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회 EBS 국제다큐영화제가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열립니다. '다큐의 푸른 꿈을 찾아서'라는 슬로건으로 찾아온 이번 영화제에서는 총 24개국 63개의 작품이 소개됩니다.[편집자말]
<그레타 툰베리>(감독 나탄 그로스만)는 내가 본 두 번째 환경 영화다. 뇌구조를 그리라면 절반 가까이 '플라스틱 쓰레기와 지구 온도'로 채울 수 있을 만큼 자나 깨나 지구 걱정인 사람치곤 적은 편수다. 이유는 있다. 영화를 보며 어떤 공포와 절망을 느낄지 알기에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레타 툰베리>를 보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하고 싶지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숙제처럼 영상 속 그레타를 대면하는 순간. 1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이 고통의 시간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예감이었다.
 
공포영화보다 무섭고 신파극보다 눈물 나는 영화는 흔들리는 배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그레타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2019년 8월, 뉴욕에서 열리는 유앤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지난 몇 달이 꿈이나 형편없는 내용의 영화 같다'는 그레타의 내레이션에 이어 산불과 홍수 폭풍우와 같은 전 세계 기상 이변과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영화 내내 맞닥뜨리게 되는 부조리와 아이러니의 순간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끔찍한 재난의 장면 위에 지구온난화를 음모론이라 비난하며 비꼬는 사람들의 음성을 덧댔다.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일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중반을 지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지금 변하지 않으면 대멸종을 피할 수 없다"라고 호소하는 그레타의 모습과 경청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무시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의도도 연출도 아닌 현실이다. 실제로 그레타는 끊임없이 위기를 알리고 변화를 요구했고, 정치인들은 기념촬영을 하고 기립박수는 칠 지언정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어른들의 입에서 나온 그나마 긍정적인 반응은 '유럽 전역의 변기를 통일하여 많은 에너지를 아끼는 방안을 추진하자' 정도. 그레타의 절절한 호소 뒤에 이어진 어이없는 대안에 그레타는 통역을 전하는 헤드셋을 벗었다.
 
그레타가 하는 이야기들은 시쳇말로 팩트 폭격과 같다. 영화 속 그레타가 아빠와 나누는 대화나 내레이션은 현재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실감하게 한다.

그레타가 연설문을 쓸 때 아버지는 '대멸종'이라는 단어를 빼는 것이 어떻겠냐고 슬쩍 참견을 하고, 그레타는 단호하게 핵심적인 단어라고 말한다. 그레타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겠다. 믿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현실. 아직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현실에 살며 머지않아 끔찍한 자연 재해 속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죽어가기 시작할 거라는 주장을 어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혹은 다들 조금씩은 인정하고 걱정하면서도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나며 믿고 싶지 않은 심정일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대멸종'이란 단어는 경각심을 심어주기보다 이슈 자체를 외면하고 싶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레타는 늘 직진이다. "지금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라"라고 말한다. 그레타의 말처럼 "기후위기의 해결책이 티백을 찻잎으로 바꾸고 일주일에 한 번 채식하는 거라면 위기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녀 그레타가 '기후위기운동'의 상징이 되기까지
 
 다큐 <그레타 툰베리> 스틸 이미지.

다큐 <그레타 툰베리>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그레타는 8살 무렵 기후위기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굶주린 북극곰, 홍수, 허리케인, 심각한 가뭄, 우리의 행동을 바로잡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는 과학자들. 그때부터 그레타는 우울감과 불안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시작한 일이 결석 1인 시위다.

그레타가 처음 결석시위를 시작했던 2018년, 스웨덴에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때였고, 그레타는 선거에서 '기후위기'를 보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다루기를 요구하며 교실 의자 대신 의회 앞 찬 바닥에 앉았다. 그런 그레타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평일에 거리에 앉아 있는 소녀의 사정이 궁금했던 한 노인과 그레타의 대화를 전한다.
 
"왜 시위를 하고 있니? 학교에 가지 않고."
"미래가 없는데, 배워서 뭐해요?"
"지금 열심히 배워야 미래도 바꾸는 법이란다. 청소년의 본분은 배우고 공부하는 거잖니. 노인들에게는 이미 늦은 일이야. 어른들이 좀 부족하다고 시위하는 게 맞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노인은 그레타에게 질문을 하지만 대답을 듣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보다. 그레타의 생각을 듣기보다 학생은 학교에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양, 할 말만 하고 마뜩찮은 듯 고개를 저으며 갈 길을 가는 노인의 모습이 낯익다. 노인은 공부할 '시기'를 놓치지 말라고 조언하고, 소녀는 '지구를 구할 시간'이 아직 있다고 답하는 기이한 대화가 가슴 아프다.

어쩌면 노인의 고갯짓이 대다수 기성세대의 모습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미래는 희망보다 절망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닐까 우울해질 즈음. 따뜻한 시선과 언어로 그레타를 보듬는 사람도 등장한다.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 얼마나 앉아 있었니?" 20대로 보이는 청년의 관심을 시작으로 그레타 주위에 사람들이 모였다. 언론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투표 당일, 기후위기를 당면 과제로 여기는 녹색당은 3.4%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고, 환경의제는 선거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레타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어른인 나는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다.
 
그레타는 절망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나는 열다섯 살, 그레타 툰베리입니다. 3주간 결식 시위 후 매주 금요일마다 시위를 계속할 거예요. 누구든 환영해요. 동참해 주세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호소다. 이 즈음부터 그레타를 찾는 어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폴란드 카토비체 기후변화협상에서 연설해 줄 것을 제안 받는 것을 시작으로 그레타는 유럽 여러 곳에 초청받아 연설을 한다.
 
"너무 오래 권력자들은 기후위기를 방관했어요. 더는 그대로 두지 않을 거예요. 어른들은 희망찬 미래를 말하죠. 다음 세대가 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책임질 만큼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어른들이 만든 난장판을 책임지고 끝까지 치울 겁니다. 이목 끄는 데만 관심이 있고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뭐가 통하는지 아는 어른들. 실제로 전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요!"
 
문제는 이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막상 힘이 없다는 것. 아무리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미래세대가 바꿀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한계점에 곧 다다른다"고 외쳐도 귀 기울이는 사람은 적고 그나마도 그레타 툰베리와 다를 바 없는 힘없는 한 소시민일 뿐이다.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이 작은 소녀를 향해 날선 비난과 조롱을 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힘 있는 어른들이었다. 그레타를 죽이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하지만, 협박보다 행동하지 않아서 생길 문제가 더 두렵다고 말하는 그녀는 오히려 사람들이 알 때까지 반복해서 계속 이야기할 것이라 결심한다.
 
기후위기 운동의 아이콘이 된 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다큐 <그레타 툰베리> 스틸 이미지.

다큐 <그레타 툰베리> 스틸 이미지. ⓒ 영화사진진

 
처음 기후위기에 대해 알게 된 후 그레타는 전기를 아끼기 위해 온 집안의 불을 끄고 플로그를 빼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소비중심적인 생활을 해왔다고 고백한다. 많은 물건을 사고 고기를 먹고 휘발유차로 전 세계를 여행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레타를 향한 몇 가지 비난 중 하나가 그레타가 부모의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가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기에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기후위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변화시키기 위한 그레타의 1년 동안의 삶을 담은 이 영화를 보면 동의할 수 없는 의심이다.

나 역시 부모라 그레타 곁을 지키는 아빠의 얼굴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어린 소녀인데다 아스퍼거증후군 진단을 받은 딸이 감내하기엔 벅찬 현실. 최대한 존중하고 응원하면서도 먹기를 거부하며 한껏 예민해져 있을 때는 제발 무엇이라도 먹어 달라고 사정하는 모습에 함께 마음을 졸였다.

기후위기와 전혀 노력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해 2년 동안 가족과만 대화하며 동굴 속에 스스로를 가뒀던 딸이 1인 시위를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아빠는 그림자처럼 딸을 돌본다. 피곤한지, 기분이 어떤지, 음식을 먹었는지, 스트레스가 심하지는 않은지 살피면서 말이다.

그레타와 함께 케이크를 만들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엄마에게서도 영화 속에는 담기지 않은 가족의 아픈 시간들을 엿볼 수 있었다.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 후, 입을 다물고 음식을 거부했던 딸이기에, 함께 웃고 대화하는 시간이 얼마나 그리웠을지 또 얼마나 반가웠을지 짐작이 간다.

기후위기를 재촉한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거부하는 딸로 인해 여행을 위한 비행기 탑승을 중단하고, 2017년부터는 고기도 끊었다는 가족들. 꼭두각시이긴 커녕 오히려 가족의 생활방식을 바꾸게 만든 그레타였다.

어린 소녀가 짊어 매기엔 너무나 무거운
 
유럽 전역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전 세계적으로 퍼진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를 이끌며 환경운동계 아이콘이 된 그레타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정상회의에 연설자로 초청을 받는다. 스웨덴 중등교육기관 김나지움 입학과 겹친 일정이었다. 공부를 좋아하는 그레타에겐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지만 참석을 결정한다. 기후위기를 안 후 비행기 타기를 멈췄던 터라 작은 요트로 대서양을 건너는 방법을 택한다.
 
 다큐 <그레타 툰베리> 스틸 이미지.

다큐 <그레타 툰베리>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길고 험한 항해를 위해 항구로 향하는 기차에서 그레타는 울었다. 그레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없이 위로하던 아빠도 사실은 울고 있었다. 평범한 딸과 아빠의 생활이 아니었다. 매일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시험 스트레스와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한 번씩 우울감에 빠져야 보통 청소년 아닌가. 그런 딸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도 평범하다. 맛있는 음식으로 기분전환을 시켜 주고, 원하는 것을 선물하거나 가족여행을 갈 수도 있다. 대부분의 가정생활은 그런 식으로 채워진다.
그레타의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책임감으로 어깨가 너무 무겁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데, 감당하기가 버겁고 온종일 매여 있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 건 알지만 책임감이 너무 크다."

그레타가 행동하는 이유는 기후위기를 알리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것! 노력만큼 결실을 얻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녀를 따라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힘겨운 2주간의 항해를 마치고 미국 뉴욕에 도착한 날, 수많은 인파가 그레타를 환영했다.

영화 밖 비하인드, 그레타를 향한 비판

그레타 툰베리는 아스퍼거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들먹이며 그녀의 주장을 폄하한다. 앞과 뒤가 다른 이중인격자라는 비판도 있다. 영화 속 한두 장면, 플라스틱용기에 든 비건 음식을 먹는 것과 고급 가죽소파에 앉은 것을 두고 손가락질을 한다.

심지어 그레타의 조부모,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부유한 환경 역시 과녁이 되고 있다. 비행기 대신 친환경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선택도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요트를 운전하는 선원들이 비행기를 이용했기 때문이란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를 상표로 등록하여 엉뚱한 사람들이 돈벌이로 이용하는 것을 막는다든지 그레타가 그동안 받은 상금 100만 달러(한화 약 12억 원)로 재단을 설립한 것도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가십거리.

나에게 "자동차도 타지 말라"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100% 실천하지 못할 거면 말도 꺼내지 말라는 얘기일까? 속사정을 알 수는 없으나 짐작은 된다. 플라스틱용기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려 노력하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적지 않음을 알기에 단 한 장면으로 그레타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싹 다 버리는 게 환경을 위한 일은 아닌데, 언제 구입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는 가죽 제품을 보고 자신의 온 시간을 오로지 기후위기를 막는 데 쓰고 있는 소녀를 비판하는 것이 합당해 보이지도 않는다.
 
나도 당신도 그레타, 우리 지치지 말아요
 
그레타가 느끼는 우울감과 절망감에 대해 잘 안다. 화장실도 없는 작은 배에서 그레타는 '지금만 생각하고,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그 힘겨운 시간을 버텼는데, 지금 나도 비슷한 방법으로 현재를 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며 좋은 생각만 하기. 실제로 지구 온도 상승을 늦추거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조금 더 편안해졌다.

언젠가 큰아이가 한밤중에 일어나 울먹였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마을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었다는 아이에게 우리 마을은 지대가 높아 물에 잠기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그레타의 표현대로 '희망고문'이었나 싶어 마음이 아프지만, 영화가 끝나기 전 그레타의 이야기에 매달려보고 싶다.

"미루지 않고 위기에 제때 대처한다면 문제가 그리 커지지 않을 거예요. 대응이 다르면 그 결과도 다르죠. 그러니 더 나아지겠죠."

2019년 9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엔 7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고, 지금도 매주 금요일이면 전 세계에서 기후정의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진다.

성인이 된 그레타는 여전히 기후를 위해 계속 싸우고 있고, 전 세계 수십 만 명이 그녀를 지지한다. 영화는 제2, 제3의 그레타들의 외침으로 끝난다. 수많은 그레타들이 제발 지치기 않기를 바란다. 그들이 멈추지 않는다면 나도 계속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기후위기 #그레타툰베리 #지구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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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가장 큰 걱정인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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