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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의 여인에게 유혹당하다

등산하다 말고 산중턱에서 좌욕을 할 줄이야

등록|2008.10.10 10:35 수정|2008.10.10 11:46
사람들은 말한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어 못 가고, 시간이 나면 돈이 없어 못 간다"고. 여행 이야기다.

뭐 이런 말도 있다. "젊어 건강할 때는 돈 버느라 못 가고, 늙어 시간 날 때는 건강치 못해 못 간다"는. 하여튼 사람에게는 모두 다 갖추기란 그리 힘들다는 얘기다.

나는 어떨까. 시간 없어 못 가는 쪽인가, 돈 없어 못 가는 쪽인가. 아무래도 후자인 듯하다. 그러니 소위 여행다운 여행(그런 게 있다면)은 좀 어렵고 최소한의 비용, 혹은 전혀 비용이 들지 않는 여행을 택할 수밖에 없다. 꽤 하던 해외여행도 못한 지가 벌써 7년이 넘어간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여행을 자주한다. 가까이는 오봉산으로부터 좀 멀리는 서해에 이르기까지, 산이며 바다며 틈을 낼 수 있는 한 여행을 즐긴다. 대부분은 가까운 곳으로 등산 가는 게 전부지만. 우리 여행은 대부분은 건강을 위해서다. 그러니 걸을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우리 부부의 여행지다.

▲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등걸이며 나뭇가지들을 모아다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다. 난로 앞으로 의자인 듯한 둥그런 물건 둘이 놓여 있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좌욕기구였다. ⓒ 김학현


▲ 자연의 한가운데서 옷 입은 채로 하는 좌욕, 그 맛이 어떠냐고? 그건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 김학현


비로산장에는 등산객을 유혹하는 여인이 있다

지난 7일 속리산을 오르며 예전에 몰랐던 산장을 하나 발견했다. 그냥 올라갔으면 몰랐을 텐데, 미지의 여인이 우리를 부르는 바람에 알게 된 산장이다. 속리산 입구에서 세심정휴게소까지는 잘 닦여져 차가 들락거리는 길이긴 해도 우리 걸음으로 거의 두 시간이 걸린다.

세심정휴게소를 왼편으로 돌아 오른쪽 신선대 쪽으로 방향을 잡아 잠깐 올랐는데 고개가 여간 가파른 게 아니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는 '헉헉' 하는 소리가 앞에서 걷는 내게까지 들리게 숨을 몰아쉰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렇게 힘드세요? 여기서 벌써 힘들면 안 되는데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나이를 알 수 없는 여인이 서 있다. 아내가 "그러게요. 아직 멀었는데 여기서 벌써 숨이 차네요"라고 말을 받자, "좀 쉬어 가세요. 여기 기막힌 게 있어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특히 여자들에게 그만입니다"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자 궁금해져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쉬기도 할 겸 그 여인이 가는 데로 따라갔다. 그곳에는 산장이 하나 있다. 자그마한 건물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고, 각호실의 출입문마다 그 위로 한문으로 무어라 써놓은 액자들이 걸려있다.

"산장인가 봐요?" 내가 묻자, 그가 대답한다.

"예, 산장이에요. 비로산장인데 며칠 전에 여기 왔다 너무 좋아 다시 들렀습니다. 어제 여기 왔는데 여기서 며칠 묶으려고 해요. 일을 조금만 거들어주면 공짜로 며칠 묵고 갈 수도 있어요."

평촌이 집이라는 그는 이미 아이들은 다 출가했고 자신은 크리스천이란 말까지 했다. 대부분 산에 있는 이들은 불교신자인 경우가 많은 걸 알고 있기에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주인은 불교신자라고. 자신은 일을 거들며 며칠 자연을 만끽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 “좀 쉬어 가세요. 여기 기막힌 게 있어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하며 우릴 유혹하던 여인의 뒷모습 ⓒ 김학현


▲ 마당 쪽에서 찍은 비로산장의 모습이 숲속에 푸근하다. ⓒ 김학현


속리산 중턱에서 좌욕을 하다

그는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등걸이며 나뭇가지들을 모아다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왜 난로에 불을 지펴요? 그렇게 춥지도 않은데" 내가 묻자, "그러게요. 제가 두 분 이리로 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한다. 난로 앞으로 의자인 듯한 둥그런 물건 둘이 놓여 있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좌욕기구였다. 찜질방에 가면 좌욕의자가 있지 않은가. 근데 이 산속에 좌욕의자가 있는 거다. 이 아니 신기할 수가? 직접 난로에 군불을 지피고 거기서 나오는 숯을 좌욕의자에 넣어 지나는 등산객들을 불러다 공짜로 좌욕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좋은 좌욕을 깊은 산중에서 할 줄은 진정 몰랐다. 아내는 그가 권하는 대로 손수건을 위에 깔고 좌욕의자에 용감하게 앉는다. 산장의 여인은 가끔 어떠냐고 묻는다. 아내는 좋다고 대답한다. 그러기를 한 시간여. 우린 또 다른 산의 묘미를 그렇게 배우며 쉼을 가질 수 있었다.

자연의 한가운데서 옷 입은 채로 하는 좌욕, 그 맛이 어떠냐고? 그건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자꾸 그가 권하는 성화에 못 이겨 나도 그 좌욕의자에 앉고 말았다. 그러나 뭐 그리 대단한 것은 모르겠다. 난로에서 나와 달려드는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워서 얼른 일어났다.

아내는 그렇게 연기가 몸을 휘감고 도는 데도 그게 몸에 좋은 거라니까 인내가 대단하다. 하긴 우리는 몸에 좋다면 뭐든지 하는 용기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니까. 몸에 좋다는 공짜 좌욕이고 보면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산장 마당에서, 속리산 한가운데서, 한 좌욕이 아내의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미지수다. 하지만 그 여인이 남겨준 사랑만큼은 꽤 오래 우리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좌욕을 산에서 했다는 좋은 기억만큼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아주 오래도록.

▲ 가까이서 찍은 비로산장의 모습이다. 한문 액자들이 이채롭다. ⓒ 김학현


▲ 비로산장 앞의 등산안내 표지판 ⓒ 김학현


산장 좌욕 전도사가 되다

마냥 앉아있을 수만은 없기에 아내가 등산을 위해 일어났다. 나도 산장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다 아내와 함께 계속 산을 올랐다. 잠깐인 것 같은데 거의 한 시간을 그렇게 거기서 보냈다. 산에서의 시간은 그렇지 않아도 빨리 간다.

하물며 좌욕을 하고 있었으니 여간 시간이 간 게 아니다. 서둘러 올라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산장 이야기를 했다. "좌욕을 할 수 있는 산장이 있어요" 이렇게 내가 말하면, 저쪽에서는 "예? 그런 게 다 있어요? 어디요?" 한다.

산장의 좌욕 이야기를 하는 나도 경험한 게 아니면 믿을 수 없는 일인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다들 의아해하며 그런 산장이 어디 있느냐고 재차 묻는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자세히 산장을 안내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느 새 비로산장의 좌욕 선전 전도사가 되어 있으니.

내려오는 길에 아까 본 여인 곁에 다른 여인이 또 있다. 이번에는 그 여인이 우릴 부른다. "차 한 잔하고 가세요" 실은 그 말만으로는 우리가 멈추지 않았을 거다. 근데 그 다음 말이 이렇다. "여기 KT에서 전화 가설하러 온 분이 있어요. 내려갈 때 그 차 타고 가세요"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지친 몸이라 그 말이 얼마나 달게 들리는지. 그래서 또 우리는 내려오는 길에도 그 산장에 들르고 말았다. 엄밀히 말하면 산장 마당에. 따끈한 차 한 잔씩을 대접받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일어났다. 찻값을 치르려니 공짜란다. 이런 고마울 때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산장 사람들은 뭐 먹고 살지?' 등산객들이 방에 들면 숙박비를 받고 돈 받고 밥도 지어준다는 이야기를 아까 대화 속에서 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참 인심 좋은 산장의 여인들이다. 객도 주인도 이리 인심들이 좋다니.

산장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하산했다. 내려올 때 세심정휴게소부터는 KT의 트럭을 얻어 타고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두고두고 좋은 추억이 될 비로산장, 그리고 공짜 차 한 잔과 공짜로 한 좌욕,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 비로산장 앞의 등산안내지도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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