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부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준 남자 대표팀 선수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2024 부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준 남자 대표팀 선수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 제공

 
"한동안 우리나라가 강한 나라에 쉽게 패배하면서 많은 국민이나 팬분들이 '이제 이렇게는 안된다'는 인식을 하셨지 않느냐, 그 인식을 깰 수 있는 좋은 경기를 펼쳐서 긍정적이었다."

부산에서 남자 탁구 대표팀이 보여준 투혼을 관통하는 장우진 선수의 말이었다. 25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던 BNK부산은행 2024 부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자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만난 '만리장성' 중국에 매치 스코어 2대 3으로 패배하며 동메달을 땄지만, 한국 스포츠에 귀감이 될 명승부를 남겼다.

특히 중국 남자 대표팀은 예선에서 결승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의 매치 스코어를 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랭킹 1·2·3위 선수를 상대로 그야말로 다리가 풀릴 때까지 싸워 이기는 명승부를 펼치며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게끔 했다. 종목을 넘어 한국 스포츠에 꼭 필요했던, 그런 경기였다.

다리에 힘 풀릴 정도의 투혼... '원 팀'이 보여준 명승부

사실 우려도 컸다. 세계선수권 개막 직전에 종목을 둘러싼 잡음도 나왔다. 인기 종목의 국가대표팀이 여가시간 탁구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탁구 대표팀 선수들, 나아가 대회에도 난처한 상황이 이어지기도 했다. '원 팀'이 맞느냐는 본론적인 질문도 선수들이 자주 맞닥뜨렸다.

하지만 선수들은 경기로서 증명해나갔다. 라켓을 들고 나선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치면 함께 환호하고, 다른 선수가 부진하더라도 그 다음 세트에서 자신이 훌륭한 모습을 펼치며 다섯 명의 대표팀이 '원 팀'이 되었음을 경기장 안에서 증명해 보였다.
 
 2024 부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세계랭킹 3위 마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상수 선수가 포효하고 있다.

2024 부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세계랭킹 3위 마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상수 선수가 포효하고 있다. ⓒ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 제공

 
특히 여자 대표팀이 8강에서 중국과 경기를 펼치면서도 매치 스코어는 커녕 세트 하나 따지 못하며 아쉽게 패퇴한 모습에 실망도 적잖았던 탁구 팬들은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았을 터. 하지만 남자 대표팀이 준결승에서 지난 8강에서의 생채기를 날리는 활약을 펼쳐 보였다.

세계 랭킹 14위인 장우진이 세계 랭킹 2위인 왕추친과 맞붙었을 때의 모습은 모든 스포츠 팬을 감동시켰다. 첫 세트에서부터 왕추친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던 장우진은 왕추친을 4세트 승부 만에 승리하며 중국 선수들 본인은 물론 한국 팬들에게 놀라움을 남겼다. 

특히 팬들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장면도 있었다. '어퍼컷'을 날리며 승리를 자축한 장우진은 뜻밖의 승리에 긴장이 풀린 듯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앞선 매치가 얼마나 어려운 싸움이었는지 알 수 있었던 모습이었고, 자신이 쏟을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쏟아부었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대표팀 맏형인 이상수(세계 랭킹 27위)의 경기도 감동을 안겼다. 세계 랭킹 3위의 베테랑 마롱을 상대로 풀 세트 접전 끝에 고대하던 승리를 따내며 무려 12년 만의 승리를 따냈던 이상수는 승리 직후 두 손을 들어올리며 포효하며 그간 쌓였던 한을 모두 풀어내 감동을 안겼다.

물론 '세계 최강' 판젠동에게 매치 스코어 두 개를 헌납하며 패배하는 등 중국의 벽은 여전히 높았지만, 2점을 먼저 선취하면서 만리장성 정상 위에 잠시나마 올랐던 것은 선수들이 보여 준 진심이 담긴 투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도 하다. 

'투혼', '홈', '분석'이라는 재료가 더해져 나온 명경기
 
 2024 부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중국의 왕추친을 누르며 승리하는 기적을 거둔 장우진 선수.

2024 부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중국의 왕추친을 누르며 승리하는 기적을 거둔 장우진 선수. ⓒ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 제공

 
특히 이번 대회가 한국 탁구에 긍정적인 분기점이 된 이유는 홈, 부산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선수들 개개인과 대표팀이 한국 관중들의 응원으로부터 힘을 받기도 했고, 스포츠 팬들 역시 홈에서 펼쳐져 지상파 방송으로 생중계된 경기였던 덕분에 많은 관심을 보내고 선수들의 성과를 축하할 수 있었다.

남자 대표팀 주세혁 감독은 대회 종료 후 "한국이 희한하게 한국 홈경기에서는 정말로 잘했다. 서울·부산 아시안게임, 서울 올림픽 때도 성적이 좋았다"라며, "많은 관심도 보여주시고 기도 살려주신 데다 응원도 많이 해 주시는, 단합이 잘 되다 보니까 이렇게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도 있다. 이번 대회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출전국 중 유일하게 좋은 성적을 거둔 데에는 단순히 선수들의 투혼만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대 선수의 약점과 효율적인 공격 방법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선수와 코치진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한 부분도 '분석'이었다.

주세혁 감독은 "선수들이 경험이 많은 덕분에 지시나 작전에 변화를 줬을 때 잘 따라와주고 실행해 주었던 것이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변화 요인이었다"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장우진 선수 역시 "왕추친 선수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연구를 많이 했다"며 톺아봤다.

선수들의 투혼과 정신력이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로 하여금 승리를 따낼 수 있는 정확한 전략이었다. 남자 탁구 대표팀은 중국과의 경기 내내 파악한 상대의 경기력 면에서의 약점, 멘탈 면에서의 단점을 내내 건드리며 승리를 따냈다. 명확한 전력 분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다. 딱 '한끗 차이' 패배를 거둔 요인에 대해 주세혁 감독이 "마지막에 상대를 더욱 긴장시키고 몰아붙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라고 했듯, 막판으로 갈수록 중국의 강점이 부각되었다는 점이 패인이었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도 "20년 동안 세계 누구도 중국을 상대로 이렇게 좋은 경기를 한 적이 없었다"며, "이렇게 우리 선수들이 잘하는데도 힘들이지 않는 중국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지만, 빈틈은 보이더라. 감독과 코칭스태프와의 미팅을 통해서 어떻게 빈틈을 파고들어야 하는지 깊이 논의해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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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한중전 이상수 장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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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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