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감독이 <아수라>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신작 <서울의 봄>이 11월 22일에 개봉해 33일 째가 되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드디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3일까지 986만 관객을 동원했던 <서울의 봄>은 극장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43만 관객을 모으며 누적관객 1030만을 기록하게 됐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천만을 넘긴 <서울의 봄>의 흥행기세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의 봄>은 지난 1979년에 있었던 '1212 군사쿠테타'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다. 배우 황정민이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는 전두광 보안사령관을 연기했고 1994년 데뷔 후 첫 천만 영화의 주연배우가 된 정우성이 고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연상케 하는 이태신 소장 역을 맡았다. 이 밖에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캐릭터가 1212와 관련된 실제 인물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서울의 봄>이 천만 영화가 되기 10년 전에도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주인공이 등장한 영화가 개봉한 바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영화 역시 <서울의 봄>과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천만 영화에 등극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다룬 영화이자 1981년 부산에서 있었던 군사정권의 용공조작사건을 영화화한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었다.
 
 1981년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변호인>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1년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변호인>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

사실 대통령은 직업적 특성(?)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굴곡진 현대사를 가진 대한민국에서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었던 대통령들이 유난히 많았다. 따라서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소재가 되곤 했다. 사실 재임 당시나 퇴임 직후에는 대통령의 이야기를 영화에서 다루기 쉽지 않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는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곤 했다.

영화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전직 대통령은 '독재자'와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하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2000년대부터 영화 <효자동 이발사>와 <그때 그 사람들> <덕혜옹주> <남산의 부장들> <킹메이커> 등 많은 영화에 등장했다. 물론 직접적인 이름 언급이 없거나 가명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성민이 연기했던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군복의 명찰에 '박정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못지 않게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 대통령이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등 각종 드라마에서는 고 박용식 배우가 전두환 전 대통령 역할을 도맡아 했고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이 10.26 직후의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에서는 백현진이 전 장군 역을 맡았고 < 26년 >에서는 성우 겸 배우 장광이 퇴임 후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기했다.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몇몇 영화 속에 등장했다. 2022년에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에서는 설경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만든 김운범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고 김인문 배우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기했던 패러디 영화 <재밌는 영화>에서는 영화 <동감>을 패러디한 장면에서 한국 대통령이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무전을 통해 끝말잇기를 하면서 친해져 남북정상회담까지 연결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엔 상업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했다. 2016년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 2017년 <노무현입니다>라는 다큐영화가 개봉했고 2019년엔 한 해 동안 <노무현과 바보들> <물의 기억> <시민 노무현>까지 세 편에 달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다큐영화가 나왔다. 그리고 그에 앞서 2013년에는 대통령이 아닌 '변호사 노무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변호인>이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송강호에게 백상예술대상 '대상' 안긴 영화
 
 소시민 연기에 특화된 배우 송강호는 <변호인>에서 엘리트 변호사 역할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소시민 연기에 특화된 배우 송강호는 <변호인>에서 엘리트 변호사 역할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변호인>은 1980년대 부산에서 활동했던 한 인권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물론 영화에서는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장면들을 대거 삭제했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관객들은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만든 인물이고 영화에 나오는 '부독련 사건'은 '부림사건'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영화 개봉 후 제작사와 양우석 감독도 <변호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제작사에서는 주인공 송우석 역에 송강호를 낙점하고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송강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잘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출연을 망설였다고 한다. 사실 2013년 한 해에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한재림 감독의 <관상> 같은 대작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던 송강호 입장에서는 굳이 연기하기도 어렵고 정치적 부담까지 따라오는 송우석 캐릭터를 맡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송강호는 긴 고민 끝에 송우석 역을 수락했고 그 후 어려웠던 투자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한다. 그리고 송강호는 최고의 배우답게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특히 송우석이 차동영(곽도원 분)에게 대한민국 헌법 제 1조2항을 읊어주면서 "국가란 국민입니다"를 외치는 장면은 <변호인> 최고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송강호는 <변호인>을 통해 백상예술대상 대상과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매 끼니 돼지국밥을 먹을 정도로 돼지국밥을 아주 좋아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 송강호는 체질상 고기가 맞질 않아 생선과 채소류의 식단을 즐긴다고 한다(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삼계탕을 좋아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송우석이 돼지국밥을 아주 맛있게 먹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송강호는 영화에서 돼지국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연기만으로 '돼지국밥 마니아 송우석'을 표현한 것이다.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넘기며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자 영화계에서는 실존 정치인을 내세운 상업 영화들이 기획됐지만 완성된 작품은 거의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영부인 고 육영수 여사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퍼스트 레이디-그녀에게>와 고 서세원이 제작을 추진했던 <건국대통령 이승만> 등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들은 대부분 반대의 정치이념을 가진 쪽의 주장만 담고 있어 제작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장인한 고문장면 재현한 임시완의 투혼
 
 박진우는 독서모임을 하고 야학을 운영했다는 이유로 국보법 사건의 주동자로 낙인 찍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박진우는 독서모임을 하고 야학을 운영했다는 이유로 국보법 사건의 주동자로 낙인 찍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 ⓒ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송강호라는 배우에게 크게 의존하는 영화 <변호인>에서 발굴한 최고의 신예 배우는 역시 부독련 사건의 최대피해자 박진우를 연기한 임시완이었다. 2010년 아이돌그룹 <제국의 아이들>로 데뷔한 임시완은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허염을 연기하면서 '연기돌'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변호인>을 통해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유망주 배우로 떠올랐다.

박진우는 술에 만취해 "엄마가 저렇게 고생해서 너 공부시키는데 데모하면 천벌 받는다"고 말하는 송우석에게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살아있는 것"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임시완은 박진우를 연기하면서 1980년대의 구타, 물고문부터 얼굴에 수건을 덮고 라면 국물을 코와 입에 붓는 속칭 '코렁탕'과 손발을 철봉에 묶어 거꾸로 매다는 '통닭구이' 고문까지 재현하는 투혼을 선보였다.

<서울의 봄>에서 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모티브로 한 정상호 대장을 연기한 이성민은 <변호인>을 통해 일찌감치 '천만 배우' 타이틀을 얻었다. 이성민은 <변호인>에서 송우석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부산신보 사회부 기자 이윤택을 연기했는데 속물근성을 가진 송우석을 못마땅해 하다가 영화 중반 이후 부독련 사건 변호에 진심인 송우석을 보며 마음이 풀린다. 영화 후반에는 송우석의 부탁에 각국의 외신기자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야인시대 2부>에서 정진영 역으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차광수는 <변호인>에서 송우석의 선배 변호사 박병호 역을 맡아 "국보법 사건은 형량싸움"이라는 논리로 진우의 무죄를 받아내려는 송우석과 대립했다. 하지만 후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퇴장 당한 송우석 대신 변호를 맡아 낮은 형량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차광수는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연행한 허삼수 전 보안사 인사처장을 연기한 바 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변호인 양우석감독 송강호 임시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