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배우 천우희 인터뷰 이미지

ⓒ (주)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영화 <써니>에선 본드에 중독된 불량학생으로, <한공주>에선 상처와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 하는 성폭행 피해자로, <우상>에서는 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 중국 동포 여성으로...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천우희는 이렇듯 강렬하고 날카로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오는 28일 개봉 예정인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여느 20대 청춘같은 얼굴이었다.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을 때는 저도 어렸으니까 인간에 대해 막 파고들 수 있는 작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극적인 인물들. 지금은 일상적인 것들도 좋다. 물론 여전히 감정 폭이 큰 것도 좋아하지만, 섬세한 일상의 감성도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어떤 게(캐릭터가) 끌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때그때 다르지 않을까."

오랜만에 평범한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돌아온 천우희는 "지금까지 연기했던 것과 달라서 (관객이)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고 쑥스러워 하면서도 "그전엔 어떤 인물을 충분히 표현하려고 세세하게 분석했다면 이번에는 그냥 연기를 굳이 하지 않고 내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23일 화상으로 천우희를 만났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아래 <비와 당신>)는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삼수생 영호(강하늘 분)가 갑자기 떠오른 10여 년 전 국민학교 동창 소연에게 편지를 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천우희는 아픈 소연을 대신해 편지에 답장하는 동생 소희로 분했다.

극 중에서 엄마와 함께 오래된 헌책방을 운영하는 소희는 똑똑했던 언니 소연과 달리 아직 하고 싶은 일도, 삶의 방향도 찾지 못한 상태다. 지병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언니를 간병하느라 매일 병원과 헌책방을 오가는 그의 일상 역시 무료하고 건조하기는 영호와 마찬가지. 어느날 도착한 영호의 편지에 "네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장을 쓰던 소희가 돌연 언니인 척 펜팔을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편지로 영호와 소통하며 위로를 받고 조금씩 삶에 활력을 얻게 된다.

현실의 천우희 또한 최근 자신의 생일을 맞아 팬들이 직접 써준 편지를 받았는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촬영현장에서 영화 스태프가 전해준 편지에도 감동했던 적이 있다며 슬쩍 이야기를 꺼내놨다. 

"현장에서 스태프 친구가 편지를 써줬는데, 요즘은 또 현장이 워낙 빠르게 돌아가지 않나. 각자 할일을 해내야 하는 책임감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 바쁜 와중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질 만한 예쁜 말들을 편지로 써줬더라.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늘 배려해주고 그런 걸 알지만,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잖나. 그걸 편지로 받으니까 느낌이 다르더라. 너무너무 감동받았다." 

하지만 정작 천우희는 극 중에서 소희가 쓴 편지도 전문가의 힘을 빌려야 했다고 웃으며 고백했다. 그는 "제가 직접 작성하고 싶어서 손글씨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제 연습 글씨를 보고 감독님이 전문가를 섭외하시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조금 아쉽기는 했다. 손글씨 인강도 들었는데"라고 덧붙였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배우 천우희 인터뷰 이미지

ⓒ (주)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손편지를 소재로 한 <비와 당신>은 전반적으로 아날로그 감성의 느린 호흡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천우희는 "요즘엔 (스토리 전개가) 즉각적이고 편집 호흡도 빠른 영화들이 대부분이지 않나. 그래서인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한 번씩 찾게 되더라. (극의 배경인) 2003년도에 이런 느린 감성이 어울릴 것 같았다. 관객들도 잔잔하게 받아들여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영화는 일단 두 인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청춘 이야기이지만 사랑으로만 표현되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이 각자 20대 청춘을 그리기도 하고, 이들의 인간적인 연대를 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많은 분들에게 향수를 불러다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영화 마지막에 에필로그가 나오는데, 그게 끝맺음을 잘 해준 것 같다. 보시는 분들의 의견을 분분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결말이지만 저는 그것마저 우리 영화의 매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03년을 주된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는 손편지뿐만 아니라 가죽 공방, 헌책방, 종이 잡지 등 관객의 추억을 자극할 만한 소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평소 "옛날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천우희는 <비와 당신> 촬영 현장에서도 스태프들과 추억 여행을 많이 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너무 좋은 기억력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이를 속였다는 오해를 받았다"며 귀여운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예전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만한 물건이나 상황을 얘기하는거 너무 즐겁다. 공감할 수 있는 게 생기면 좋으니까. 아날로그 감성도 좋아하고. (영화 현장에서) 그런 소품들을 볼 때 옛날 얘기들을 많이 한다. 사실 제가 예전 물건들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현장에서 스태프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저만 알더라. 분명히 같은 세대인데, 왜 나밖에 모를까. 항상 소외받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마일로'(코코아 파우더 브랜드)를 아시나? '제티'가 나오기 전에는 마일로였다. 아 이거 봐, 다들 모른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나이 속인 거 아니냐'고 의심하시더라(웃음). 저는 추억하고 향수에 젖어 있는데 공감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쉬웠다."

영화에서 소희는 "만나자"는 영호에게 "12월 31일에 비가 오면 만나자"고 답한다. 아픈 언니를 데리고 약속장소에 나갈 수도, 언니 대신 편지를 썼다고 솔직하게 밝힐 수도 없기 때문. 이로 인해 영호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8년 동안이나 12월 31일이 되면 약속장소에 나가 오지 않는 비를 기다린다. '천우희라면 그렇게 기다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단번에 "절대 못하지"라고 답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저는 찾아간다. 당장 찾아갈 거다. 왜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하냐. 무슨 일이냐. 왜 하필이면 12월 31일이냐. 달려가서 따져 물어야지. 저는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문물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나.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웃음). 대신 8년 동안 기다리는 이유가 납득할 만하면 8년 정도는 기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배우 천우희 인터뷰 이미지

ⓒ (주)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한편 천우희는 '코로나 19' 확산세가 여전한 가운데 영화가 개봉하게 됐지만 "현재로선 개봉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극장에 오셔서 <비와 당신>을 본다면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드실 것"이라고 호소했다.

"옛 시절을 추억하셔도 좋을 것 같고, 본인 이야기에 대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저도 연기하면서 스스로에게서 소희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 영화를 보면서 영호의 친구 수진(강소라 분)에게도 몰입하게 되더라. 영화라는 게 그렇지 않나. 자기와 닮은 면이나 자기 상황에 대입하게 되잖아. 공감하시면서 보면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 극장에 오셔서 영화를 보시면 '2시간 동안 참 잘봤다'는 생각을 하실 수 있을 거다."
비와당신의이야기 천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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