을 남긴 올스타급 라인업이다보니, BNK는 선수들보다 코칭스태프가 더 화려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BNK 유영주호는 첫 시즌인 2019-2020시즌 6개 팀 중 5위에 그쳤고, 외국인 선수 없이 치러진 2020-2021시즌에는 단 5승에 그치는 굴욕을 당하며 최하위(6위)에 머물렀다. 지난 2월 21일 열린 아산 우리은행과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리그 역대 한 경기 최소 팀 득점인 29점이라는 희대의 불명예기록까지 남기며 9연패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물론 BNK의 전력 자체가 약하기도 했지만 유영주 감독 역시 전반적으로 아쉬운 모습을 드러내며 리더십에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였다. 유 감독은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재계약 여부와 상관없이 사퇴의사를 밝혔고 코치진도 함께 물러났다.

일각에선 BNK가 변화를 위해 이번에는 경험 있는 남성 지도자를 선임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BNK는 심사숙고 끝에 다시 한번 '여성·초보·스타 출신 감독' 2기를 선택했다. 유영주 체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박 감독을 비롯한 전원 여성만으로 코칭스태프를 구성했다는 것도 눈에 띈다. 유영주호 시절부터 함께했던 변연하 코치가 박정은호에 다시 합류했고, 새롭게 김영화 코치가 가세했다. 세 사람은 과거 선수시절 삼성생명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인연이 있다.

박정은 신임 감독은 BNK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아직까지 뚜렷한 성공사례가 없는 여성 프로 감독들에 대한 선입견을 극복해야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1998년 출범한 여자프로농구에서 여성 감독의 역사는 짧다. 2012-2013시즌 이옥자 감독이 구리 KDB생명 사령탑을 맡은 것이 최초였고, 유영주 감독에 이어 박정은 감독이 세 번째다. 감독대행까지 범위를 넓혀도 2002년 유영주 코치가 국민은행에서, 2011년 조혜진 코치가 우리은행 감독대행을 잠시 맡은 것이 전부다. 이중에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은 여성 감독은 아직 한 명도 없다.

하지만 표본 자체가 부족한 사례를 놓고 '여성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선입견이 될 수 있다. WKBK에서 쓴 맛을 봤던 수많은 남성 감독들의 실패 원인을 성별에서 찾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여자농구는 최근에야 감독직을 둘러싼 '유리천장'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분위기다. 최근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가 올림픽 구기종목 최초로 여자농구 대표팀의 감독에 선임된 것이 좋은 예다. 전주원 감독은 프로 감독 경험은 없지만 코치로서 오랜 세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두 여자농구 '왕조'를 구축하는데 기여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사례다.

전임 유영주 감독의 시행착오는 오랜 공백기로 인하여 현장감각이나 현대농구의 트렌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박정은 감독은 지도자와 행정가 등을 경험하며 꾸준히 WKBL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또한 젊은 감독답게 선수들과의 소통에서도 강점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상 BNK는 다음 시즌에도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WKBL이 다음 시즌에도 외국인 선수 없이 리그를 치른다면 상대적으로 국내 선수 전력이 약한 BNK에게 더 불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전력 측면에서 올시즌 고전이 예상되었던 우리은행의 정규리그 1위 등극이나, 4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삼성생명의 챔프전 우승에서 증명됐듯 국내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들의 전술 운용과 선수 육성 능력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외국인 선수가 없어서 더 재미있었다는 팬들의 여론도 적지 않았다.

전원 여성 코칭스태프로 구성된 박정은호가 '선수빨' 없이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이기도 하다. 박정은 감독은 과연 꼴찌 BNK를 다음 시즌 재건하며 여성 감독이자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1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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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감독 부산BNK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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