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리-만브라더스'의 독주 불안한 국민들 "미래가 안 보인다"
[MB노믹스 1년 ①] '경제의 숭례문 참사' 겪지 않기 위한 조건들
오는 12월 19일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년이 됩니다. '경제대통령'을 맞이한 우리는 역설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 최악의 경기침체라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기업, 부동산, 금융 등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펴온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해봅니다. [편집자말]
올해로 14년차인 그는 "얼마 전에 함께 일했던 임원 한 분과 소주를 마시면서 '올해까지만 회사에 남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앞날을 걱정하는 그분을 보고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또래 동료들 사이에선, 조만간 '우리 차례가 온다'면서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별로 뽀족한 대안도 없다"고 토로했다.
'현 정부가 1년이 돼가는 데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그는 "솔직히 별로 할 말이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당장 월급은 그대로인데, 내년부터 내야 할 아파트 담보 대출 원금과 이자, 아이들 교육비 등을 생각하면, 막막하다"면서 "그래도 '경제대통령'이라고 기대도 했지만 포기한 지 오래고, 그냥 더 이상 (경제가) 나빠지지만 않도록 해줬으면…"이라고 말했다.
▲ 지난 9월 8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민주당 환헤지 피해 대책위원회 추최로 열린 'KIKO 등 환헤지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KIKO OUT'이라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선대식
'구조조정' 칼 앞에 선 김 차장과 '이민 결정'한 정 부장
정상일(45)씨는 지난 달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현재 이민을 준비 중이다. 연 매출 300억원대 규모의 나름대로 견실한 중소기업에서 부장까지 지냈다.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는 그동안 말 많던 키코(KIKO) 사태 때문.
자금을 담당했던 정씨는 "회사 매출 절반이 수출에서 나오기 때문에 작년에 거래 은행으로부터 환헤지상품 가입에 대해 소개를 받았다"면서 "환율이 폭등하면서, 멀쩡한 회사는 장부상으로 계속 적자를 봐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마음 고생이 너무 심했다"면서 "은행 쪽에 여러 하소연도 해봤고, 정부가 대책을 세워서 어떻게 한다고 기대도 했지만 모두 접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책임지고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정씨는 "피해의식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환율 등이 좀 걱정되지만, 이번 기회에 캐나다 쪽으로 이민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의 큰 아들인 정아무개(16)군은 건강 문제로 4년 전부터 캐나다로 건너가, 치료와 공부를 함께하고 있다.
빈곤층부터 중산·상류층, 보수언론까지 등돌린 민심
정 부장이나 김 차장 모두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중산층'에 있던 그들이다. 10년 전 외환위기 악몽을 경험한 이들은 2008년 12월 다시 혹독한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봉급생활자, 자영업자 등 서민들의 생활은 더 힘겹다. 경기가 침체되고 본격적인 불황이 몰아치면 이들 계층이 직격탄을 맞는다. 지난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이들과 함께 중산층은 물론이고 상류층도 고통의 대열에 끼어 있다.
이들은 대체로 1년 전 대통령선거 때 이명박 후보에 지지를 보냈던 계층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상당수는 이미 그들의 '지지'를 접은 지 오래다.
특히 일부 상류층의 외국 이민도 크게 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최근 내놓은 이민비자와 영주권 취득 자료를 보면 한국인들의 취업과 투자이민이 작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새롭게 영주권을 받은 한국인들은 1만6066명.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7125명이 취업이민이다.
투자이민 중에서도 50만달러만 투자하면 거주지 제한 등을 받지 않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람들이 10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와있다.
해외이민전문 상담업체인 S사의 김아무개 부장은 "환율 폭등으로 미국이나 캐나다 등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상담하는 경우는 올 들어 줄어들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취업이나 투자 이민의 경우는 대체로 경기를 별로 타지 않는 상류층쪽이다 보니, 많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수요가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4대그룹의 한 고위인사는 "미국산 쇠고기사태를 비롯해, 금융위기까지 그동안 이명박정부가 보여준 정치적, 경제적 위기관리능력은 한마디로 낙제점"이라며 "과거 노무현정부 때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비판했던 보수인사들조차 (현 정부가)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입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금융위기로 억울하다고 할수 있지만, 정부 스스로 '시장'에 역행하는 과거 개발연대식 정책 실패 책임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그런 정책 실패는 서민층뿐 아니라 주식과 펀드 몰락 등 금융자산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중산층 이상에게도 실질적인 피해로 와 닿는다"고 설명했다.
▲ 불황의 그늘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경제관련 부정적 통계 수치가 높아가고 계절적 요인 등으로 건설현장 등의 일용직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시내 한 인력개발 사무실이 일자리를 구하려는 일용직 근로자들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미네르바?... 3월 스스로 예언한 '경제위기'가 현실화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도 지난 9월 자신의 칼럼에서 "그가 취임한 지 7개월이 다 된 지금, 그가 잘 알고, 또 잘하겠다던 '경제'는 어떻게 됐고, 어디로 가고 있나?"라고 반문하면서, "서민경제는 더 어려워졌고, 주식시장은 널을 뛰고 있다. 투자는 더 이뤄진 것도 없고, 실업이 줄고, 고용이 늘었다는 통계도 없다. 한마디로 경제 잘된 것 하나도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이 됐지만, 경제는 김 고문이 비판한대로 잘된 것이 하나도 없다. 9월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측면도 있지만, 현재의 우리 경제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
지표만 봐도 이미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먹여 살렸던 수출 덕에 흑자 흐름을 이어가던 경상수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고, 기업들 투자도 지난 2001년 이후로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물가상승률도 1998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4% 후반까지 올랐고, 소비심리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3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이명박정부의 공약(公約)은 한 차례 수정을 거쳐 20만개로 줄었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공약(空約)이 돼 가고 있다. 30만명은커녕 10만명대 취업자 증가로 고용 대란이 눈 앞에 와 있다.
또 환율 폭등에 따라 외환보유고는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2만달러대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1년 만에 1만8000달러대로 추락했다.
적어도 지표로만 보면 이명박 정부의 1년 경제성적표는 말 그대로 '낙제점'에 가깝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경제위기는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도 스스로 예견(?)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지난 3월 17일 지식경제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금 경제위기는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세계경제가 전혀 예측되지 않고 있고, 어쩌면 세계 경제위기가 시작된다는 생각도 든다"고까지 했다.
물론 이틀 후인 19일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무원들 긴장시키기 위해 내가 경제위기가 온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가도, 다시 20일 청와대서 열린 '경제상황과 서민생활안정을 위한 점검회의'에선 "세계 금융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당한 '한국판 리-만브라더스'
▲ 6일 저녁 서울 명동에서 민주민생국민회의 주최로 열린 '경제파탄 민주파괴 이명박 정권 심판 국민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 가면을 쓴 참가자들이 경제정책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지난 3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 대통령이 현실 상황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오히려 국민들의 심리를 불안하게 하고, 그 결과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보여준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적)' 정책은 국민들에게 '재벌 프렌들리', '부자프렌들리'로 인식됐고, 경제정책의 일관성 결여와 사회적 갈등 심화는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는 계기가 됐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기는 정부'로 제1의 국정방향을 설정했지만, 처음부터 국민 정서에 반하는 장관과 참모를 기용하는 등 인사에서 실패했다"면서 "이후 금산분리 완화, 상속-증여세·법인세 인하 등 경제살리기 명분으로 재벌과 부유층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아니라 '재벌과 부자를 섬기는 정부'라는 이미지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한국판 리-만브라더스'라 불리는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제정책 역시 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당했다. 이유는 신뢰상실이다.
한반도 대운하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했다가 국민 반발에 부딪히자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최근엔 4대강 정비사업으로 이름만 바꿔서 다시 추진하고 있다. 또 공기업 민영화도 추진하려다가 반대에 부딪히자,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하겠다고 해놓고, 최근엔 이들 공기업의 인력 구조조정까지 지시할 정도다.
또 1970년대 개발독재시절이나 가능한 것으로 보인 이명박식 물가관리 대책은 홍콩 등 세계적인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서도 조롱거리가 될 정도였다.
특히 현 정부 초기의 고환율 정책은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로 꼽힌다. 경제성장에 집착한 나머지 이미 수출증대 효과가 거의 없는 고환율 정책을 용인한 현 정부는 오히려 수입품 가격 상승과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겨, 국민들 생활살이만 힘겹게 했다.
지난 9월 본격적인 금융위기 이후에도 정부의 위기관리나 대응능력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미 올 하반기 들어서 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시장의 반응은 거의 냉소에 가까웠다.
정운찬 전 총장은 지난 10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대응책을 두고, (시장에선)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 상황까지 갔다"면서 "그동안 정부가 무슨 말을 하면 환율이든 주가든 거꾸로 움직였다"면서 시장의 신뢰 상실을 꼬집었다.
숭례문 참사와 경제위기, 그리고 한국경제 미래
▲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지난 2월 11일 오전 서울 숭례문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지난 2월 국민들은 큰 참화를 겪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타 사라진 것이다. 당시 숭례문에 불이 붙었는데도, 2시간여 동안 누가 지휘해서, 어디서, 어떻게 불을 꺼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우리 정부의 문화재 위기관리 능력을 국민들은 똑똑히 봤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후, 현 정부 경제팀이 보여준 위기관리 리더십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회동에서 "한국의 금융감독체계가 다 갖춰져 위기 때 피해를 적게 하는 면도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드러낸 거대한 부실과, 감독당국의 정책 부재에 따른 혼란 등은 이 대통령의 상황인식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보여줘, 제대로 시장을 파악하고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증명해준 셈이 됐다.
게다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감세와 규제완화, 재정지출 확대'는 다른 선진국들의 방향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선진국들이 서민과 중산층,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교육과 사업에 투자를 적극 늘리는 반면, 우리는 고소득-부유층을 위한 감세와 건설경기 부양에 집중돼 있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지난 10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현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면서 "무능력과 소통 부족으로 우리에게 실망만 안겨주었을 뿐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리더십이 해결되지 않는 한 위기는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서민에게 달려 있다"면서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면,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살고, 부자도 살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학자들도 이를 위한 대안을 정부에 주문하고 있지만, 이같은 대안과 힘든 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면서 "정부 스스로 한국경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장에선 또 다시 '내년 3월 위기설'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예전처럼 '괴담'으로 치부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시장의 신뢰 상실과 리더십 부재와 정책 혼선 등이 이어지게 되면, 1년 만에 '경제의 숭례문 참사'를 국민들이 경험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제발 기우(杞憂)로 끝나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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