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8.07.16 08:01수정 2018.07.1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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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살리기냐? 죽이기냐?"
"중·고등학생 둔치로 불러놓고 4대강 홍보만…"


4대강 사업 초기 내가 쓴 비판 기사 제목이다. 기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나는 밤낮없이 협박에 시달렸다. 운영하던 지역신문사는 광고가 끊겨 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빚쟁이로 전락했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카메라와 노트북을 들고 금강을 찾았다.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들에게 욕지거리를 듣고 얻어맞아가면서도 취재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 사업이 단순히 자연을 훼손할 뿐 아니라 강에 기대어 살아가던 사람들의 희망을 짓밟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난 금강의 참살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금강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압박] 신문사 문을 닫다

서울 동대문에서 청바지를 팔던 '잘 나가던 사장' 김종술은 4대강 사업에 빈털터리가 됐다. ⓒ 김종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 여론은 좋지 않았다. 대운하를 염두에 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70~80퍼센트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정부의 꼼수가 시작됐다. 강변 정화활동이라는 목적으로 학생들을 강으로 불러서 4대강 홍보물을 나눠주며 정치도구로 활용했다. 국토교통부(국토부)와 시공사는 민방위 교육장까지 찾아가 4대강 영상을 틀어가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여기고 이런 내용을 기사로 써나갔다. 하나둘 나가기 시작한 기사가 5~6개에 이르자 항의가 빗발쳤다. "지역신문 기자가 무슨 이유로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책사업을 반대하느냐?"는 취지였다. 당시 내가 대표를 겸하고 있던 〈백제신문〉 소속 기자들은 물론 평소 친분이 있던 기자들까지 "그러다 큰일 난다"며 4대강 취재를 만류했다. 그런데 사고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그렇게 쓰면 안 되죠, 지역신문이 지역 이야기만 쓰면 되지 왜 정부의 국책사업 반대기사를 쓰나요?" 

내가 쓴 기사가 못마땅했는지 시청 공무원이 볼멘소리로 항의를 해온 것이다. 황당했다. 지역신문 기자가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비난받을 일인가?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공산성 앞 돌보를 해체하면서 발생한 물고기 떼죽음부터 공사과정의 기름 유출까지 묵묵하게 취재를 이어갔다.

"전라도 새끼가 여기까지 굴러와서 반대만 하는 거야?"
"오늘부터 우리 광고 끊어주세요…"


섬뜩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반격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항의전화에 시달리던 소속사 기자들이 4대강 반대기사만 쓰다가는 신문사 날아간다며, 내게 취재 중단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내 생각이 옳다고 믿고 끈기 하나로 버텨왔는데,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순 없었다. 직원들의 충고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어서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은 4대강 취재를 끝까지 하겠다는 입장을 직원들에게 통보했다. 망하는 길로 들어서 구렁텅이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홀가분했다.

[협박] "국정원 직원들이..."  

금강요정 김종술 ⓒ 정대희


"원하는 게 뭡니까? 원하는 대로 후원하겠습니다."

상대는 배고픈 사람 앞에 빵을 흔들어 보이는 추악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광고라는 달콤한 미끼를 가지고 시공사 직원들이 연일 사무실을 찾았다. 그러나 마약인 줄 알면서도 그 달콤함에 취해 받아먹는다는 것은 기자로서의 양심을 버리는 행동이었다.

그때마다 "제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 죽기 전에 다 쓰고 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가 씩씩거리며 문을 나서면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 평소 안면이 있던 지인이 중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때도 단칼에 거절했다. 그때마다 그들이 내뱉는 말은 비슷비슷했다.

"너무 강하면 부러집니다."   

광고가 줄어들고 후원이 끊어지면서 신문사의 재정상태는 급추락했다. 한 달에 1000만 원이 넘는 직원들 월급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고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갔다. 새벽같이 일어나 번개같이 씻고는, 다람쥐처럼 차에 올라타서 강변을 누볐다. 강에 나갈 때는 행복했지만, 돌아올 때는 천근만근 무거운 짐을 지고 돌아와야 했다.

강물에 휴대전화를 빠뜨리는 일은 예사였다. 미끄러지거나 가시에 긁혀 다친 상처가 하나둘 늘어갔다. 우루 수십 수백 번 강물에 담근 손은 70대 노인처럼 쭈글쭈글하게 변해갔다. 그 투박한 손으로 '독수리 타법'에 의지한 채 강변에서 쪼그리고 앉아 기사를 써서 보냈다.

[이상한 도둑] 하드디스크만 빼갔다

금강 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충남 세종시 세종보 하류에 위치한 요트 선착장에서 펄로 뛰어 들고 있다. ⓒ 이희훈


2009년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다. 2층 유리창을 따고 들어온 도둑은 사무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만 쏙 빼갔다. 서랍에 들어 있던 현금은 손도 대지 않았다. 값나가는 물건도 아닌데 웃기는 도둑이었다. 다음 해에는 집에도 도둑이 들었다.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컴퓨터 하드와 외장 하드만 가져간 것이다. 두 차례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지금까지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은 없다.

"청와대와 국정원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요즘 당신 이야기만 하던데 조심해요, 기사 좀 그만 쓰라고."

사무실을 들락거리던 경찰서 정보관이 한 말은 협박에 가까웠다. 겁나지 않는 척 "웃기는 소리 말라"고 하면서도 불안감을 떨치지는 못했다. 설마 사무실과 집에 든 도둑이 그들인가 하면서도 증거가 없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악몽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다. 지역 토건세력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협박을 해오기 시작했다.

"요즘 중국 사람들한테 돈 300만 원만 주면 사람 하나 묻어버린다고 하던데…"

신문사에 불을 지르겠다는 말부터 밤길 조심하라는 얘기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가 이어졌다. 그때마다 코웃음을 쳤지만 온몸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취재를 중단할 수는 없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으로 출근했다.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잘 새겨듣고 밤에는 될 수 있으면 활동을 자제했다.

[빚] 친구들도 내 전화를 피한다

'금강 요정'으로 불리는 김종술 시민기자가 취재비를 마련하려고 타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 ⓒ 안정호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한 달에 1000만 원, 1년이면 억 단위의 돈이 사라졌다. 신문사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더는 돈을 끌어올 곳도 없어서 마지막 남은 통장을 직원들 앞에 내어놓고 신문사 포기를 선언했다. 올바른 지역신문으로 키워보고 싶었던 꿈은 2년도 되지 않아 물거품이 되었다. 사장 잘못 만나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신문사를 내려놓으니 홀가분했다. 그러나 신문사를 접었다고 취재를 포기할 순 없었다. 기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직원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매달 감수해야 하는 금전적 고통이 사라지자 마음은 행복했다. 그날부터 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세종시부터 서천하굿둑까지 돌아가며 취재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만만치가 않았다. 한 달 기름값만 100만 원 남짓, 먹고 자고 하는 비용부터 가끔 비행기를 띄워 사진을 촬영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300만~500만 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민기자로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달에 기껏 수십만 원 정도였다.
 
지인들이 내 전화를 피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툭하면 돈을 빌려달라는 내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밥 사 먹을 돈이 떨어지면 도시락을 싸고, 차량에 기름이 떨어지면 공사장에 나가든 대리운전을 하든 닥치는 대로 일해서 기름부터 채웠다. 무슨 수를 써도 돈이 마련되지 않을 때는 배낭을 메고 강변을 걸으면서 풍찬노숙하고 있다.

[4대강 독립군] 강 같은 평화

'낙동강지킴이' 정수근 시민기자와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 등 '낙동에 살어리랏다' <오마이뉴스> 탐사보도팀이 25일 오전 4대강사업 후 지천에서 흘러드는 모래로 강바닥이 높아진 현장을 탐사하기 위해 투명보트를 들고 구미보 하류로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옳다고 생각한 일이기에 가난은 부끄럽지 않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배웠다. 지금까지 금강에 관해 쓴 기사만 1300건이 넘는다. 언제나 금강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가뭄과 추위를 견딘 다음해는 풍년이 든다는 말처럼, 어두운 금강에 다시 비단물결이 흐르리라는 것을 믿는다. 병든 금강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내가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4대강을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을 자처하고 나선 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강과 함께 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난 지금도 싸운다. 나는 지금 감옥에 갇힌 두 전직 대통령의 불법 혐의 내용에서 제외된 '4대강 죗값'을 끝까지 기록한다. 누군가 반겨주는 이 없고 월급을 주는 사람도 없는데, 오늘도 나는 금강에 나간다.

*위의 글은 오는 7월 말에 발간될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김종술 저, 한겨레 출판)에 게재될 글을 일부 발췌해서 재구성했습니다.

4대강 현장탐사-영화 만들기에 후원을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6월21일부터 금강과 낙동강을 탐사 보도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 수문을 연 '산 강'과 아직도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은 '죽은 강'을 비교하면서 4대강 사업의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또 오마이뉴스는 4대강 사업을 소재로 한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역자들은 아직도 4대강을 망친 죗값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4대강 다큐 영화는 불법 비자금을 집중 추적합니다. 부역자들의 '떡고물'을 전격 공개합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운 4대강 독립군의 눈물겨운 투쟁도 담습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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