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거대한 굴뚝. 그곳에서 쉼없이 올라오는 메케한 냄새 날리는 연기. 이런 공장이 경북 오지의 낙동강 협곡에 자리잡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 영풍제련소 공대위
▲ 낙동강 최상류 협곡을 따라 2~3킬로미터를 점령하며 들어서 있는 영풍제련소. 래프팅을 즐겨야 할 이런 협곡에 거대한 장치산업이 자리잡고 있을 줄이야. 2017년 여름의 모습.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협곡 아래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공장 굴뚝이 보였다. 하얀 연기가 치솟았다. 아래쪽에도 굉음을 내며 수증기를 뿜어대는 냉각탑이 보였는데, 커다란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뜨거운 공기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공장 아래쪽에 차를 주차하고 나오니 메케한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경북 봉화군 산골짜기의 풍경은 그로테스크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영풍제련소] 그로테스크한 풍경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지난 6월 25일 금강 취재를 마치고 낙동강 상류에 있는 영풍석포제련소(이하 영풍제련소)를 찾아갔다. 제1공장 앞 산 능선에는 2공장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이 설치됐다. 산 아래쪽에는 몇 해 전 대구-강릉간 무궁화 열차 철로 탈선 사고를 일으켰던 산사태로 30m 정도 보강한 콘크리트 터널이 보였다.
이곳의 공기 중에 섞인 수상한 화학약품 냄새 때문일까? 공장 뒷산에는 하얗게 속살을 내민 죽은 소나무들이 많았다. 3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아연 원석을 녹일 때 사용하는 냉각수만도 하루에 1만1천 톤에 달한다. 공장 관계자는 냉각탑 흰색 연기는 수증기라고 말했지만, 이날 현장에 찾은 봉화군 주민은 "냉각할 때에 만들어지는 묽은 황산이 섞여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 영풍제련소 제1공장 뒷산의 나무들이 죄다 고사했다. 공장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 때문에 나무가 모두 죽었고, 그 어떤 나무도 이곳에서는 살지 못한다는 것이 이곳 주민들의 증언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영풍제련소 1공장 뒷산의 나무는 죽어 거의 민둥산이 되어 있었고, 산은 무너저 산사태마저 일어나고 있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곳의 역사는 1970년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풍은 낙동강 최상류인 봉화군 석포면에 영풍제련소를 건설했다. 낙동강 발원지에서 불과 20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의 협곡을 점령한 영풍제련소는 48년 동안 영남의 식수원인 낙동강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아프다 아프다] 일본의 악명 높은 아연 공장의 후예
영풍제련소의 모태는 '이타이이타이병'으로 악명이 높았던 일본의 동방아연이다. '환경과 공해연구회'는 이타이이타이병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타이이타이병'은 1960년대 초반 일본 동방아연 아연제련소에서 배출하는 카드뮴에 장기간 노출되었던 주민들이 심한 요통·고관절통을 일으키고 보행 곤란, 사지와 늑골의 병적 골절, 전신위축 등을 일으켜 합병증으로 사망(258명이 카드뮴 중독증을 보였고, 그 중 128명이 사망하였다)한 일로 유명해졌다. 엄청난 고통 때문에 '아프다 아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은 중독의 '미나마타병'과 함께 일본사회를 중금속 공포로 뒤흔들었다."
일본 정부는 1968년에 이타이이타이병이 아연제련소에서 방출한 중금속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일본에서는 더이상 아연제련소가 설 땅이 없었다. 2년 뒤인 1970년에 세워진 영풍제련소는 동방아연의 기술력을 그대로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오지에 자리를 잡았기에 일부 주민들만 이 사실을 알았을 뿐,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논란의 역사] 불법 증설, 조업 정지
반세기 동안의 침묵을 깨고 '영풍제련소 봉화군대책위원회'가 결성된 것은 지난 2014년이다. 봉화 주민들은 영풍제련소가 제 3공장을 불법 증설하자 이에 반기를 든 것이다. 4대강 독립군을 만난 봉화군농민회 최만억 회장은 "영풍제련소는 청정 봉화 땅과 낙동강을 소리 없이 죽여 왔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범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절경. 영풍제련소에서 불과 20킬로미터 하류에 위치한 곳이다. 이처럼 구불구불 사행하천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협곡의 지형이 낙동강 발원지부터 이곳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발원지와 이곳 딱 한가운데 영풍제련소가 들어서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봉화군 석포면은 소백산맥 산자락과 낙동강 구비길이 만나서 분지를 이룬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하지만 영풍제련소가 계곡을 점령한 뒤 낙동강은 중금속에 오염된 죽음의 강이 되었고,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공기는 아황산가스로 오염됐다.
그럼에도 영풍은 근본 대책 없이 눈가림에 몰두해왔다. 주민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직원들을 새벽에 동원해 제련소 주변의 강돌을 닦아내는 모습도 목격했다. 폐기물을 땅에 묻고, 죽은 물고기를 건져서 감추었다. 하지만 공장 하류의 낙동강에는 거품이 떠다니고 샛강에서 들어온 물고기가 죽고 있다. 이 물고기를 먹은 새들도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옆에 있던 '영풍제련소 봉화군대책위원회' 신기선 위원장도 거들었다.
"연매출 1조4천억에 이르는 '알짜기업'인 영풍제련소는 공해산업을 이어가기 위해 각종 편법과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 1, 2공장만 하더라도 몸서리쳐지는데 영풍은 2014년에 제3공장을 불법 증설했다. 당시 1억4천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물었는데, 이때 제련소를 합법화해 준 봉화군도 문제지만, 낙동강을 오염시키며 치부를 하고 있는 영풍기업은 부도덕하다."
▲ 영풍제련소 전경. 낙동강 협곡을 따라 제1,2,3공장이 차례로 들어서 있다. 마치 낙동강 협곡을 점령하듯 들어서 낙동강 최상류 천혜의 자연환경을 앗아가 버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신 위원장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적발된 영풍제련소의 수질오염 및 불법행위는 43건"이라면서 "불법으로 공장을 증설한 것은 벌금 몇 푼으로 해결했고, 올해에는 70여 톤의 오수를 낙동강으로 무단 방출한 게 발각돼 '조업중지 20일'의 행정처분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뒷배경] 영풍제련소가 건재했던 까닭?
영풍제련소는 국회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인 홍영표 의원은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 자격으로 당시 이 문제를 집중 추적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10월 의원실 차원의 진상조사 결과를 담은 보도자료를 내고 영풍제련소가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폭로하기도 했다.
"영풍제련소 운영사 ㈜영풍의 소준섭 부사장은 대구지방환경청장 출신이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영풍제련소를 지도·감독하는 환경당국이다. 환경부 경인지방청장을 지낸 장성기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은 지난 9년간 영풍에 재직하고 지난 3월 임기를 마친 상황이다.
영풍그룹 계열사 고려아연 주봉현 사외이사는 전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이다. 앞서 이규용 전 환경부 장관은 5년 동안 고려아연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장관, 김병배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이진강 전 성남지방경찰청 성남지청장 등도 고려아연 사외이사로 확인됐다. 영풍그룹은 관료 출신 사외이사 비율이 80%(30대 기업 평균 43%)에 달한다.
영풍그룹은 재계 26위 기업으로 전직 환경부 관료를 필두로 고용노동부, 검찰, 공정거래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직 공무원들을 사외이사로 임명해 이들 전직 관료를 통한 민관유착 의혹이 강하게 의심되고 있다."
[현장 조사] 1공장 앞의 수상한 다슬기들
4대강 독립군은 이날 영풍제련소 제1공장 앞의 계곡을 살펴보았다. 영풍제련소에서 하루 600톤의 정수처리 된 물을 배출하는 방류구 바로 위쪽 1m 높이의 콘크리트 보 위에 올라갔다. 방류구 물은 파손된 보의 한쪽 틈새에서 쏟아내는 물과 마구 섞였다. 육안으로 봐서는 오염의 농도를 측정할 수 없었다.
▲ 폐수처리장의 처리수가 나오는 방류구다. 그 입구를 보이지 않도록 사석으로 막아뒀고, 보의 터진 틈으로 세차게 흘러나오는 물길이 방류수를 희석해버려 오염상태를 가린다고 이곳 대책위 주민들은 말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최종 방류구를 바윗돌로 막아버린 모습. 저 바위 틈으로 최종 처리수가 나온다. 희뿌연 물이 나오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최종 방류구에서 나온 희뿌연 물이 낙동강 물과 뒤섞이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영풍제련소 김명수 부사장은 2016년에 환경단체들과 주민들의 영풍제련소 현장조사 차원의 방문 당시 수질오염 문제를 불식시키려고 최종 방류구의 처리수를 직접 떠 마시기도 했다. 보 주변의 물속에는 물고기도 많았다. 다슬기도 드문드문 보였고, 심지어 수달의 똥도 발견했다.
이날 4대강 독립군을 맞은 영풍제련소 배상윤 본부장은 "굴뚝에서 배출되는 수증기는 일반 공장의 대기 기준에 따르고 있고, 방류수도 울산지역보다 5배 이상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정수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연간 2억 원을 들여서 환경조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방류수의 안전성을 신뢰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영풍제련소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항상 방문하는 이곳은 영풍제련소의 '무공해'를 입증하려고 만든 전시장으로 의심해볼 수 있었다. 문득 낙동강 수계의 어류를 연구해온 '담수생태연구소' 채병수 박사가 예전에 한 말이 생각났다.
"영풍제련소 부근의 낙동강은 강물이 세차게 흐르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중금속이나 화학물질이 유입되더라도 강물에 희석되고, 물고기들은 이동성이 좋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잘 죽지 않는다. 오염도를 보려면 바닥에 사는 저서성 생물들을 확인해야 한다. 강바닥에 중금속이 축적될 수 있고, 그 영향을 다슬기 같은 저서성 생물들이 직접 받는다. 2014년 11월 발생한 황산유출 사고 때 폐사한 어류를 분석했는데 수거된 폐사체 2만2467개체 중 1만6,65개체가 수수미꾸리나 참종개 등의 저서성 어류가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 협곡의 바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녹색 빛깔의 바윗돌 모습. 공기 중에 드러난 돌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물고기들이 살 수 있을까 싶지만, 1공장 콘크리트보 바로 아래 참종개로 보이는 물고기들도 보였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래서 이날 4대강 독립군은 영풍제련소 1공장과 하류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3공장 아래쪽의 낙동강으로 직접 들어가 강바닥을 확인했다. 바윗돌 밑도 살펴보았다. 이상했다. 분명 1공장 아래쪽에는 다슬기가 드문드문 보였는데, 이곳에서는 저서생물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반면 영풍제련소 1공장 상류 3km 지점인 성황교 아래에서는 다슬기가 바글바글했다.
불과 5km미터도 채 안 되는 구간의 상하류에서 이렇게 판이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와 관련, 오랫동안 저서생물을 연구해온 저서생물박사인 '코리아에코웍스' 박정호 대표(강원대 생명과학부 외래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정말 특이한 현상이다. 아마도 특정 양이온(주로 금속 물질... Fe, Zn, Cd 등)에 의한 '생태독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생태독성은 만성과 급성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지역은 아마도 만성독성에 의한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물속에 용해된 이온물질은 부유 또는 퇴적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후 부착조류에 흡수 및 농축된 것을 다시 강바닥에 서식하는 다슬기류와 같은 저서생물이 섭식하게 되어 그 축적 영향이 수십 배 이상 더욱 농축이 된다. 제련소 상류와 하류의 주요 서식생물의 존재유무가 명확히 차이가 난다면 하류의 생태독성이 심각하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 영풍제련소 상류 3킬로미터 지점 강바닥의 검은 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다슬기다. 바글바글했다. 반면 영풍제련소 아래 2킬로미터 지점에서는 다슬기를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영풍제련소 상류 3킬로미터 지점 강바닥의 검은 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다슬기들이다. 바글바글했다. 여러 주민들이 강에 앉아 다슬기를 잡고 있었다. 반면 영풍제련소 아래 2킬로미터 지점에서는 다슬기를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박정호 박사의 추론이 맞는다면 광범위한 생태독성이 펴져있을 수 있고 생물농축에 의한 추가 피해도 예상된다. 이곳의 물고기를 잡아먹은 사람들에 의한 2차 피해도 충분히 예상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 물로 농사를 지었다면 농작물이 중금속에 오염됐을 수도 있기에 빠른 시일 내에 정밀한 역학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또 다른 오염 의혹] 60개 굴뚝에서 나오는 비산먼지
영풍제련소에는 3공장까지 합하면 60개의 굴뚝이 있다. 이날 4대강 독립군을 만난 영풍제련소 배상윤 본부장과 한득현 환경담당 이사는 "엄격한 환경 기준에 따라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면서 수증기를 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영풍제련소의 대기오염 실태를 고발해온 환경운동연합 맹지연 국장은 "매연이 제련소 주변의 토양에 쌓이고 그것들이 비만 오면 씻겨 낙동강으로 유입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풍제련소는 제1종 특정대기유해물질배출시설(연간 80톤 이상 배출)사업장이다. 1, 2공장에 1종 11개 등 총 53개 굴뚝이 있지만, 대기자동측정망(TMS) 고작 3개뿐이다. 3공장의 경우 1종 2개 등 총 7개의 굴뚝이 있고, 특히 대기오염이 매우 심각한 'TSL공정'은 상시적인 환경감시가 필요함에도 대기자동측정망(TMS)을 아예 설치하지도 않았다.
TSL는 폐기물 속에서 아연과 동을 추출하는 공정이다. 이때 유해물질이 포함된 다량의 비산먼지가 발생한다. 생산 후 잔재물의 처리에 있어서도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적인 검증과 최소한의 환경관리를 위해서라도 대기자동측정망(TMS)의 설치가 시급하다."
이어 맹 국장은 "영풍제련소는 2015년에 봉화군으로부터 토양오염 정화명령을 받았지만 4년째 소송을 하면서 버티고 있다"면서 "정밀조사 결과 밝혀진 토양오염의 면적만해도 5만2950㎡에 달하고 이를 은폐하려고 불법 매립 후 공장과 창고를 그 위에 지었다"고 말했다.
▲ 영풍제련소 제1공장의 새벽 풍경. 온 공장에서 메케한 연기를 내뿜고 있다. 이들이 결국은 주변 산들을 산성화시키고, 비가 오면 그 오염원들이 낙동강으로 흘러들 수밖에 없다. ⓒ 영풍제련소 공대위
[봉화의 삼성] "환경이 밥 먹여주냐?"
이곳 석포면 주민들은 영풍제련소를 '경북 봉화의 삼성'으로 불렀다. 석포면 2215명(2017년 기준)의 인구 중에서 1186명이 제련소에서 일하고 있다. 제련소가 문을 닫으면 인구의 절반이 직업을 잃는다. 주변의 식당과 상가도 사실상 제련소가 문을 닫으면 함께 폐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4대강 독립군은 이곳 주민들을 만났다.
"사실 제련소의 환경이 좋지 않다. 우리가 작업하러 가면 가스냄새가 심하다. 옛날 시설이기에 낡았다. 바닷가 같은 곳으로 이전해서 보다 좋은 시설을 갖추고 운영을 하면 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부지 문제일 것이다. 돈은 있는데 부지를 못 찾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풍제련소에서 근무한다는 A씨(51세)의 말이다. 환경 공해 시설이어서 이전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주변 시선을 의식한 듯 서둘러 말하고 제련소 쪽으로 걸어갔다. 이날 4대강 독립군이 만난 다른 주민들은 대체로 영풍제련소의 환경 문제를 제기한 환경단체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최아무개씨(54)는 "영풍에서 아파트도 지었고, 우리는 거기에 기대어서 장사를 한다"면서 "환경단체의 말도 틀리지는 않는데 편파적"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풍의 문제점만 지적하는데 이곳에는 농사 짓는 사람들도 많다. 환경단체들은 농약으로 인한 토양오염에는 왜 침묵하나? 이곳은 과거에 비해서 좋아졌다. 저 굴뚝의 연기는 분진이 아니라 수증기다. 공장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물을 우리가 쓰고 있다. 우리도 바보가 아니다. 환경이 나쁘면 문제제기를 한다. 회사가 함부로 못 한다."
석포초등학교 지킴이인 김진석(72세)씨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석포제련소가 이전하면 석포면 주민 3000여 명 중에 300명만 남을 것이다. 환경단체는 대책 없이 선동하고 있다. 기업과 주민이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회사(영풍제련소)는 가스와 분진시설을 엄청나게 증설하고 있다. 폐수처리도 더 강력하게 하고 있다. 공장을 지으면 100% 완벽할 수는 없다. 다소 샐 수는 있어도 이를 저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93년도 이전에 영풍에서 20년 동안 근무했다. 용접-정비 등을 했다. 주민의 90%는 영풍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풍에서 오염물을 배출해서 안동댐의 물고기와 새가 죽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이다. 그 사이에 가축분뇨가 많이 배출된다. 제련소는 꼭 존재해야 한다. 환경을 가지고 밥 먹고 살 수 있나? 먹고사는 게 더 우선이 아닌가?"
▲ 낙동강과 철길을 사이에 두고 그 너머에 조성된 석포면. 이곳의 2000여명의 인구는 제련소 노동자이거나 제련소를 기반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영풍제련소에 대해서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석포면의 인가 바로 앞이자 낙동강 바로 옆에 거대한 황산 탱크로리(가운데 둥근 것)가 들어서 있다.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이곳에서 황산을 싣고가던 차가 전복해 낙동강이 황산으로 오염되고 수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죽어났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름을 밝히지 않은 50대 후반의 한 주민도 다음과 같이 강변했다.
"석포에서 승부까지 고기 한 마리 죽지 않았는데, 안동댐 물고기가 석포 때문에 죽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바람이 불면 황산냄새가 나긴 하는데, 건강에 큰 영향은 없다. 진폐증이나 천식으로 약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년에 폐수 때문에 말썽이 나서 주민들이 반발했는데 1년도 안 돼서 폐수 때문에 시끄럽다. 이런 건 회사에서 신경을 써야 한다."
그는 4대강 독립군과 헤어지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영풍제련소 아래쪽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은 없다. 아무래도 찜찜하지 않겠나. 성부 쪽에는 왜가리도 없다고 한다. 왜가리도 그 이유를 알고 있겠지. 하지만 봉화군도 이곳이 없으면 세금 수입이 바닥날 것이다."
이곳 주민들의 절대적인 생존 기반 위에 서 있는 영풍제련소의 실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이 지역의 환경오염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마치며] 대구 수돗물 파동과 영풍제련소
이날 4대강 독립군과 함께 현장을 둘러본 신기선 위원장은 마지막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영풍제련소 문제는 간단치 않지만 언제까지 이런 공해공장을 우리 식수원에 놔둬야 하나. 과거 이곳에 연화광업소라는 광산이 존재했고, 그곳에서 나는 아연 원광석이 있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광업소는 89년에 폐광이 됐다. 지금은 원광석을 수입해오면서까지 이곳에서 아연을 제련하고 있다.
영풍제련소의 돈벌이 때문에 낙동강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풍에 막대한 부를 계속 안겨주기 위해서 낙동강 물을 정수해 먹고 있는 영남인들은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 영풍제련소 하류 2킬로미터 지점의 낙동강의 아름다운 풍광. 하지만 강바닥엔 다슬기나 저서생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영풍제련소로 인한 생태독성이 영향일 수 있다고 저서생물 전문가는 설명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영풍제련소 인근의 고랭지 채소밭. 과연 이 채소들은 안전할까? ⓒ 영풍제련소 공대위
이날 현장 취재 때에도 내 핸드폰은 수시로 울렸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의 녹조를 취재하려고 이동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대구 수돗물 파동 때문이다. 대구 취수원 바로 위에 있는 구미산단에서 내보낸 과불화화합물로 인한 소동이었다. 기준치에도 미치지 않는 극미량의 발암물질이 나온 것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파동으로 확산됐다.
구미산단과 달리 경북의 오지에 있는 영풍제련소는 낙동강 최상류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고, 언론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낙동강은 1300만 영남인들의 식수원이다. 만약 대구와 부산 시민들이 영풍제련소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영풍제련소 문제가 구미산단처럼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포털의 메인 면을 장식한다면? 신 위원장이 나와 헤어지면서 한 말이 맴돌았다.
"아마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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