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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이 동학혁명 130주년이다. 그사이 반역에서 동학란으로 동학농민전쟁이었다, 백 주년에서야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역사는 물론 우리 의식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이름 하나 바꾸는데 백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동학혁명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혁명에 참여했던 오지영 선생이 지은 「동학사」 한 권을 들고 전적지를 찾아다니며, 그 답의 실마리나마 찾아보려 한다. 우리를 되돌아보는 기행이 되었으면 한다.
참여기자 :
동학농민혁명 그 이후 '대 일본 황제 폐하 만세'를 삼창한 사람들
전봉준 판결문과 노래로 남은 동학혁명... 사람다운 삶 바라던 이들의 영원한 불꽃
동학혁명군 지도자들이 처형당한 곳을 찾아... 전봉준과 전옥서 좌 감옥
손화중 피체제, 고창 부안면 송현리를 찾아
동학혁명군 장수 중 가장 용맹했던 김개남이 체포된 곳, 정읍 산내 종성리
전봉준 피체지, 전북 순창군 쌍치면 금성리 피노마을에 가다
그 자리가 무덤이 될지언정 싸우던 보통 사람들... 장흥 석대들판, 보은 북실마을
논산 황화산성, 원평 구미란, 태인 성황산 전투
공주 우금티 전투에서 좌절된 자주와 민주의 꿈
'나라 구하겠다'고 나선 혁명군이었지만... 백성 내세운 연합군 측 야비한 전술
동학혁명의 가장 치열한 전쟁... 충남 공주의 고갯마루를 향해
논산 대도소에서 남·북접 군의 결합... 일본은 '청야 작전' 돌입
동학혁명군, 삼례 재봉기 후 한양을 향해 길을 나서다
북접과 한길에 선 삼례 대도소... 동학혁명군, 축멸왜이를 외치다
김학진과 전봉준의 풍모... 한국에 참된 보수 있는지 묻게 하는 1894년 풍경
동학혁명군 남원대회와 갑오변란
전라도 53개 마을에 설치된 집강소... 노골적으로 간섭 시작한 일본, 밀려드는 전운
백성의 손으로 세운 자치 정부, 집강소... 세상을 앞서 걸어간 동학혁명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