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방송사고로 미뤄졌던 '역도황제' 장미란의 이야기가 한 주 만에 다시 공개됐다. 지난 3월 1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183화는 '천재와 싸워 이기는 법', '위대한 유산' 특집을 연이어 방송했고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이 출연했다.
 
어느덧 은퇴 10년 차가 된 장미란은 현역 시절과 비교하여 인상과 체격이 사뭇 달라진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장미란은 "선수 때보다 근육량이 많이 빠졌고 식사와 운동을 적당히 병행하니 살이 빠지더라"고 밝히며 "촬영 때문에 일부런 살을 뺀 것은 어제 하루"라며 민망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유재석은 장미란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그때는 부끄러워하고 말을 길게 안 하셨다"라고 이야기하자 장미란은 "그때는 운동하느라 항상 몸이 피곤했다. 원래 토크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들으면 졸린데, 제가 이야기할 때가 가장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장미란은 역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 지인이 역도 감독이셨다. 저를 보더니 '어우'만 3번 연발하면서 몸이 너무 좋다고 하시며 역도권을 하셨다"고 떠올리며 "용기를 내서 처음 체육관에 갔을 때 남자 선수가 저를 보고 '우와 진짜 크다'고 하더라. 너무 속상해서 울면서 그냥 돌아왔다"고 상처받았던 순간을 고백했다.
 
그럼에도 장미란은 부모님의 꾸주한 권유로 인하여 결국 다시 체육관을 방문했다. 사전 지식 없이 가서 잠깐 배운 대로 자세 잡고 15kg짜리 바를 들었음에도 "하나도 안 무거웠다. 기록도 잘 늘고 반복하는 걸 좋아한다. 역도가 기록경기니까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저와 잘맞는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다"며 역도와의 운명적 인연을 소개했다.
 
알고보니 장미란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장사 가문으로 유명했다고. 부친은 역도선수였고 어머니 역시 스피드와 운동신경을 갖춰 장미란은 선천적으로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장미란은 역도 시작 6개월 만에 출전한 첫 전국대회에서 3등을 차지했고, 이후로는 1위를 차지했다. 운동 시작 4년 만인 2002년에는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본격적인 역도 전설의 탄생을 알렸다.
 
장미란은 첫 올림픽이었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 역도에 12년 만의 메달을 선사했다. 당시 은메달을 획득하고 두 손을 모으며 기뻐하던 장미란의 모습과 손에 피물집이 잡힌 장면이 큰 화제가 됐다.
 
"올림픽에 처음 나와서 메달을 딴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시상대에서 신나게 손을 흔들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제 손을 보고 난리가 났더라. 사실 보이는 것처럼 큰 상처는 아니었다. 팬들이 저보다도 안타까워해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셨던 것 같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올림픽 선수촌 생활은 고되기로 유명했다. 10년이나 선수촌에서 생활하며 힘들고 외로웠던 순간은 없었을까. 장미란은 "거기 들어갔으면 그게 룰이니까. 그대로 지키면서 하다보니까 10년이 지나가더라. 다른 사람을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 누가 말시키는 것도 반갑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운동 끝나면 식당에 '1등으로 밥 먹으러 가야지'같은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방금 한' 음식이니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많은 사람들은 장미란을 가리켜 '타고난 역도 천재'라고 평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연습량과 노력이 있었다. 장미란은 보통 하루에 2만~3만kg, 많을 때는 하루 5만kg까지 연습했다고 밝혔다.
 
장미란은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으로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중국 역도 선수 무솽솽과의 대결을 회상했다. 장미란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패배한 후 무솽솽이 더 큰 산처럼 보여 다시는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부담감을 토로했다. 경기 당시에는 자기도 모르게 상대가 실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장미란은 "그 순간 문득 제가 너무 부끄럽더라. 내가 1등하고 싶으니까 상대의 노력을 무시하고 실패하기를 바라는 모습이 부끄러웠다"고 밝히며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는 "'나도 준비한 걸 다 할 테니, 무솽솽 너도 준비한 걸 다 하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 뒤로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근데 끝나고 보니 제가 너무 좋아하고 있더라"고 회상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이후 장미란은 세계역도선수권 3연패,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화려한 위업을 달성하며 여제의 전성기를 열었다. 장미란은 당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구나" 싶었다고 밝히며 "세계 1등이 된 게 영광스럽고 역도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으면 뭔가를 해야 되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최고의 선수라도 시합을 앞두고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장미란은 경기장으로 나갈 때마다 "누가 나를 잡으면 주저앉고 싶은 마음, 누가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때마다 장미란은 "열심히 한 만큼 여기서 최선을 다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곤 했다고.
 
막상 시합에 들어가고나면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장미란은 "아무 생각없이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 같다. 연습 때보다 무거운 중량을 들어도 성공을 하고 들고 있으면 신기하게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장미란은 "두렵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시합 때는 복잡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연습한 대로, 해왔던 대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합 때는 다행히 항상 컨디션이 더 좋았다. 그게 저도 이상하다. 많은 훈련의 시간들이 제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것 같다"고 고백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일비일희하지 않는 멘탈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장미란은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나에게 아직 허락되지 않은 거구나' 잘 돼도 '이렇게 한번에 잘 될 리가 없는데' 생각하다보니 마음이 잘 동요하지 않게 되더라"고 이야기했다.

여제에게도 세월의 흐름은 피할 수 없었다. 장미란은 마지막 대회였던 2012 런던올림픽을 4위로 마치고 작별을 암시하듯 바벨에 손키스를 한 장면이 화제가 됐다. 장미란은 "유일하게 준비하면서 몸과 마음이 어려웠던 대회였다"고 회상하며 처음 겪어보는 부진에 스스로 당황했지만, 이내 "그동안 몸을 많이 썼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거기까지였나보다"라고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고백했다.
 
항상 정상의 자리에 익숙했던 장미란은 자신의 약해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을 직감하고 끝까지 포기없이 최선을 다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게 나의 올림픽 마지막 무대구나"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그래서 자신에게 많은 걸 알려준 바벨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장미란이 애써 눈물을 참으며 "부끄럽지 않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소감을 전하던 장면은 많은 국민들을 뭉클하게 했다. 여담으로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장미란에 이어 2, 3위를 수상했던 선수들이 훗날 약물 복용이 탄로나며 메달 자격이 박탈된 것은, '내추럴'한 순수 실력으로 세계를 제패한 장미란이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됐다.
 
2013년 1월, 장미란은 31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장미란은 몸과 마음이 가는대로 자연스럽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너무 편해지더라고. 고양시청에서 마련해준 성대한 은퇴식에서 장미란은 감사의 인사를 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장미란은 "그 짧은 순간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나간 시간들이 스쳐갔다.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이 너무너무 컸다. 역도로 인하여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또한 장미란은 배우 권상우, 고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등과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천국의 계단>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권상우는 언론을 통하여 장미란이 그녀의 열혈팬이라고 관계자들이 대신 언급한 말이 와전되어 연락이 닿게 됐다. 장미란은 권상우와 식사 자리를 가졌고 이후로도 올림픽마다 선물과 용돈, 직접 쓴 손편지 등을 잊지 않고 챙겨주면서 장미란을 감동시켰다고.
 
함 회장은 장미란을 물심양면으로 묵묵히 후원해준 '키다리 아저씨'같은 존재였다. 계약서 조항에 후원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었다는 장미란은 "후원자와 선수의 관계를 떠나서 제게 할아버지 같이 감사한 분"이라고 회상하며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응원을 떠올리면 다른 화려한 선수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현재 장미란은 은퇴후에는 재단을 설립하여 스포츠 후배들을 후원하고 양성하며 한국 역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장미란재단을 통하여 많은 청소년 유망주들이 장학금을 받았고, 지난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유도 김민종, 탁구 안재현, 다이빙 권하림 등 장미란재단 장학생 출신들이 국가대표로 성장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장미란은 "인생과 역도의 공통점은, 무게를 견디면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은퇴하고나서 많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던 장미란은, 그럴 때 기도를 하고 눈물을 흘렸지만, 다시 새 하루를 맞을수 있다는 것과 작은 일에도 '감사'를 되뇌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장미란은 "우리가 힘든 시간들을 왜 견뎌야 할까. 그런 시간들을 지나왔을 때 느끼는 안정감이 있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역도도 인생도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해볼 만하다. 지금도 어려운 일이 많지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한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장미란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매일 보이지 않는 것을 열심히 하고, 포기하지 않는 게 대단한 일이다"라고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바로 장미란이 스스로에게 항상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저한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저절로 되는 것은 없지, 저절로 되면 이상하지'라고 일깨운다"라고 설명했다. 장미란이 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넘어서, 지금까지도 최고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면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 대화였다.
유퀴즈온더블록 장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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