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멘탈> 공식 포스터

영화 <엘리멘탈> 공식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

 
부모는 결코 자식을 짝사랑할 수 없다. 부모의 사랑이 바다라면, 자식의 사랑은 물방울이다. 부모만큼 깊은 사랑을 내어 줄 순 없어도, 항상 자식의 삶에는 부모를 향한 마음이 비처럼 내려 천천히 스며든다. 그러니 자식은 때론 자신의 꿈보다 부모의 못다한 일에 매달리고, 부모를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저버린다.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엠버도 부모의 바다 같은 사랑을 갚고자 애쓴다. 비록 활활 타오르는 불이지만, 아버지 아슈파를 위해 가족이 일군 소중한 가게가 폐점 직전이란 것도, 자신은 가게를 물려받고 싶지 않다는 사실도 숨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아슈파에겐 실망할 일만 생기는데, 역시 애니메이션에도 자식들의 최대 난제 '부모님 실망시키지 않기'는 실패인 걸까?
 
부모의 사랑에 이민자 정체성까지 더하다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엠버가 유독 부모의 희생에 신경 쓰는 건 그들이 이민자이기 때문. 모종의 사연으로 낯선 타국의 땅을 밟아 맨바닥부터 올라온 부모이기에 엠버는 그 희생이 더욱 절절하다. 그래서일까 좋은 딸이 되기 위한 엠버의 머릿속은 오직 가게뿐,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하고자 다혈질 성격을 죽이려 애쓰고 아버지의 배달 신기록 속도를 깨기 위해 오늘도 오토바이를 세게 밟는다.

그러나 좋은 딸이 되려 애쓸수록 엠버의 불같은 성격은 더욱 타오른다. 결국, 중요한 기념일에 대형 사고를 치고 폐점 위기의 가게를 지키고자 처음으로 가게를 떠난다. 가게 밖 새로운 세상은 무섭고, 신기하고, 끝내 재밌다. 처음 보는 것 중에 앞으로 두고두고 보고픈 존재가 생겼는데 하필 불과 상극인 물 웨이드다.

언제나 '불과 물은 적'이라 가르쳤던 아슈파에게 웨이드를 소개할 수 없으니, 떳떳하지 못한 사랑은 빨리 끝내야 옳다. 엠버는 웨이드를 외면하지만, 자꾸만 그를 만나게 되고 사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바로, 가게를 물려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살려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것. 그는 부모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웨이드, 그리고 진짜 꿈을 향한 마음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러한 엠버가 마치 한국의 장녀 같다는 관람객 평이 많다. 외국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에게서 부모의 인정을 받고자 애쓰고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1순위인 'K-장녀'가 보이다니. 작품 연출을 맡은 '피터 손' 감독이 한국인 이민자 부모를 둔 또 다른 엠버였기에 그의 자전적 요소가 특히 효를 강조하는 유교 문화권 관객들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부모가 되어서도, 부모의 인정을 받고픈 우리들

<엘리멘탈>에서 부모의 인정을 받고자 애쓰는 건 엠버만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인 아슈파도 마찬가지다. 낯선 땅으로 떠나기 직전, 먼 길 나서는 아슈파를 향한 부모의 반응은 응원이 아닌 냉소였다. 낯선 땅에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게 될 거란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아슈파는 새롭게 정착하여서도 철저히 '불'로 살아가며 자신의 생(生)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는 불 원소의 전통 식품을 파는 가게를 차려 파이어 타운의 중심지로 성장시켰고 고향에서 가져온 불의 정체성을 담은 파란 불을 여전히 꺼트리지 않은 채 보관하였다. 다른 원소, 혹은 다른 문화와 접촉하지 않고 오직 '불' 속에 살아가는 아슈파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의 인정이 받고픈 아들이다.

<엘리멘탈>은 이민지의 정착기, 서로 다른 '불'과 '물'이 만드는 무지개 같은 사랑 등 다양한 메시지를 건네지만, 그중에서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은 자식일 때도, 부모가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의 인정이 받고 싶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사랑이라 칭하기엔 쑥스럽고, 뭉뚱그려 '효'라 말하기엔 부족한 자식의 마음을 <엘리멘탈>은 다양한 가족과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엄마 아빠, 전 당신의 자랑인가요?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엠버는 완전히 좌절한 상태로 부모를 마주한다. 진실을 털어놓으며 자신은 실망스러운 존재라고 말하는 엠버를 아슈파는 말없이 끌어안는다. "내 꿈은 가게가 아니라 항상 너였단다" 아슈파의 말에 엠버도, 그 자신도 상처가 천천히 아문다.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을 보며 떠오르는 건 영화 <식스센스>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은 자신이 귀신을 본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믿지 않자 할머니를 만났던 경험을 꺼낸다. 어머니가 할머니 무덤에서 건넨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everyday)'라고 전하자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린다.

"뭐라고 물으신 거예요?"
"내가...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냐고."

 
 감독 '피터 손'이 남긴 편지의 마지막 구절 '엄마, 아빠 이건 두 분을 위한 거예요!'

감독 '피터 손'이 남긴 편지의 마지막 구절 '엄마, 아빠 이건 두 분을 위한 거예요!' ⓒ 월트디즈니컴퍼니

 
어쩌면 우리들은 부모를 오해한 건지 모른다. 부모에게 자식은 만족스럽거나 실망스러운, 둘 중에 하나인 존재가 아니다. 낯선 땅에서 버티게 해준 유일한 꿈이자 똑같은 질문에 매번 '언제나'라고 답하게 만드는 존재. 부모의 지대한 사랑에 <엘리멘탈>은 영화로서, 자식으로서 이렇게 답한다.

'엄마 아빠, 이건 두 분을 위한 거예요.'
엘리멘탈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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