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집토끼를 잡아라. 둘째 네거티브를 적극 활용한다. 셋째 프레임을 바꾼다. 넷째 인지도를 높여라.

정치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 속 선거 전문가가 제안한 일종의 선거 필승법이다. 이중 네거티브 활용이 당당히 두 번째를 차지했다. 다른 전략이 나름 포지티브 전략이라면 말 그대로 네거티브 전략은 상대 후보를 헐뜯고 비방하면서도 그 뒤에 교묘히 숨는다는 점에서 가장 저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 이미지.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 이미지. ⓒ (주)NEW

 
정치풍자 코미디인 만큼 <정직한 후보>는 킹메이커가 제안한 네거티브 수법을 가볍고 귀여운 수준으로 그려냈다. 바로 상대 후보의 사진 한 장을 인터넷 상에 공개했는데 그 사진 속 상대 후보는 손수레로 폐지를 나르는 할머니가 지나가는 바로 옆에서 못 본 척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귀엽다고 한 건 그래서다.

이 정도면, 일개 정치인의 이미지에 살짝 상처를 내는 정도일 테니 말이다.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이 제일 쉬웠던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이 불가항력과 같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는 판타지 요소가 핵심 설정이었다. 

정치영화이면서 범죄드라마에 가까운 <특별시민>의 경우엔 그 양상이 심각하다. 3선에 도전하는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 측 참모진은 변 시장과 서울시 경찰서장들의 성폭행 사건 관련 대화를 의도적으로 편집, 상대 캠프에 흘린다. 그러자 상대 캠프가 이를 언론에 흘리고, 변종구 측은 원본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상대방 후보를 곤경에 빠뜨린다. 이미지 재고는 물론 아예 역풍까지 계산한 고도의 공작이었던 셈.

정치판 속설 상 선거판에서 네거티브와 검증은 한 끝 차이라고 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그 네거티브와 검증 과정이 어떻게 도출되는지, 누구의 어떤 선택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까발리게 되는지 알 수 없다. 물론 후보 본인이나 참모진들도 그 네거티브 전략의 결과를 100% 장담할 수 없다. <특별시민>에서 역풍을 맞는다는 설정처럼 말이다.

그러하면 현실의 네거티브는 어떨까. 마침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에서 지지율 1,2위 후보 간 '노무현 탄핵 찬반' 논란이 네거티브 공세의 일환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혹독한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2017년 개봉, 185만 명이 관람한 <노무현입니다>는 대선후보 노무현이 시달려야 했던 네거티브 공세를 조명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다.

<노무현입니다> 속 네거티브와 역풍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스틸 이미지.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스틸 이미지. ⓒ 영화사 풀 외

 
지지율 1위 후보는 네거티브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법이다. 마음이 급한 쪽은 쫓아가는 쪽이다. 더 이상 지지율 반전이 요원하다 싶으면 <정직한 후보> 속 정치전문가의 조언대로 집토끼를 잡든 프레임을 바꾸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적지 않은 '노무현 다큐'들 중 <노무현입니다>는 영리했다.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한 노 전 대통령 삶의 궤적 중 특히 드라마틱했던 2002년 민주당 경선 시기를 중심 서사로 끌어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절정부를 이루는 것이 바로 당시 경쟁했던 이인제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세였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신문에 그 후보의 장인어른께서 좌익 활동을 하셨다가 교도소에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영부인이 남로당 선전부장으로서 중형을 선고 받고 전향하지 않고 교도소에서 사망한 사람의 딸이라고 한다면..." (당시 이인제 후보 연설 중)

그러자 이인제 후보 측 지지자들은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빨갱이가 국모냐"라며 부화뇌동했다. 이에 앞서 이 후보 측은 존재하지도 않던 노 전 대통령의 '동아일보 국유화 발언'을 공론화하며 후보의 자격을 물었다. 이 역시 마타도어에 가까운 네거티브 공세라 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민주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노사모'와 함께 일약 바람을 일으켰다는 것은 한국정치사의 한 페이지에 당당히 기록됐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이인제‧한화갑‧김중권‧김근태‧정동영 등 경쟁 후보들 중 노 전 대통령은 일개 군소후보일 뿐이었다.

그러던 노 전 대통령이 세 번째 경선 지역이던 광주에서부터 파란을 일으켰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 즉 1위 이인제 후보를 제친 것이다. 그때부터 후보 노무현의 승승장구가 펼쳐졌다. 개별 지역에서의 접전이 이어졌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후보에서 일약 선두권을 형성한 것이다.

"빨갱이가 국모냐"와 같은 극악한 마타도어가 등장한 것 그때였다. 제주에서부터 서울로 상경하는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갈수록 노무현 대세론이 힘을 받자 이인제 후보가 인천 경선 전, 경선 불복을 암시하며 판을 흔든 뒤 당시만 해도 치명적이었던 레드 콤플렉스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네거티브 공세는 결과적으로 누구에게 치명타를 입혔을까. 노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역사에 기록됐으니 결말은 빤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정면승부를 펼쳤다. 아직까지 회자되는 인천 경선 당시의 명연설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지지층의 결집을 이뤄냈던 것이다.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 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입을 맞춰 헐뜯는 것 방어하기도 힘이 듭니다. 제 장인은 좌익활동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해방되는 해 실명해서 앞을 못 봐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결혼 한참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사실 알고도 결혼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잘 키우고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 생깁니까?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심판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면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무현의 승부수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스틸 이미지.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스틸 이미지. ⓒ 영화사 풀 외

 
<노무현입니다>가 재조명한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의 교훈은 자명하다. 검증 아닌 네거티브에 올인하는 자는 반드시 역풍을 피해갈 수 없다는 교훈 말이다. <정직한 후보>나 <특별시민>과 같은, 여러 정치 및 선거 소재 영화 및 드라마가 가리키는 주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은 다르지 않느냐고? 지난 2016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힐러리 후보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포인트 중 하나가 이메일 스캔들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당시 힐러리 후보의 개인 이메일이 해킹된 뒤 유포돼 파장을 일으킨 사건은 미 사회의 큰 파장을 던져줬다. 사적 이메일 내용에 드러난 힐러리 후보의 이른바 인성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검증 아닌 네거티브라 하더라도 적어도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진리는 현실에서도 예외가 아닌 법이다.

'노무현 탄핵 찬반' 논란이 불거진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경우는 어떨까. 급기야 이재명 후보는 음주운전 범죄경력을 서류로 인증했고, 과거 가족을 향한 욕설 논란으로 연일 사과 중이다. 이재명 후보 또한 이낙연 후보를 향해 '노무현 탄핵 찬반' 논란으로 응수한 뒤 이 후보가 공직자 시절 무능했던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했다. 이러한 논쟁은 이 지사의 지사직 사퇴 주장으로까지 발전된 상태다. 

이를 의식한 듯, 1위 후보인 이재명 지사가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했다. 여론도, 언론도 실제 이 선언이 지켜질지, 클린 경선이 이뤄질지 관심있게 지켜보는 중이다.

이것이 <노무현입니다> 속 노 전 대통령이 띄었던 승부수와 같은 호재로 작용할 지, 이 지사를 포함한 6명의 후보들에게 예상치 못한 바람으로 작용할지는 경선이 마무리되는 10월 10일까지 기다려야 할 듯싶다. 
노무현입니다 정직한후보 특별시민 이재명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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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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