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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독들이 신선이 되어 굽어보는 산

[여행] 계룡산 도덕봉을 오르며

등록|2008.06.09 16:31 수정|2008.06.09 16:31
계룡산에는 그 산의 크기만큼이나 지산, 지봉들이 많다. 그 봉우리들을 하나 하나 정복하는 것도 참으로 의미 있고 값진 일이다. 특히 유성구 덕명동의 수통골에서 오를 수 있는 봉우리는 빈계산, 금수봉, 도덕봉 등이 있다.
도덕봉 오르는 길

그 중 도덕봉은 그 오르는 길이 참으로 아기자기하다. 물론 4~5시간을 할애해 빈계산으로부터 시작해 도덕봉까지 한바퀴 돌아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지름길로 올랐다. 일단 주차장에 차를 대고(주차비도 입장료도 없어 좋다) 수통골의 골짜기를 왼쪽으로 끼고 잠시 걷다 보면 맨 먼저 나타난 등산 안내 표지판에서 제일 오른쪽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도덕봉으로 직진하는 가장 가까운 코스다.

수통골도덕봉과 빈계산, 그리고 금수봉은 이곳에서 오르기 시작한다. 오른쪽은 주차장이고 왼쪽은 등산로 입구이다. ⓒ 김학현


도덕봉은 동쪽과 서쪽의 외관이 전혀 다르다는데 산행의 묘미가 있다. 내가 오른 길은 바위와 비탈이 심한 곳이어서 산을 오르는 묘미를 더해 줘 좋았다. 가파른 길을 피하고 싶으면 성북동 삼거리 쪽으로 올라 보는 것도 좋으리라. 좀 돌 생각을 한다면 말이다.

철쭉꽃등산로 바로 앞 자전거 거치대 옆으로 철쭉이 흐드러지다. ⓒ 김학현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도덕봉을 오를 때는 좌암교를 지나 도덕골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산행코스를 택하는데, 안내판에 약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내가 오른 길은 좀더 가파른 길이라 50분이라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지만,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등산로도덕봉, 빈계산, 금수봉을 오르는 등산 안내판 ⓒ 김학현


도독들이 신선이 되는 곳

도덕봉은 높이가 534m밖엔 안 된다. 계룡산 천황봉에서 보면 황적봉을 지나 민목재를 넘은 후 관암봉과 백운봉(관암산)에서 좌측으로 갈라진 산으로 계룡산국립공원의 아주 작은 봉우리 중 하나다. 마을 주민들은 흑룡산(黑龍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늘매발톱꽃등산길에 접어들면 오른쪽으로 들꽃 화단이 조성되었있는데, 거기 핀 하늘매발톱꽃이 아름답다. ⓒ 김학현


왜 하필이면 도덕봉이라고 부를까? 산이 도덕을 잘 지키는 이들처럼 마냥 온순해서일까? 그러나 산을 오르며 느낀 점은 그리 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북동 삼거리로 오르면 몰라도 다른 길들은 다 그리 순한 길들이 아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니 그 이유는 도독들이 많이 기거하는 곳이어서 그렇게 붙여졌다고 한다.

이팝꽃수통골로 들어서는 길목, 한밭대학에서 수통골에 이르는 길이 온통 이팝나무꽃으로 흐드러지다. 도덕봉을 오르는 입구에도 역시 이팝꽃이 흐드러지다. ⓒ 김학현


'도독'이란 신라시대에 주(州)를 담당했던 지방장관을 말한다. 군주(軍主)나 총관(摠管)이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개칭한 직위로, 신라 505년(지증왕 6) 장수 이사부(異斯夫)를 실직주(悉直州:강원 삼척)의 군주로 삼으면서 이 명칭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한다(두산백과사전 참고). 바로 이들이 이 산 골짜기에 많이 살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등산로난간을 잡고 올라야만 할 비탈들이 수두룩하다. ⓒ 김학현


신라시대의 도독들이 지금 신선이 되어 대전과 유성을 굽어보고 있다고 하면 과언일까. 밑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고고함이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더해왔다. 중간 부분까지는 여느 뒷동산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중반 이후에는 그 오름세가 완만에서 가파름으로 바뀌면서 스릴을 더한다.

계룡산금수봉쪽으로 한 컷 담았다. ⓒ 김학현


한참을 오르다 발밑에 펼쳐지는 지고지순한 도시, 유성을 굽어보면 신라시대 도독들이 왜 이곳에서 그들의 삶의 터를 잡았는지 이해가 갈만하다. 오르다가 왼쪽을 촬영하면 아래로 살포시 도시가 들어오고, 왼쪽을 촬영하면 완만한 산세가 들어온다.

도덕봉정상도덕봉 정상은 대부분의 등산객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다. 탁 트인 전망을 기대했다가는 그 실망감으로 눈물을 흘리고 말 것이다. ⓒ 김학현


철계단을 오르고 칼바위들을 밟고 오르면 도덕봉이 그 팻말로 반긴다. 그런데 아직까지 밟아 온 길들의 신묘막측함과는 너무 동떨어져 실망하고 만다. 평범한 뒷동산, 바로 그 모습 그대로다. 다만 다르다면 계룡산국립공원 사무소에서 세워 둔 팻말뿐이다.

'그러니 계룡산의 도덕봉에 가려거든 정상까지 오르지 마라'고 말하고프다. '그러나 정상을 오르기 전에 이미 정상이 있으니 실망일랑 말라'고 또 말하고프다. 정상이 아니어도 정상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도덕봉, 한 번 올라보시기 바란다.

고작해야 3시간이면 등하산을 다 할 수 있는 산이니 노년이라도 그리 부담되는 코스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유성인터체인지에서 공주방향으로 가다 한밭대학쪽으로 들어서서 한밭대학을 왼쪽으로 끼고 직진하여 수통골 등산로 입구 주차장으로 들어서면 된다.
덧붙이는 글 <당당뉴스>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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