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과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올해 극장가 또한 큰 기대감이 감지됐다. 지난 5월 개봉한 <범죄도시2>가 1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곧이어 6월 개봉한 <탑건: 매버릭>이 800만 명을 넘어설 때만 해도 국내 극장가가 완연한 회복세를 넘어 정상화될 것이란 관측이 대세였다.

하지만 여름 시장을 노린 블록버스터 대작들이 연이어 실패했고, 하반기 주요 영화들 일부 또한 고전하는 모습이다. 2023년 또한 이 흐름이 이어질까. 박스오피스 주요 이슈를 짚어보며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범죄도시2>와 <탑건: 매버릭>의 성공과 <외계+인 1부> <비상선언> 등의 실패는 극장가가 팬데믹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게 착시효과였음을 방증함과 동시에 작품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업계 정언 명제를 재확인하는 사례가 됐다.

네 영화 중 앞선 두 영화에 힘입어 올 상반기 극장 매출액은 4529억 원(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기준)을 기록했다. 팬데믹 한복판이던 전년도 동기 대비 143%나 증가한 수치이며, 팬데믹 직전인 2019년(9307억 원)에 비할 때 절반 수준이다. 조심스럽게 회복세를 점칠 수 있는 수치였다.
 
 지막까지 남은 코로나19 방역조치 중 하나인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해제 논의가 재점화된 가운데 5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지막까지 남은 코로나19 방역조치 중 하나인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해제 논의가 재점화된 가운데 5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웃지 못한 성수기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여름 시장을 노리고 개봉한 대형 투자배급사들의 텐트폴 영화들 상당수가 흥행에 실패한 것이다.
 
<외계+인 1부>(7월 20일)을 필두로, <한산: 용의 출현>(7월 27일), <비상선언>(8월 3일), <헌트>(8월 10일)이 각각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다. 이들 영화는 적게는 250억 원, 많게는 33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는데 이중 유일하게 <한산: 용의 출현> 만이 726만명을 동원해 손익분기점(600만 관객)을 넘어 유의미한 수익을 올렸다. <헌트>는 손익분기점(420만)을 겨우 넘은 435만 명으로 체면을 차렸고, 이외의 영화들은 기대치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로 인해 7월, 8월 극장 매출액은 전년도 동월대비 크게 증가했지만 전통적으로 성수기라 할 수 있는 8월 매출액과 관객 수는 7월 대비 오히려 감소했다. 7월 극장 전체 매출액은 1704억 원, 관객 수는 1629만 명이었다. 2019년과 비교할 때 약 8% 정도 감소한 수치였고, 8월 전체 매출액은 1523억 원으로 2019년 동월대비 27.1%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7월 대 8월 매출액은 약 181억 원 가량 감소한 걸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7월 매출액보다 8월 매출액이 감소한 경우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시작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2012년부터 2019년 7월과 8월을 보면 꾸준히 천만 관객 동원 영화가 나왔고, 500만 명 이상 동원한 영화들도 틈틈이 있었다. 반면 올해 7, 8월 개봉작 중 50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한산: 용의 출현>이 유일했다. 전통적인 성수기라 할 수 있는 8월의 신화가 깨진 셈이다.
 
전체 파이 또한 줄어있음을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8월 한달간 극장을 찾은 관객은 약 2479만 명, 올해는 1495만이었다. 천만 명 정도가 줄어든 것. 2019년 7월 관객수가 2192만 명, 2022년 동월이 1629만 명으로 약 500만 명 차이가 난다는 걸 감안하면 8월 전체 관객수 감소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하반기, 중급 이상 상업영화 침체 이어져
 
여름 시장 학습효과 때문인지 또 하나의 대목인 추석 연휴 기간(9월 9일~9월 12일)을 노린 영화들이 경쟁을 피하는 양상을 보였다. 9월 전체 매출액은 1019억 원으로 2019년의 81.9% 수준이었고, 10월 전체 매출액은 615억 원으로 2019년의 49.7% 수준이었다. 9월에 비해 10월 성적이 크게 좋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역시 주요 기대작의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발생한 결과였다.
 
추석 기간을 노린 주요 상업영화로는 <공조: 인터내셔날>(아래 <공조2>)이 유일했다. 그 전후로 영화 <육사오 (6/45)>(8월 24일)와 <늑대사냥>(9월 21), 그리고 <정직한 후보2>(9월 28일), <인생은 아름다워>(9월 28일)이 2주 이상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개봉했다. 경쟁작이 없었던 <공조2>는 최종 698만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중저예산 규모의 <육사오(6/45)>는 198만 관객을 모으며 깜짝 흥행했다. 특히 이 영화는 추석 연휴인 3일 동안 30만 관객을 동원하며 <공조>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기도 했다.
 
11월과 12월 초까지는 기대작의 연이은 침체 흐름이었다. 앞서 <정직한 후보2>와 <인생은 아름다워>가 모두 손익분기점에 크게 미치지 못한 채 종영 수순을 밟았고, <자백>(10월 26일)과 <동감>(11월 16일), <데시벨>(11월 16일) 등 중급 이상 영화들이 개봉했다. 할리우드 영화 중에선 DC코믹스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블랙 아담>(10월 19일)과 마블 코믹스 영화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11월 9일) 등이 개봉했다.
 
이들 중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와 <인생은 아름다워> 뿐이었다. 이마저도 해당 작품들이 각각 208만, 116만 명으로 상영을 마쳐,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 영향으로 10월 전체 매출액은 615억 원, 전체 관객 수는 620만 명으로 2019년 동월 대비 41.7%였다. 11월 또한 비슷한 이와 비슷한 수준의 수치를 기록했다.
 
"관람료 급등이 파이 크기에 영향 미쳤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는 20일 오전 7시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을 기준으로 영화 '아바타'의 후속작 '아바타: 물의 길'(아바타2)의 누적 관객수가 307만3천여 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영화관의 아바타2 홍보물.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는 20일 오전 7시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을 기준으로 영화 '아바타'의 후속작 '아바타: 물의 길'(아바타2)의 누적 관객수가 307만3천여 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영화관의 아바타2 홍보물. ⓒ 연합뉴스

 
12월엔 반전이 있었을까. 여름 시장과 함께 연말 또한 주요 대목으로 꼽힌다. 주로 가족 영화가 강세를 이루는 연말 시즌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일찌감치 <아바타: 물의 길>(아래 <아바타2>)와 뮤지컬 영화 <영웅>이 박스오피스를 견인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12월 14일 개봉한 <아바타2>는 13년 만에 돌아온 속편, 그리고 전 세계 흥행 1위를 기록한 대작의 속편답게 흥행 수순을 밟고 있다. 25일 크리스마스 연휴를 지난 현재 해당 영화는 557만 관객을 모으고 있다. 일주일 차이로 개봉한 <영웅> 또한 동명의 인기 뮤지컬을 원작으로 약 140억 원을 들인 블록버스터다. 개봉 첫 주말과 크리스마스를 지나며 <영웅>은 80만 명을 불러 모았다. 당초 개봉 첫 주 100만 이상을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앞서 11월 23일 개봉한 <올빼미>가 누적관객 309만 명(12월 25일까지 기준)을 기록하며 선전 중이다. 일주일 뒤 개봉한 코미디 영화 <압꾸정>은 마동석이 직접 기획 및 제작했고 주연으로 참여해 큰 기대를 모았으나 60만 명을 동원하며 사실상 종영했다.
 
하반기에도 <아바타2>, 그리고 <올빼미>를 제외하고선 기대작들 여럿이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흐름이라면 천만 이상을 기대했던 <아바타2>도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결과적으로 올해 천만을 돌파한 작품은 <범죄도시2>가 유일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19라는 기대와 크게 다른 양상이다. 2019년 전체 관객 수는 2억 2667만 명으로 국민 1인당 1년에 약 4.1편의 영화를 보는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엔 그의 절반을 웃돌 것으로 예측된다.
 
대체 왜 이런 흐름이 나타났을까. 업계에선 극장 티켓 가격의 급상승, 그리고 관람 문화의 변화를 주원인으로 꼽고 있다. 팬데믹 기간인 지난 3년간 CGV를 비롯한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은 세 차례에 걸쳐 관람료를 인상했다. 2022년 상반기 기준 평균 관람료는 10078원으로 역대 최고치며, 주말 일반관 경우 15000원에 이른다. 영화 1편 관람료가 OTT 1개월 이용요금과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지난 10월 영진위가 발간한 '영화티켓 지수로 알아본 영화관람가격 적정성 점검' 등 관련 자료에 따르면 평균 관람료 기준 한국은 GDP 상위 20개국 중 9위에 해당한다. 적정한 수준으로 보이지만, 가격 상승률을 따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은 팬데믹 기간 14.4%의 가격 상승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중국이 8.6%, 일본 5.2%, 미국 4.5% 상승률이었던 것에 비할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GDP 상위 20개국 기준 한국의 관람료 상승률은 2위였다. 그만큼 관객들이 체감하는 부담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한달에 2편 이상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한 관객 A씨는 "확실히 티켓 가격이 부담된다. 아이맥스 영화만 해도 편당 2만 5천 원을 내야 하는데 두 세 편 볼 것들을 나름 고민하면서 한 두 편 정도로 줄이게 된다"고 전했다. 또다른 관객 B씨는 "그만큼 영화를 결정할 때 입소문이나 리뷰 같은 걸 더 참고하게 된다. 예전처럼 부담없이 극장엘 가는 경우가 줄었다"고 말했다.
 
한 멀티 플렉스 관계자는 "극장 관람료 인상이 당연히 박스오피스 흐름에 영향을 줬겠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큰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그는 "하반기에 들어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고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 등도 타격이 됐다. 관람 행태 또한 ott 플랫폼 등 영향으로 보다 확실한 재미가 있는 작품으로 쏠리는 등 관객 눈높이가 높아졌다. 결국 관객 기대치에 부응하는 작품들이 나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극장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관람료를 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아가 극장 간 패키지 관람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관람을 유도하도록 업계 관계자들이 함께 중지를 모을 필요도 있다"며 "결국 양극화 다극화로 관람 문화가 바뀌고 있는데 내년 또한 이 흐름이 이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2022 박스오피스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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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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