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시즌 남자 프로농구 6강 PO에서 인천 전자랜드와 안양 KGC가 나란히 첫승을 신고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을 향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정규시즌 5위 전자랜드는 10일 열린 1차전에서 4위 오리온을 85-63으로 대파했다. KGC는 11일 KT를 90- 80으로 제압했다.

1차전부터 다소 이색적인 장면들이 연출됐다. 플레이오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이미 전반에 승부가 갈리는 경기가 나오는가 하면, 팀의 에이스가 4쿼터에 일찌감치 벤치로 들어가며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오리온은 정규시즌 순위는 물론 상대전적에서도 전자랜드에게 4승 2패로 앞섰지만, 정작 플레이오프에서는 첫 경기부터 22점차의 완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만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결과였다. 오리온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외국인 선수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오리온의 외인 듀오 디드릭 로슨과 데빈 윌리엄스는 경쟁팀의 외국인 선수들에 비하여 무게가 떨어진다. 두 선수가 1차전에서 올린 득점(19점)을 모두 합쳐도 전자랜드 조나단 모트리(31점 17리바운드) 한 명이 올린 기록에도 현저히 못미쳤다. 특히 강을준 감독의 신뢰를 잃은 윌리엄스는 1차전에서 단 5분 출전에 그치며 2점 2리바운드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정규시즌 외국인 선수 교체 타이밍을 날린 것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골밑의 수호신 이승현이 정규시즌 막판 발목 부상으로 이탈한 것도 치명타였다. 이승현은 지난 4일 열린 안양 KGC인삼공사전에서 왼발목을 다치며 복귀까지 최대 2~4주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플레이오프 출전은 어려워 보인다.

이승현은 정규리그 52경기에서 11.8점-5.6리바운드-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6강 PO에 올려놓은 주역이었다. 골밑에서 궂은 일을 하며 상대 외국인 선수까지 견제하는 이승현 덕분에 오리온은 정규시즌에서 제프 위디-윌리엄스 등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강 감독은 이종현(4점-7리바운드)과 박진철(4점-8리바운드)을 활용했지만 이승현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 에이스 이대성은 13점을 넣었으나 상대 집중 견제에 시달리며 야투 난조로 후반 무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전자랜드도 전력누수는 있었다. 이대헌과 정효근 등이 부상으로 결장하며 높이와 수비에서 빈틈이 발생했다. 하지만 1차전에서 신인 이윤기가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는 깜짝 선전을 펼쳤고 박찬호(4점·6리바운드), 민성주(4점·2리바운드) 등 백업멤버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며 주전들의 빈 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전자랜드는 이날 오리온을 상대로 리바운드(40-40)만 대등했을 뿐 야투율(47.9%-30.4%), 어시스트(24-12), 실책(4-12) 등 제외한 대부분의 기록에서 우위를 점했다.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선수 12명이 모두 득점을 올린 것도 플레이오프같은 단기전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개인의 활약이 아니라 팀으로서의 경기력으로 상대를 압도한 것이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도 "우리가 준비한 대로 수비와 리바운드가 잘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속공과 하프코트 오펜스를 동시에 할 수 있었다"며 선수들의 높은 집중력에 승리의 비결을 돌렸다.

반면 강을준 감독은 1차전을 두고 "할 말이 별로 없는 경기"라고 평할만큼 실망감을 드러냈다. 일찌감치 승부가 기울자 강 감독은 3쿼터에 아예 외국인 선수를 모두 제외하며 국내 선수들만 투입하기도 했다. 강 감독은 외국인 선수 대결에서 밀렸다고 패인을 분석했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팀 분위기에 있었다. 경기 내내 활기가 넘쳤던 전자랜드 벤치에 비해 오리온은 백업멤버들이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지만 벤치 분위기도 무거워보였다. 강을준 감독이 부임 초기부터 항상 활발한 팀 분위기를 강조했던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었다.

또한 강 감독은 이날 패배로 역대 PO 전적 1승 10패를 기록했다. 그는 창원 LG 감독시절을 포함해 6강 PO에만 4번째 올랐지만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리온은 외국인 선수들과 백업멤버들의 각성이 없다면 올시즌도 벌써부터 전자랜드의 3연승으로 시리즈가 손쉽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6강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한 안양 KGC 11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1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부산 KT 소닉붐의 경기. 90대80으로 승리한 KGC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6강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한 안양 KGC 11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1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부산 KT 소닉붐의 경기. 90대80으로 승리한 KGC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KGC와 KT의 대결에서도 양팀의 대조적인 분위기가 승부를 갈랐다. KGC는 전성현이 3점슛 5개 포함 최다인 21점을 퍼부었고, 저레드 설린저가 19점 11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한 데 이어 이재도는 13점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선수들이 대체로 고른 활약을 펼쳤다. 반면 KT는 허훈이 18점 5어시스트로 활약했지만 팀의 패배에 빛이 바랬다.

정규리그에서 양 팀은 3승 3패로 호각세를 이뤘고, 이중 연장전만 4번이었을만큼 올 시즌 최고의 라이벌로 꼽혔다. 플레이오프 1차전도 예상대로 접전이었지만 4쿼터 들어 양팀의 격차가 드러났다. 에이스의 체력안배에 실패한 KT가 허훈을 벤치로 불러들인 틈을 타 KGC가 무서운 상승세를 타며 점수차를 벌렸다.

서동철 KT 감독은 63-72로 끌려가던 3분 48초경 허훈을 벤치로 불러들인 뒤 다시 투입하지 않았다. 매경기 승부를 걸어야하는 플레이오프에서는 조금 이례적인 장면이다. 아직 포기하기는 이른 시점이었음에도 허훈을 투입해도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다음 경기를 대비하여 전략적으로 교체한 것인지, 아니면 판단착오로 재투입 타이밍을 놓쳐서 경기 흐름이 넘어가버린 것인지는 미스터리다. 결과적으로 4쿼터에 KT의 과도한 '허훈 의존도'만 또다시 확인한 경기가 되고 말았다.

플레이오프 경험이 풍부한 KGC와 KT의 차이는 벤치 분위기에서도 드러났다. 오세근-양희종 등 베테랑 선수들이 주축이 된 KGC가 접전상황에서 비교적 여유를 잃지 않았던 반면, 젊은 팀인 KT는 KGC에 주도권을 빼앗기자 선수들의 말수가 급격히 줄고 분위기가 위축됐다. 후반들어 공격리바운드를 연이어 뺏기며 전성현에게 3점슛까지 허용하자 KT 선수들의 집중력은 눈에 띄게 흐트러졌다. 이에 서동철 감독은 승부처인 4쿼터에서의 마지막 작전타임을 일찍 소진해가면서 선수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역대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을 이긴 팀이 4강에 진출한 확률은 무려 93.5%(43/46)나 된다. 1차전 패배에도 4강에 오른 팀은 2003-2004시즌 LG, 2011-2012시즌 kt, 2017-2018시즌 KCC까지 불과 3번뿐이다. 플레이오프와 같은 단기전에서 흐름을 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보여주는 기록이다.

결국 단기전은 기록이나 전력보다도 어쩌면 팀 분위기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농구와 같이 흐름이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스포츠일수록 팀 분위기에 따라 많은 것이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다. 6강PO가 전자랜드와 KGC의 3연승으로 싱겁게 끝날지, 아니면 오리온과 KT의 반격으로 흐름이 바뀔지는 각 팀의 분위기 싸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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