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상 수상 소감 말하는 윤여정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오스카상 시상식이 끝난 뒤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에서 특파원단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오스카상 수상 소감 말하는 윤여정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오스카상 시상식이 끝난 뒤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에서 특파원단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해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수상했을 당시 영국의 'BBC korea'로부터 수상의 의미에 대해 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생충>이 앞서 2019년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봉 감독의 연출력 또한 세계가 인정하는 바였지만, '기적'이란 표현은 그리 과한 것이 아니었다.

해당 기사는 로라 비커 한국 특파원이 보도한 <기생충: 오스카상 수상이 한국영화에 의미하는 것(Parasite: What the Oscar win means for Korean cinema)>이란 기획기사였다. 아시아 영화 및 영화인을 홀대해왔던 아카데미 위원회의 보수성을 감안했을 때, 한국어(비영어) 영화에 작품상 및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3개 부문과 국제장편영화상까지 몰아준 것 자체가 영화적인 장면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역사'가 됐다.   

이때만 해도 또 다른 한국 영화인이 이듬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을 밟으리라 예상한 이 역시 극소수였을 것이다. 그 기대 못한 풍경을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와 배우 윤여정을 비롯한 '팀 미나리'가 이뤄냈다.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B가 제작한 미국 독립영화 <미나리>가 작품상, 감독, 여우조연, 남우주연, 각본,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과 배우 윤여정,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등이 레드 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어메이징'한 장면이 또 한 번 연출됐다. 올해 나이 일흔 넷의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믿기 힘든 순간을 한국영화 102년 역사에 남긴 것이다.

지난해 <기생충>이 기적을 일궈냈을 당시, <미나리>는 앞서 열흘 전 열린 제36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이미 돌풍을 예고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해 연말 이후 <미나리>가 본격적으로 '오스카 레이스'에 돌입했고, 지난 넉 달간 윤여정은 미국 전역의 각종 영화상에서 무려 80개 넘는 트로피를 가져가면서 유력한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됐다. 

아카데미 시상식 며칠 전 미 ABC의 유력 아침방송에서 꽤 긴 시간 인터뷰를 할애해 윤여정의 개인사를 짚은 데서도 윤여정 개인에 대한 미국 내 언론과 미국인들의 호감을 엿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윤여정의 수상은 개인의 영광이자 할리우드와 아카데미 위원회의 빛나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 여배우가 세계적인 로컬 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일은 미국 내 한국계 및 아시아 영화인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남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더풀 미나리, 원더풀 윤여정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제 이름은 윤여정입니다. (외국의) 수많은 이들이 제 이름을 '어영' 혹은 '유정'이라고 부르는데요. 제 이름은 '여정'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용서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소감에 앞선 윤여정 특유의 농담에 시상식 장내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그만큼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유니크'했다. 이미 앞서 열린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 당시 "'고상한 척(snobbish)' 하는 걸로 유명한 영국인들"이란 뼈 있는 농담으로 화제가 됐던 윤여정이었지만 "오늘 밤 취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도요"라며 특유의 유머를 뽐냈던 봉 감독의 지난해 수상소감 못지않은 여유도 묻어 있었다.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 스틸 컷 ⓒ 판씨네마(주)

 
이번 아카데미 여주조연상 시상자는 전년도 남우조연상 수상자이자 <미나리>의 제작자인 브래드 피트였다. 나란히 선 브래드 피트를 향해 "우리가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나요? 꼭 만나고 싶었는데 만나 뵙게 돼 정말 영광"이라는 '농 반 진 반'으로 소감의 포문을 연 것 역시 윤여정 특유의 위트를 전 세계에 알린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유머와 위트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감사드릴 분이 너무 많은데요. 제가 사실 경쟁을 믿지는 않습니다. 제가 글렌 클로즈와 같은 대 배우와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겠어요. 그간 글렌의 훌륭한 연기를 정말 많이 봐왔습니다. (후보에 오른) 우리 다섯 배우 모두 각자 역할을 영화 속에서 해낸 것뿐입니다. 우리(영화계)에게 사실 경쟁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우리 모두 승리한 거나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단지 운이 좀 더 좋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같고요."

그 순간, 시상식 카메라는 <맘마미아> 등으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진심으로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포착됐다. 

윤여정은 물론 정이삭 감독을 비롯한 '팀 미나리'를 향해 감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상식장을 다시금 웃음바다로 만든 소감은 따로 있었다. 이미 국내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일 하라고 응원을 보내 준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에서였다. 뒤이어, 자신을 영화계에 데뷔시킨 김기영 감독을 향한 감사는 한국 영화인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고 말이다.

"제 두 아들에게도 감사해요. 밖에서 엄마가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줬으니까요. 이게 다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일동 웃음). 그리고 김기영 감독님이 제 첫 영화의 감독님이셨는데, 감사드리고요. 살아계셨다면 무척이나 수상을 기뻐하셨을 거예요."

"1등? 최고? 난 그런 말은 싫어요"
 
지난해 봉 감독 역시 <기생충>에 영감을 준 김기영 감독을 각종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수차례 거론한 바 있다. 김기영 감독은 윤여정의 50년 연기 인생이 재조명되면서 <하녀>가 국내에서 재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2년 연속 한국영화인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영화의 힘과 그 뿌리가 전 세계인들에게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한국 배우들을 굉장히 환대를 해주는 것 같다"던 윤여정의 수상 소감 역시 이러한 한국영화의 전 세계적인 반향을 반영하고 있었다. 물론 지레 '달라진 한국영화의 위상' 같은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윤여정이 출연한 넷플릭스 영화 <센스8>을 비롯해 최근 몇 년간 <기생충>의 전 세계적인 반향을 포함해 (봉 감독의 <옥자>를 비롯해) OTT 플랫폼을 통한 한국 영상 콘텐츠의 노출이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증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듯 같은 맥락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여정이 밝힌 소감은 훨씬 더 감동적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이번 수상이 '최고의 순간'이냐는 질문에 답이었다.

"최고의 순간은 없겠죠. 난 최고 그런 말은 싫어요. 영어 잘 하는 애들이 충고하더라고요. 1등이니 그런 거 말하지 말라고 하는데, 너무 '1등', '최고' 그런 거 (강조)하잖아요. 우리 '최중' 되면 안 돼요? 같이 살면 안 돼요? 나도 최고의 순간인지 모르겠는데,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우리 동양 사람들이 너무 안 됐잖아요. '아카데미 월'이 '트럼프 월'보다 너무 높아가지고 동양 사람들한테 너무 높은 벽이 됐잖아요. 최고가 되려고 그러지 맙시다. 우리 '최중'만 돼도 되잖아? 그렇게 살면 안 돼요?"


한 평생 연기를 한 배우를 향한 질문이 자연스레 미국 이민자를 경험했던 일흔 넷 아시아인의 정체성에 대한 답변으로 옮겨 가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유니크'한 답변 그 자체에 이번 윤여정의 오스카상 여우조연상 수상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고.

그렇게 이번 윤여정의 수상은 지난해 <기생충>의 '기적'과 함께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윤여정 이펙트'. 미국인들은 물론 서구인들에게 독특하고 유쾌한 한국 할머니로 자리매김한 윤여정은 이후에도 영어권 시청자들에게 좀 더 오래 눈도장을 찍을 것 같다.

이미 애플TV의 미드 <파친코> 촬영을 마친 윤여정은 등 미국 내 영상 플랫폼의 러브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수상 소감을 (영어로) 잘 못했다. 원래 (영어를) 더 잘하는데"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윤여정은 이제 영어가 되는 독보적인 아시아계 여성 배우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예상 가능한, 지속되리라 짐작되는 미국 및 서구인들의 아시아계 영화인들에 대한 시각 재고다.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국적을 떠나 중국인 감독인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가 작품상 및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노매드랜드>는 <미나리>처럼 미국 영화사가 제작했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 연출한 작품이다.

윤여정이 언급한 대로, 아시아인들에게 트럼프 월만큼 높았던, 또 일부 일본영화나 중국 무협영화를 편애했던 아카데미 월이 이번 수상 결과를 통해 점차 낮아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향후 할리우드 및 각종 미국 내 OTT 사이트 등을 통해 선보일 영화 및 드라마에서 한국계 및 아시아계 연기자들 및 제작자들을 더욱 자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미국 내 인종 혐오에 대한 경고등 역할이다. 얼마 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시상식 참석에 대해 "두 아들이 걱정이 많다. 요즘 미국 내 사건들 때문"이라며 애틀랜타 총격 사건 등 연이어 벌어진 미국 내 아시아 인들에 대한 혐오‧인종 범죄를 에둘러 언급한 바 있다.

대배우의 어록
 
 <미나리> 순자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이 26일(한국시간) 오전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미나리> 순자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이 26일(한국시간) 오전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 ABC 화면 캡처

 
여기서 잠시 70년 넘게 할리우드의 역사와 함께해 온 아카데미 시상식이 가져온 문화 제국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백인 장년남성 위주의 아카데미 위원회가 보수적이라 일컬어져 온 것이야말로 시상식의 역사만큼이나 유례가 깊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이러한 아카데미상의 인종적 편협함과 실제 차별적 수상 결과, 시상식 진행 등이 지적을 받아 왔다. 

이후 아카데미 위원회가 변화의 움직임을 보인 끝에 지난해 <기생충>이 감독상 등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윤여정의 수상은 분명 지난달 혐오 범죄 반대 시위에 나섰던 미국 내 한국계 및 아시아계 영화인들을 넘어 아시아계 혐오 및 범죄를 일삼는 미국인들에게도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리하여 이제는 일흔넷의 나이로 배우로서, 직업인으로서, 한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꿈과 희망을 준 윤여정의 남은 여정을 지켜보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이날 시상식을 주최한 아카데미 위원회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이 대배우가 전한 어록을 곱씹어 보면서. 

"사람을 인종으로 분류하거나 나누는 것은 좋지 않잖아요. 심지어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는데.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 중요하고,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예쁘게 만들어야겠죠.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그러고 싶진 않아요.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들이잖아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끌어안아야죠." (간담회 당시 할리우드 내 다양성 확대 및 아시아 영화의 약진 등의 물음에 대한 윤여정의 답변)
윤여정 아카데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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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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