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의 치료중단 가능할까
서울대병원, 존엄사 허용 공식화 선언... 법적·의료적 장치 필요
▲ 서울대병원서울의대 삼성암연구동에서 바라 본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야경이다. ⓒ 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은 의료윤리위원회의 논의 결과, 말기 암 환자의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미 혈액종양내과는 지난 15일부터 환자들에게 사전의료지시서 작성을 추천하고 있다. 사전의료지시서에는 말기 암환자에게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등의 치료를 받을지를 암환자 본인이 선택하도록 돼 있다. 이는 특정 대리인을 선정해 결정하게 할 수도 있다. 사실상 존엄사를 허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결정이다.
사전의료지시서의 공식적 인정은 서울대병원이 처음으로 도입한 제도여서 다른 병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또한 21일 존엄사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존엄사 인정 공식화
세브란스병원이 낸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냈었다. 이미 서울고법의 판결이 있은 터라 서울대병원의 이번 결정에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니까 이번 서울대병원의 결정은 법적 분쟁 가능성이 낮다는 말이다.
문제는 오는 21일 대법원이 서울고법의 판결을 뒤집을 경우다. 그간 종교계와 법조계의 생각은 "인간의 생명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2월 10일, 대한의사협회(회장 주수호)는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에 대한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서울고법의 판결에 대해 "명백히 회생할 수 없는 환자의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바람직하다"며 환영의 뜻을 냈다.
이어 의사협회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에 의해 의사가 소생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리고,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충분한 동의를 얻는다면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는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서울대병원의 존엄사 인정 공식화를 계기로, 의사의 진료 결정권과 법적·제도적 장치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의료계는 물론, 법조계, 종교계가 머리를 맞댈 시기가 된 것이다.
법적·의료적 장치 속히 마련돼야
식물인간 상태인 김모(77·여)씨의 가족들이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1·2심 재판부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1일 최종심을 남겨둔 가운데, 이번 서울대병원의 존엄사 공식화는 법적·의료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서울고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진지하고 합리적으로 치료 중단을 요청하면 사망 시기를 연장하는 치료는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사전의료지시서를 받은 회생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서울대병원의 이번 조치와 같은 맥락의 취지다.
세브란스병원 사건의 경우 본인이 의사를 능동적으로 표현했느냐 하는 문제가 관건이다. 병원 측은 환자 본인이 서면으로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기에 연명 치료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슷한 사건으로 보라매병원은 자살방조죄의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보라매병원 사건의 경우 환자의 치료 중단을 보호자가 요청했지만 회생 가능성이 있었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였기에 병원과 의사는 형사처벌을 받았다.
21일 최종판결을 앞둔 세브란스병원 사건 역시 환자의 의사가 서면으로 남아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식물인간 상태며 회생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것은 환자가 사전에 서면으로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들의 증언만으로 환자가 사전에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된다고 보아 서울고법은 존엄사 인정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 서울대병원이 마련한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의 서면 의사표시의 증거가 될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존엄사 문제는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의 공식화 선언을 계기로 사전의료지시서를 보강하는 수준으로 의료계, 종교계, 법조계의 의견이 수렴되는 법적·의료적 장치가 하루 속히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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