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 이 일곱 글자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에 대한 공격은 늘 있었던 일이지만, 대통령 후보가 쏘아 올린 눈덩이의 크기는 점점 불어났고, 하나의 공약이 되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여가부의 운명에 대해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몇 차례 폐지냐 개편이냐 하는 소소한(?) 내부 논쟁이 있긴 했지만, 확실하게 폐지하겠다고 못 박는 분위기다. 그런데, 정말로 여가부를 폐지해도 될까. 지난 15일 MBC < PD수첩 > '젠더갈등과 여성가족부' 편에서 여가부를 둘러싼 이러한 논란을 다뤘다. 

'페미'면 괴롭혀도 된다?
 
 싱어송라이터 핫펠트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공격을 받아야 했다.

싱어송라이터 핫펠트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공격을 받아야 했다. ⓒ MBC

 
'페미', '꼴페미' 모두 페미니스트를 낮춰 부를 때 사용하는 손쉬운 멸칭이다.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면, 혹은 그 비슷한 언행을 하면 공격을 당하는 게 오늘날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그리고 그런 무자비한 공격을 당한 이들 중에는 '핫펠트'도 있다.

원더걸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핫펠트는 본인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면서 <82년생 김지영> 책과 영화를 읽고 감상평을 올리기도 했다. 핫펠트는 제작진에게 "'(<82년생 김지영> 작품 내용 중에) 이런 일이 있어 세상에?' 이런 내용은 사실 없"으며 "지금도 어느정도는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는데, 그만큼 본인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이게 확실한 먹잇감이었던 모양이다. 유튜버 '뻑가'는 핫펠트를 소재로 그를 비난하는 영상을 수차례 올렸다. 사실상 페미니즘에 반감을 품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좌표'를 찍어준 셈이다. 뻑가는 또한 '남혐 발언'을 했다고 의심받는 BJ한테도 서슴없이 페미라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악성 댓글들에 시달리던 그 BJ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만큼, '페미'라고 (자의적으로) 판단이 되면 그때부터는 감당 못할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유명인, 혹은 연예인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 성평등 교육을 시도하는 교사들도 만만치 않은 항의에 시달린다. 뉴미디어 채널 '닷페이스'에 출연해서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어필한 초등교사는 '남성혐오자'로 낙인찍히는 한편, 2년 동안 휴직을 해야 했다. 복직을 했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다시 휴직하는 등 악순환을 겪었다. 성평등 교육을 시도하는 다른 한 교사는 협박과 폭언, 신상털이를 걱정해야 한다고 토로한다. 

혐오에 응답하고 부추기는 이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를 띄워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를 띄워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 MBC

 

이렇게 여성혐오적인 공격의 정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정치권이 이러한 분위기에 탑승한 탓도 크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일련의 목소리를 경청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고, '여성가족부 폐지'는 그러한 시도들이 절정에 달한 순간에 터져나온 공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남녀를 갈라치는 정책을 펼쳤고', '세금을 낭비했다'는 등이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는 시민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정치인들도 이러한 의견들에 무작정 탑승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여가부에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정책은 한부모 지원사업이고, 한부모 가정에게 여가부는 정말 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력 단절 여성들의 재취업이나 성범죄 피해자의 회복을 지원한다. 일상 곳곳에 숨겨져 있는 차별요소들을 시정하는 정책을 수행하는 핵심조직임인 것이다. 이들은 여가부가 폐지되면 중요한 지원이 끊기는 게 아닐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여가부 폐지의 목소리에 대해 "그럼 지난 22년동안 여가부가 한 일은 뭐가 되느냐"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가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거쳐야 했던 수많은 일들 속에 여가부가 있었다. 김 소장은 또한 "'20대가 (여가부를)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그 한 문장으로 이 정책적 성과를 무시하거나 없는 셈 칠 수는 없다"라고 비판했다. 
 
 정재훈 교수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정재훈 교수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 MBC

 
지금도 여가부가 지향하는 '차별요소 시정'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온갖 불합리한 오명을 덧씌워서 폐지를 언급하는 것이 맞는지 방송은 다각도로 조명한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오세라비 작가는 여가부 폐지에는 원론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어떤 논의구조가 없었던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가 가능하긴 하겠느냐'고 말한 부분은 인상적이다. 갈등이 더 거세질거라는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더 나아가 여가부 폐지는 어차피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여가부 폐지 공약은)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낚시"라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윤석열 당선인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여가부를 폐지하면 젠더갈등은 줄어들고 여성인권도 향상될 거라고 믿고 있는 걸까.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고 갈등과 반목이 반복되지 않을까 봐 우려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있음을 방송은 과제로 남겼다.
여성가족부 윤석열 페미니즘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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