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악귀>의 한 장면.

SBS 드라마 <악귀>의 한 장면. ⓒ SBS


[기사 수정 : 2023년 12월 13일] 

SBS 드라마 <악귀>에서 사람들을 해치는 악귀는 원귀의 특성도 띠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아직까지 악귀의 정체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인 구산영(김태리 분)과 염해상(오정세 분)은 과거의 원한 관계를 중심으로 악귀의 실체를 추적하고 있다.
 
제1회 방영 때, 민속학 교수 구강모(진선규 분)가 어린 딸 구산영에게 장화홍련전을 읽어주는 장면이 있었다. 장화와 홍련의 혼령은 신임 사또들이 기절해 죽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악귀이지만, 계모와 이복형제한테 학대를 받다가 죽었지만 한을 풀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원귀였다.
 
악귀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원한을 품은 혼령의 존재는 이순신과 관련된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보좌한 어우당 유몽인이 집필한 <어우야담>에 따르면, 이순신 부대가 한산도에서 목재를 벌채할 때 원귀가 출현했다는 설이 있었다.
 
"임진란 때 통제사 이순신이 전함을 만들기 위해 수군을 동원해 한산도에서 목재를 벌채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일화는 벌채 작업이 중단된 이유를 귀신의 출현과 관련해 설명한다. 병사들이 나무를 베려 하자, 나무 위에서 휘파람 소리와 함께 다음과 같은 말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원하옵나니, 이 골짜기 나무를 베지 마십시오. 전쟁으로 죽은 혼들이(다른 판본은 '죽은 병사들의 혼이') 이 골짜기 나무들에 많이 의탁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대들이 나무를 벤다면, 우리는 다른 나무로 옮겨갈 겁니다. 원컨대, 이 골짜기 나무를 베지 마십시오."
 
원귀의 간청을 들은 군졸은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드라마 <악귀>의 악귀는 자기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이순신 부대에 나타난 원귀는 시원스럽게 정체를 밝혀줬다. "나는 전라도 유생 송(宋)입니다"라며 "일가 남녀들이 전쟁으로 죽었고, 나는 지금 이 나무에 의탁하고 있소"라고 답했다.
 
이순신 부대는 원귀의 '민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군은 결국 다른 골짜기로 옮겨갔다"고 <어우야담>은 말한다.
 
이순신과 귀신 이야기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 권우성

 
<어우야담>은 이순신이 꿈에서 원귀를 봤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꿈에 나타난 원귀는 셋째아들 이면(李葂)의 혼령이었다. 혼령은 아버지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죽음을 알린다. 가족이 꿈에 나타나 자기의 죽음을 알리는 일은 원귀의 등장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어우야담>은 이 이야기를 귀신에 관한 파트에서 소개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셋째아들 이면은 <난중일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집과 아버지 군영을 오가며 연락을 전해주는 그의 모습이 아버지의 일기에 많이 묘사돼 있다.
 
임진년·계사년에 이어 전쟁 3년 차인 음력으로 갑오년 5월 1일(양력 1594년 6월 18일)에 쓴 일기에는 아들 이면이 노비들과 함께 군영을 방문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침에 면(葂)과 집안 여자 노비 넷, 관의 여자 노비 네 구(口)가 병중에 심부름할 일로 들어왔다"고 써 있다. 노비를 셀 때 한 사람, 두 사람 하지 않고 동물을 셀 때처럼 한 구, 두 구 하던 노비제 사회의 실정이 반영된 대목이다.
 
이면의 건강 문제도 일기에 여러 차례 나온다. 음력으로 그해 7월 10일(양력 8월 25일)에 쓴 일기에는 "아침에 들으니 면의 병이 다시 심해지고 또 피를 토하는 증세까지 있다고 하기에"라고 적혀 있다.
 
사흘 뒤 이순신은 아들 때문에 직접 점을 쳐봤다. "비가 계속 내렸다"로 시작하는 이날 일기는 "홀로 앉아 면의 병세가 어떤지 염려되어 척자점을 치니"라고 말한다. 홀로 있는 시간에 아들의 건강이 염려돼, 글자 적힌 패를 던져 점괘를 얻었던 것이다. "매우 길하다"라고 일기에 적혀 있다.
 
이처럼 항상 아들을 걱정하던 이순신의 꿈에 이면이 나타나 자신의 죽음을 알렸다고 <어우야담>은 말한다. <어우야담>은 이면이 충청도 아산현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실을 설명하면서, 그가 온몸에 피를 흘린 모습으로 아버지의 꿈에 나타나 자기를 죽인 왜군의 신상정보를 알려주었다고 말한다. "항왜(降倭) 열셋 중에 저를 죽인 자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마침 이순신 군영에 있던 투항 왜군 13명 중 하나가 자기를 죽였다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이순신은 아들의 신변이 걱정됐다. 잠시 뒤 아들이 죽었다는 부음이 왔다. 그제야 이순신은 항왜 13명을 불러내 이들의 최근 행적을 심문했다. 그런 뒤 범인을 찾아내 형을 집행하고 아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어우야담>은 말한다.
 
 SBS 드라마 <악귀>의 한 장면.

SBS 드라마 <악귀>의 한 장면. ⓒ SBS

 
이면이 전사한 해는 정유년이다. 그해 음력 10월 14일에 이면이 이순신의 꿈에 실제로 나타났다. <어우야담> 말고 <난중일기>에 나오는 꿈 이야기다.  
 
그런데 꿈의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이순신은 이날 일기에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다"라며 "막내아들 면을 붙잡고 안은 형상이 있는 듯하다가 깨었다"라고 썼다.
 
꿈에서 깨어난 시각은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뒤였다. "4경에 꿈을 꾸니"라고 적혀 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라고 그는 썼다.
 
그날 저녁, 그의 집에서 편지가 배달됐다. 겉봉에 "통곡"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직감한 그는 가슴이 서늘해지더니 목놓아 통곡을 했다. 1597년에 쓴 일기는 그런 상황을 상세히 들려준다.
 
이처럼 이면의 전사는 1597년 일인데도, <어우야담>은 1592년과 1593년 사건을 설명하다가 이 사건을 언급했다. 또 항왜 13명에 관한 이야기 역시 1597년 일기가 아닌 1594년 일기에 나온다. 갑오년 11월 5일자(1594년 12월 16일자) <난중일기>에 "송한련이 대구 10마리를 잡아왔다"에 뒤이어 "순변사가 그의 군관을 시켜 항왜 13명을 압송하도록 했다"는 문구가 나온다.
 
이런 데서 알 수 있듯이, 이순신의 꿈에 관한 <어우야담> 기록은 부정확하다. 이순신이 아들의 신변을 항상 염려했다는 이야기, 이순신의 아들이 왜군의 손에 전사했다는 이야기, 이순신 부대에 항왜 13명이 들어온 이야기 등이 한데 어우러져 위와 같은 설화가 조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이야기가 동시대 사람인 유몽인에게 수집돼 <어우야담>에 기록된 것이다.
 
이순신 부대와 관련된 <어우야담>의 원귀 이야기는 실제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다.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임진왜란으로 생과 사의 경계에 서게 된 이들이다. 그런 처지로 인해 인간과 귀신의 교류를 평소보다 자유롭게 상상하게 된 사람들의 정서가 이야기 속에 묻어 있다. 실제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전쟁시대 사람들의 그 같은 정서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악귀 원귀 장화홍련전 이순신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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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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