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돌아온 프로야구 올스타전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한국야구를 빛낸 위대한 레전드들의 소환, 이별을 앞둔 베테랑에 대한 예우, 그리고 앞으로 KBO리그의 미래를 이끌어갈 또다른 예비 레전드의 활약상까지, 훗날 KBO리그 역사를 거론할 때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명장면들이 한자리에서 대거 탄생했다.
 
7월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2022 신한은행 SOL KBO 올스타전이 열렸다. KBO리그 출범 4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자,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열리지 못했던 올스타전이 3년 만에 다시 팬들과 함께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2년 연속 올스타전이 취소되면서 아쉬움을 삼켰던 야구팬들은 궂은 날씨에도 야구장을 찾아 4년 만의 매진 사례를 만들어내며 축제를 즐겼다.
 
올스타전을 앞두고 갑자기 내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며 한때 행사가 지연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하지만 폭우도 올스타전을 향한 야구팬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빗줄기가 잦아들었고, 올스타전은 약 50분 지연된 끝에 정상적으로 시작했다.
 
경기 자체도 올스타전 역사에 손을 꼽을 만한 명승부가 나왔다. 나눔 올스타(LG 트윈스·키움 히어로즈·NC 다이노스·KIA 타이거즈·한화 이글스)와 드림 올스타(KT 위즈·두산 베어스·삼성 라이온즈·SSG 랜더스·롯데 자이언츠)와의 대결에서, 올스타전에서는 이례적으로 승부치기까지 치를만큼 팽팽한 경기가 펼쳐졌다.
 
동점과 역전을 거듭하며 치열한 승부를 이어가던 양팀은 드림올스타가 3-1로 앞서가던 8회초, 나눔올스타의 황대인(KIA)이 최준용(롯데)을 상대로 투런포를 터뜨리며 3-3으로 다시 동점을 이뤘다. 결국 정규이닝 동안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전 승부치기에 돌입했다.
 
이미 투수력을 다 소비한 드림올스타는 컨디션 난조로 출전이 어려웠던 오승환 대신 궁여지책으로 포수 김민식(SSG)를 다급히 마운드에 올려야했다. 10회초 정은원(한화)이 김민식을 상대로 극적인 3점홈런을 날리며 나눔올스타에 6-3 승리를 선사했다.
 
정은원은 이 한 방으로 결국 만장일치로 미스터 올스타(MVP)에 선정됐다. 한화 출신으로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1993년 이강돈, 1995년 정경훈, 2000년 송지만 이후 역대 4번째이자 무려 22년 만이다. 2000년생인 정은원은 21세기 밀레니엄 세대에 출생한 선수로서는 KBO리그 첫 올스타 MVP라는 상징적인 기록도 세웠다. 비록 팀은 최하위에 그치고 있지만 한화 팬들은 정은원의 활약을 보면서 작은 위안과 함게, 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ㅡ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마지막 10회말을 잘 틀어막고 세이브를 올린 나눔 올스타 마무리 고우석(LG), 투런 홈런으로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한 황대인은 각각 우수투수상과 타자상을 수상했다.
 
'대왕마마에서 야구선수로 변신'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 올스타전' 드림올스타 대 나눔올스타의 경기.2회말 드림 올스타 김태군이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

▲ '대왕마마에서 야구선수로 변신'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 올스타전' 드림올스타 대 나눔올스타의 경기.2회말 드림 올스타 김태군이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선수들의 유쾌하고 재치있는 쇼맨십도 돋보였다. 김태군(삼성)은 2회 타석에 들어서면서 유니폼 위에 조선시대 임금이 착용하던 곤룡포와 익선관(왕의 모자)까지 착장하고 등장했고, 삼성 구단 마스코트 블레오가 일산(왕의 우산)을 받쳐 들고 수행원처럼 김태군의 뒤를 따르는 깜짝 퍼포먼스를 서보였다.
 
김태군이 삼성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팬들로부터 '태군마마'라는 별명을 얻은 데 착안한 퍼포먼스였다. 그라운드에 들어선 김태군은 곤룡포를 벗은 뒤 블레오와 함께 관중석을 향해 큰 절을 하며 팬들의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냈다. 김태군은 이 장면으로 올스타전 베스트 퍼포먼스 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김지찬(삼성)은 어린이 팬 컨셉으로 유치원생 모자와 가방을 차고 타석에 들어서서서 웃음을 자아냈다. 황대인(KIA)은 얼굴에 알록달록한 색종이를 붙이고 나와 애니메이션 '방귀대장 뿡뿡이'를 재현했다. 투수 이승현(삼성)은 생애 첫 올스타전에서 저승사자 복장에 스모키한 풀메이크업까지 갖추고 등판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외국인 타자 닉 마티니(NC)는 슈퍼맨 망토를 두르고 등장하며 팀동료 루친스키의 도움을 얻어 자기 이름과같은 칵테일 마티니를 원샷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올스타전 최종 팬투표 1위에 오른 양현종(KIA)은 '최다득표 감사'라는 문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데 이어, 평소와 달리 탈색한 머리에 화려한 색깔의 뿔테 안경을 쓰고 등장하여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정후(키움)는 아이돌 스타나 해외 뮤지션을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레게머리를 하고 등장하여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소 쇼맨십이나 이벤트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던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색적인 변신은 팬들에게 신선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뜻밖의 순간도 있었다. 4회초 나눔올스타 황대인의 타석 때 양현종, 류지혁, 나성범 등 같은 KIA 소속 선수들이 나와 관중들이 부르는 소크라테스의 응원가에 맞춰 시옷 댄스를 펼쳤다. 올스타전에 발탁됐지만 부상으로 불참한 팀동료의 쾌유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돌연 1루 더그아웃에서 드림올스타 김광현(SSG)이 그라운드로 달려나왔다. 김광현은 미소를 지으며 KIA 선수들과 팬들을 바라보다가 관중석을 향하여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큰절을 올렸다. 김광현은 KIA전에서 소크라테스에게 헤드샷을 던져 부상을 입힌 장본인이었다. 고의는 없었지만 큰 부상을 입힌 것에 대하여 김광현은 소크라테스와 KIA 구단에 사과했고 선수측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광현은 올스타전에서 다시 한번 소크라테스와 야구 팬들에게 진심을 담은 사과를 전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KB리그의 역사를 돌아보는 진지하고 감동적인 순간들도 있었다. KBO는 프로야구 출범(1982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팬과 전문가 투표로 KBO 레전드 40인을 선정했다. 선동열, 최동원, 이승엽, 이종범이 레전드중의 레전드인 탑4에 선정됐다. 안타깝게 고인이 된 최동원을 대신하여 아들 최기호씨가 대리 수상했고, 나머지 레전드 세 사람은 모두 올스타전에 함께 초청받아 자리를 빛냈다.
 
레전드들은 시구 퍼포먼스를 합작했다. 영상을 통해 프로야구 팬과 최동원 감독의 동상을 거쳐 마운드 위의 선동열에게 공이 날아왔다. 선동열은 힘차게 시구를 던졌고 공은 포수를 거쳐 유격수 자리에 있던 이종범으로, 그리고 1루에 있는 이승엽에게 송구가 이어졌다.
 
이정후-이종범 '부자 레전드'의 훈훈한 투샷은 팬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종범은 현역 시절 해태 타이거즈 왕조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야구천재'로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다. 최고의 선수들이 넘쳐났던 KBO리그 40주년 레전드 올스타에서도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무려 최다득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들 이정후 역시 KBO리그 입성 6년 만에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로 올라서며 부전자전이라는 말을 증명하고 있다. 자타공인 역대급 레전드인 아버지와 현재의 슈퍼스타인 아들이 올스타전에서 함께 만나 서로 포옹하고 기념촬영을 남기는 훈훈한 모습은, 역사가 깊은 메이저리그나 일본야구에서 보기드문 명장면으로 팬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팬들에게 인사하는 이대호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 올스타전' 드림올스타 대 나눔올스타의 경기. 이대호가 경기를 마친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팬들에게 인사하는 이대호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 올스타전' 드림올스타 대 나눔올스타의 경기. 이대호가 경기를 마친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뭐니뭐니해도 이번 올스타전의 최대 진주인공은 역시 이대호였다. 올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예고한 이대호에게는 야구인생 마지막 올스타전이었다. 1982년생인 이대호는 본인이 태어난 해에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40주년인 올해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 해가 되는 뜻깊은 순간을 맞이했다.
 
이대호는 리그에서 전반기 타율 1위(.341)에 올랐고 전야제로 열린 홈런왕 레이스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건재를 과시했다. 많은 이들이 '아직 이렇게 잘하는데 왜 은퇴하느냐'고 아쉬워할 정도다.
 
이대호는 한국야구에 남긴 업적과 기여도를 인정받아 KBO리그 차원에서 프로 10개구단이 모두 동참하는 '은퇴투어'를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올스타전은 후반기에 진행될 은퇴투어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이기도 했다.
 
이대호는 올스타전 5회말 세 번째 타석부터 본인의 이름 대신 '덕분에 감사했습니다'라고 팬들에게 전하는 문구가 새겨진 적힌 유니폼을 입고 나섰다.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은 이대호의 이름과 응원가를 연호하며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기념행사에서는 허구연 KBO 총재와 이승엽 총재특보가 축하 기념액자와 꽃다발을 선물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이대호가 야구를 시작한 이후 만난 신종세 감독, 일본의 야구 원로 왕정치, 소프트뱅크 야나기타 유우키, 로이스터와 양상문 전 롯데 감독 등 은사와 동료, 지인들이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대호의 은퇴를 축하했다.
 
수많은 팬들과 야구 관계자들로부터 아낌없는 축하를 받던 이대호는 결국 울컥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옆에 있던 아내 역시 남편의 모습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이대호는 "저보다 아내가 더 많이 고생했다"며 아내에게 영광을 돌렸고 이어 "그동안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더 좋은 사람으로 남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대호는 관중석을 향하여 연이어 큰절을 올리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올스타전에 함께한 모든 선수들이 합심하여 이대호를 힘차게 헹가래쳐주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대호는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관중석을 천천히 돌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올스타전의 피날레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2022 올스타전은 KBO리그가 추구하는 방향에 걸맞게 어느때보다 '팬 퍼스트'가 빛난 축제의 장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선수들은 다양한 퍼포먼스와 팬서비스를 선보이며 눈과 귀가 즐거운 명승부를 선물했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3년 만에 돌아온 축제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프로야구의 40년 역사를 하루에 담아낸 듯한 역대 최고의 올스타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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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올스타전 이대호 정은원 은퇴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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