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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라구요?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데요?

한국인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그린 <울지마, 톤즈>

등록|2010.10.16 15:12 수정|2010.10.16 15:12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예- 예- 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멀리 떠나버린 못 잊을 임이여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밤마다 그리는 보고 싶은 내 사랑아

예- 예- 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라나 에 로스포 노래)

이 노래가 이리 눈물 나는 노랜지 예전엔 진작 몰랐다. 그냥 사랑 노래쯤으로 알고 지낸 지 그 몇 십 년이던가. 남수단의 톤즈의 눈망울이 어글어글한 딩카족 아이들이 자신의 사랑(졸리-John Lee- 신부)을 그리며 부르는 이 노래가 이리 아리게 가슴을 후벼 팔 수 없다.

▲ <울지만, 톤즈> 포스터 ⓒ KBS

아직도 졸리의 죽음을 믿지 못하던 밴드부원들이 장례식 비디오를 본 후 그를 보내주기로 결심하고 부른 노래가 그가 평소에 가르쳐줬던 <사랑해>란 곡이다.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서툰 한국어로 불러 낸 그들의 노래는 어찌 그리 노랫말도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지. 그것은 다 말할 수 없는 그들 내면의 절규, 그것이다.

원래 딩카족은 눈물을 수치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울었다. 눈물 줄기가 강같이 흘렀다. 어떤 이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 하지만 그게 더 보는 이를 슬프게 한다. 나도 덩달아 울었다. 영화 제목이 <울지마, 톤즈>다. 그러나 영화 속 톤즈 사람들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안 운 사람이 있을까.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은 2005년 종전을 합의할 때까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 천지, 그 자체였다. 딩카족은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이다. 눈물이란 그들의 사전에는 없다. 그런데 그들은 눈물로 톤즈의 아버지 이태석을 천국까지 배웅했다.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자판에 글자를 박으면서도 아직 영화 속 흥분이 그대로다. 이태석 신부, 그는 사제이며 의사고, 의사이며 악단장이고, 악단장이며 건축가이고, 건축가이며 교사였다. <울지마, 톤즈>는 수단에 파송되어 아픈 이들과 삶을 나누다 48세의 나이로 산화한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 사랑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미 지난 4월 11일 <KBS>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영화는 몇몇 TV에서 방영되지 못한 부분들을 첨가하여 극장용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이태석 신부는 2010년 1월 14일, 휴가차 한국에 왔다 암으로 진단, 투병하다 결국 그토록 돌아가고자 했던 톤즈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애마르게 세상을 지웠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땅, 족속들 간의 내전으로 굶주림과 질병이 만장처럼 드리운 땅, 수단의 남쪽 톤즈, 그곳에 대한의 아들 이태석이 있었다. 톤즈는 이태석이요, 이태석은 톤즈였다. 말라리아가 창궐한 땅, 한센환자들이 질펀하게 드러누운 땅, 보통의 삶을 포기하고 대한의 아들 이태석이 그들 가운데 뛰어들었다. 그리곤 이내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누구는 노래했다. 그냥 난 그게 노래인 줄만 알았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난 그게 노래만이 아니란 걸 깨단했다. 짓무른 손과 발을 부비고 보듬으며 그는 신이 되어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뛰었다.

"외로울 틈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항상 제 곁에 있으니까요."

그가 털털 웃음을 보이며 들려 준 말이다.
그들 중 누구는 말했다.

"성경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바로 이태석 신부입니다."

그는 그렇게 한국의 가족들이나, 수단장학회 관계자들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나,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이나, 특히 남수단 툰즈의 딩카족에게 하나님이 되어 지금도 살아 있다.

사랑을 무기로 신이 된 사나이, 이태석

▲ 이태석 신부가 어린아이의 환부를 치료해 주고 있다. ⓒ KBS


<KBS>가 아프리카 오지 수단의 툰즈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시작이다. 사랑으로 살다 간 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저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는다. 딩카족이 말하는 이태석, 같은 교구의 신부들이 말하는 이태석, 그리고 한국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말하는 이태석, 그는 진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신이 되었다. 이미 툰즈의 딩카족에게 그리고 내게.

평소 이태석의 지론은 성경의 한 구절이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장 40절) 이것은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그는 그저 예수를 온몸으로 살았던 거다. 굳이 종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영화의 제작 의도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신이 되는지 그는 보여준다.

배고픔을 달래주기보다 자립할 용기를 주고 싶어 학교를 세우고, 소년병으로 끌려가 무기를 들었던 손에 책을 들려준다. 한센병으로 뭉뚝해진 손을 보듬어주고, 고름과 피가 흐르는 상처를 닦아준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 곁에서 위로해 주고, 가난에 헐벗은 이들에게 옷을 나눠준다. 이런 모습은 예수가 했던 말 그대로다.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장 18-19절)

희망이 없는 이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동원하여 노래를 가르친다. 이젠 한없이 그를 잃고 우는 이들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까. 톤즈의 친구, 톤즈의 아버지, 톤즈의 예수, 톤즈의 하나님은 이제 가고 없다. 그래서 더욱 눈물이 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 이태석 신부가 브라스밴드부 아이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 KBS


전국 13개 영화관에서만 개봉되었음에도 벌써 10만 관객을 울렸다. 내가 찾아간 청주의 한 극장에서도 하루 단 한 번 상영이었다. 그런데 중년의 여성들이 극장의 반을 채우고 관람했다. 평일 오후 어중간한 시간에 상영한 영화치고는 꽤 관객이 든 것 같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여지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왔던 나였다. 어떤 이는 그래도 그거 다 보고 나와야 영화에 대한 예의가 된다고 하지만 성질 급한 난 그렇게 못하는 편이다. 근데 이 영화는 달랐다. 눈물 때문에 나올 수가 없다. 그건 나만이 아니고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블랙스크린이 춤을 추는데도 그렇게 멍하니 앉았다 슬그머니 자리를 비웠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영화를 보는 내내, 보고 난 이후 죽, 내가 한 생각을 한 마디로 요약한 거다. 영화가 슬퍼서 운 게 아니다. 툰즈의 아이들이 불쌍해서 운 게 아니다. 이태석 신부의 절명이 안타까워 운 게 아니다. 나의 자화상이 인생이란 백지에 아무것도 그려놓지 못 한 게 아닌가 하는 자성이 눈물이 되어 나온다. 자꾸. 목사라는 작자가. 그래도 남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임 받겠다는 작자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그게 답답하고 당황스러워 운다. 지금도.

기독교계 신문을 들추기가 겁이 날 정도로 목사의 성폭행 사건이 판을 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습이야기를 교회에서도 비슷하게 맞닥뜨리는 게 통상이 된, 개도 안 물어갈 망발을 강대상에서 퍼붓는 목사들이 큰소리를 멈추지 않는, 그런 나의 현장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그게 정말 한심하다. 하나님은커녕 인간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으니. 난, 그래도 목사라면서.

<울지마, 톤즈> 감독 구수환 / 글 윤정화/ 내레이션 이금희 / 제작 KBS / 배급 (주)마운틴 픽쳐스 / 상영시간 90분 / 개봉 2010.09.09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당당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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