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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고개 여유롭게 운전하면 어떨까

미시령과 한계령을 넘으며

등록|2008.10.08 14:17 수정|2008.10.13 09:38

▲ 미시령 주차장에서 본 오른쪽 상등성이 모습 ⓒ 김학현

▲ 미시령 휴게소에서 찍은 아내와 아들 모습 ⓒ 김학현



요샌 길들이 얼마나 잘 뚫렸는지 모른다. 영동고속도로로 굽이굽이 넘던 대관령 길을 모두 굴을 뚫어 질주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 덕에 지난 3일의 여행은 한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연휴라 밀리는 차들 때문에 옹골차게 시간을 허비하긴 했지만.

이번에 군에 간 아들을 면회하면서 설악산을 중심으로 있는 두 고개들을 넘어볼 기회를 얻었다. 미시령과 한계령이 그것이다. 굳이 양양과 속초, 강릉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아들의 요구에 따라(외박은 부대가 위치해 있는 동네에서만 가능하다) 설악산 주변을 관광하기로 한 것.


때로 인생에는 오르막이 있다

아들은 곧이곧대로만 하는 녀석이다. 우리 부부 또한 거기에 못지 않다. 그러니 소위 '범생이들만'의 여행 잔치가 벌어질 수밖에…. 부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곳은 아예 생각도 못하다 보니 설악산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창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산이 아들 부대 가까이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설악산을 돌아보는 것으로 1박2일 아들의 면회 일정을 잡았다. 걸어서 설악산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좋은 감상은 없을 테지만 그것은 체력이나 시간 여건상 불가능하다.

하는 수 없이 두 개의 고개를 넘고 한 개의 골짜기를 등반하는 것으로 우리 식구의 설악산 구경 계획표가 작성되었다. 한 개의 골짜기 여행 기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에는 두 고개 여행 기사만 쓰기로 하겠다.

이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미시령은 미시령터널이 생겼다. 약간의 통행료를 지불하면 꾸부렁대는 옛길 대신 금방 속초 쪽에서 인제 쪽으로 달려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미시령의 옛길을 오르고 싶었다. 그래서 만남의 광장 오른 쪽으로 난 옛길을 택해 방향을 잡았다.

▲ 미시령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정중앙의 사진 ⓒ 김학현

▲ 미시령 휴게소에서 먹은 메밀 전병 ⓒ 김학현



앞에서 트럭 한 대가 힘겹게 기어오르고 있다. 이런 때 대한민국 운전자들이 잘 참지를 못한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말자' 다짐을 했기에 그 뒤를 잘도 참으며 따라 올랐다. 트럭이 내뿜는 매연을 피할 요량으로 좀은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갔다.

때로 우리는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야 할 때가 있다. 너무 힘들다고 심술만 피우지 않았는지. 다른 이들이 나의 앞길을 막았다고 불평만 해대지 않았는지. 너무 돌아가는 길이 지루하다고 게으름을 피우진 않았는지. 이런 생각들이 주마등 되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 새를 못 참고 추월하는 택시며 승용차가 어찌나 고마운지. 그들에게 트럭의 매연은 다 뒤집어쓰라고 하고 나는 멀찌감치 따를 수 있으니 말이다. 모처럼 여유 있는 운전을 해 보니 그 맛이 쏠쏠하다. 늘 한가로운 여행을 하듯 이리 멋진 운전을 해 보리라 다짐을 하며, 인생을 운전함에도 이러면 좋겠다 싶었다.

미시령 옛길의 정취가 나의 옛날을 떠올리게 하다

차를 댈 곳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내 자그마한 차 한 대 댈 데가 없으랴' 하는 여유로 잠시 기다리니 저만치서 차 한 대가 빠진다. 얼른 대고 차창을 여니 세찬 바람이 옷깃을 밀고 들어온다. 아직 여름이라고 푸념하며 지냈는데 내 사는 동네의 기운하고는 사뭇 다르다.

"여보, 추워요. 점퍼 걸쳐요."

아내의 충고가 귓전을 때릴 때까지 멍하니 밖만 쳐다봤다. 아내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점퍼를 걸치고 나가니 딴 세상이 위아래로 질펀하다. 휴게소 건물 뒤쪽으로도, 앞쪽으로도 장관인 산등성이들이 자기 자랑을 하며 고개를 내밀고 '나를 봐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 한계령 휴게소에서 휴게소 뒷산을 찍은 모습 ⓒ 김학현

▲ 한계령 휴게소에서 본 설악산의 모습 ⓒ 김학현



아직은 얇게 가을이 물든 산의 나무며 풀잎들의 모습이 꼭 엷은 화장을 한 여인네 모습이다. 아직은 짙지 않은 화장이 어떤 면에서는 더 아름다운 법, 미시령은 그렇게 얇게 가을 화장을 하고 나를, 내 가족을 맞아줬다. 참 자연은 정겹다. 언제 봐도 미시령은 그 모습으로 살갑다.

누가 말했던가. '휴게소는 들르라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 가족은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휴게소로 들어섰다. 첫 번에 내 눈에 띈 물건은 메밀로 빚은 큼지막한 떡, 내 눈빛을 알아챈 아내가 돈을 지불한다. 한입 베어 먹으니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

아들 녀석도 맛있는 모양이다. 크게 문 입이 탐스럽다. 아내만은 "별로네"라고 상인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말한다. 나중에 "왜 별로야?"라는 내 질문에 "봉평에서 먹던 메밀 부꾸미와는 비교가 안 돼요"라는 것이다. 아내 말을 들으니 나도 동의가 갔다.

다시 한 번 망원경 옆에 서서 사진도 찍고 바람도 맞았다. 미시령 한 가운데 서서 세차게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내 인생에도 이런 고개가 있었다는 생각을 생뚱맞게 했다. 지난 몇 년간 치렀던 자지러지던 인생의 고비 맛이 새삼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싸늘하다 못해 한파였던 그 맛….

한계령의 더 고운 맛에 취하다

난 '이 고개를 내려가며 과거의 내 인생고개도 다 내려와야 한다'라고 억센 다짐을 했다. 막 가을이 부스스 색깔들로 들고 일어나는 모습이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다. 용대리를 지나 다시 한계령을 오르며 아까 봤던 미시령의 가을 하고는 또 다른 정취를 느꼈다.

미시령이 엷은 화장을 한 여인네라면, 한계령은 한계를 모르고 찍어 바른 연지와 곤지가 선연한 예쁜 새색시다. 같은 설악산인데도 미시령 쪽과 한계령 쪽은 아주 다르다. 한계령은 이미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고나 할까. 벌써 울긋불긋 오색찬란하다.

▲ 한계령 휴게소 정면에 핀 들꽃들이 아름답다. ⓒ 김학현

▲ 좀 더 멀리서 찍은 한계령 앞 들꽃 언덕 ⓒ 김학현



한계령 하나만으로 봐도 오를 때와 내려올 때가 또 다르다. 오를 때는 그렇게 붉은 태를 내던 산들이 내려올 때는 다시 검푸른 색이 더 많다. 사람들은 같은 인생이라고 다 행복 아니면 불행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고개와 저 고개가 다르듯, 오를 때와 내려올 때가 다르듯, 인생 또한 불행과 행복이 교차한다.

많은 이들이 인생을 고개에 비유한다. 인생을 산에 비유한다.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 그냥 비유만은 아닌 듯하다. 이번에 설악산의 두 고개를 넘으며 인생의 고개 또한 이런 스릴과 만감이 교차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직도 두 고개 위에 섰을 때 불어오던 바람이 내 마음 속에서 일렁인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라도 고개를 넘듯 여유롭게 넘어 온 맘으로 맞다 보면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인생 고비마다 순간마다 차오르리라. 행복이라 부르면 행복이다. 불행이라 부르면 불행이다. 아들과 헤어지며 건넨 한 마디에 더 큰 힘이 주어진 것을 아들 녀석은 알려나.

▲ 한계령 휴게소 옆산의 모습 ⓒ 김학현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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