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륵 조르륵 참새가 어느 틈새에서 사랑놀이를 하는지 그 소리 낭랑하다. 질세라 구구구구 비둘기가 앞산 너머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밤새 지붕 끝 물받이를 두드리던 빗소리도 이른 햇살에 밀려 먼 여행을 떠났는지 고자누룩하다. 겨우내 쥐죽은 듯 잠자던 이름 모를 풀들이 기지개를 켜고 앞마당에서 달리기를 한다. 누구 키가 더 큰지 내기를 하듯.
햇살이 아직 동창을 열기도 전에 먼저 훤한 얼굴을 들이미는 창 틈새기 사이로 이런 소리와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그런 집에서 산다 하여도 그 소리를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풍경의 주인공인 농부들은 이미 그들의 바쁜 농사일이 그 낭만을 방해하는 시기이고 보면, 그 일에 예외적 인물인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나만이 이 산골에서 마냥 자연이 내는 웃음소리를 들으려니 행복하다 못해 가슴이 찐한 게 아리다. 벌써 며칠 전부터 씨앗을 뿌려보자, 꽃씨를 심어보자 결심했지만, 아직 비가 안 와서 안 된다, 한낮의 해가 너무 뜨거워 안 된다 하며 핑계를 대왔다. 어제는 적당한 비도 와주었겠다, 이제 슬슬 꽃씨를 마당 곁 자투리땅에 심어봐야겠다.
길 가다 멈춰 서서 볼 정도로 날 현혹하는 개나리는 너무 샛노란 색이 민망할 정도다. 개복숭아 개살구 꽃도 분홍꽃잎을 떨어뜨려가는 진달래 자리를 메우고 있다. 점점 이 산 저 골이 푸른색과 빨간색, 그리고 연한 분홍색들을 칠하며 폭 빠지고 싶을 정도로 현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앞산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하다. 산과 골 사이로 난 오롯한 오솔길을 걸으면, 하나님이 작가가 되어 쓴 동화의 행복한 주인공이다. 처짐도 없다. 모자람도 없다. 늘어짐도 없다. 높음도 없다. 낮음도 없다. 그저 적당함만이 존재한다. 이런 동산이 내가 발 디딜 수 있는 동산이라니. 이런 골짜기가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골짜기라니. 아, 행복하다.
누구는 말한다. 생활비는 얼마나 받느냐고. 그 누구는 묻는다. 교인은 몇 명이나 되느냐고. 혹자는 내 대답에 시큰둥하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어찌 그리 행복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속으로 말한다는 걸 이미 난 안다.
사람들은 말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행복은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들은 말만 그렇게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 말에 자신도 없으면서 계속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말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우리의 슬픔과 불행이 바로 이런 말잔치 속에 숨어서 노는지도 모른다.
아, 행복하다. 오늘도 분명히 따스한 햇살이 내 창문 틈새기로 쳐들어올 것이기에. 아, 행복하다. 이름 모를 새들과 이름 아는 새들이 어울려 나를 위한 음악을 틀고 춤을 춰 줄 것이기에. 아, 행복하다. 여전히 이 마당, 이 산들, 이 골짜기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기를 쓰실 것이기에.
햇살이 아직 동창을 열기도 전에 먼저 훤한 얼굴을 들이미는 창 틈새기 사이로 이런 소리와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그런 집에서 산다 하여도 그 소리를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풍경의 주인공인 농부들은 이미 그들의 바쁜 농사일이 그 낭만을 방해하는 시기이고 보면, 그 일에 예외적 인물인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꽃봄은 꽃과 함께 기지개를 켠다. ⓒ 김학현
길 가다 멈춰 서서 볼 정도로 날 현혹하는 개나리는 너무 샛노란 색이 민망할 정도다. 개복숭아 개살구 꽃도 분홍꽃잎을 떨어뜨려가는 진달래 자리를 메우고 있다. 점점 이 산 저 골이 푸른색과 빨간색, 그리고 연한 분홍색들을 칠하며 폭 빠지고 싶을 정도로 현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앞산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하다. 산과 골 사이로 난 오롯한 오솔길을 걸으면, 하나님이 작가가 되어 쓴 동화의 행복한 주인공이다. 처짐도 없다. 모자람도 없다. 늘어짐도 없다. 높음도 없다. 낮음도 없다. 그저 적당함만이 존재한다. 이런 동산이 내가 발 디딜 수 있는 동산이라니. 이런 골짜기가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골짜기라니. 아, 행복하다.
누구는 말한다. 생활비는 얼마나 받느냐고. 그 누구는 묻는다. 교인은 몇 명이나 되느냐고. 혹자는 내 대답에 시큰둥하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어찌 그리 행복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속으로 말한다는 걸 이미 난 안다.
사람들은 말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행복은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들은 말만 그렇게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 말에 자신도 없으면서 계속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말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우리의 슬픔과 불행이 바로 이런 말잔치 속에 숨어서 노는지도 모른다.
아, 행복하다. 오늘도 분명히 따스한 햇살이 내 창문 틈새기로 쳐들어올 것이기에. 아, 행복하다. 이름 모를 새들과 이름 아는 새들이 어울려 나를 위한 음악을 틀고 춤을 춰 줄 것이기에. 아, 행복하다. 여전히 이 마당, 이 산들, 이 골짜기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기를 쓰실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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