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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그게 남 얘기가 아니네'

구제역이 종교집회도 발을 묶는다

등록|2011.01.23 14:48 수정|2011.01.23 14:48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한적하던 집에 (아내와 나 단둘이서 사는 널찍한 주택이다 보니) 전화벨은 커다란 굉음이 되어 날 화들짝 놀라게 한다. 냉큼 송수화기로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저, 윤OO에유"

연전에 교회에 등록하여 열심히 참석하시는 80이 넘으신 어르신 성도다. 지난해 추수감사절에는 세례도 받으셨다.

"웬일이세요? 이렇게 전화를 다 하시고?"
"예, 목사님, 지난주 광고시간에 연기지방 연합으로 부흥사경회가 있다는 광고를 하셨잖어유. 그래서 '길라잡이'(우리교회에서 매주 발행되는 주보)를 자세히 보니 강사님이 경기도 포천에서 오신다고 되어 있네유. 맞지유?"
"예, 포천예요."

기도만 하던 목사, 뒤통수 맞다

▲ 구제역 예방 백신을 받고 여물을 먹고 있는 젓소들, 항체가 형성된 것을 확인하려면 두 주 정도가 필요하다. ⓒ 김학현



영문을 몰라 이리 대답하니 계속하여 집회는 구제역에 도움이 안 됨을 말씀하시면서, 집회를 그만두든지 아니면 강사를 가까운 곳에서 오시도록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 주장하심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으시다. 어르신과의 대화는 대강 이렇다.

"부흥회를 하지 않으면 안 될까유? 아니면, 강사님을 여기 분으로 바꾸든지. 지금 구제역이 한창인데, 특히 경기도는 구제역으로 이미 많은 가축들을 살처분했구유. 우리지역은 아직 청정지역이잖아유. 예방접종을 했지만 아직 항체가 생긴 게 아니라"
"제가 미처 그 생각을 못했네요. 하지만 집회를 그만두는 것은 곤란한데요. 우리교회가 주최하는 모임이 아니고 지방에서 하는 일이라서…."
"목사님께서 곤란하시면 제가 직접 전화를 하겠습니다. 주최하는 교회 전화번홀 가르쳐 주세유."
"그건 좀 어렵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라…. 수요일에 성도들과 참석여부를 의논을 해봐야 하겠네요."
"목사님, 저희 같이 축산농가에서는 아주 민감한 문제거든유. 생사가 달린 문제니께유. 참고해 주시면 고맙겠어유."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아뿔싸!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우리교회는 젖소농가와 육우, 한우농가가 많다. 우리 지역은 아직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11일부터 백신 예방접종을 받은 터다. 어르신의 전화는 새벽마다 구제역이 인간의 잘못이니 회개해 달라며, 우리교회 성도들 가정의 가축들을 구제역에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던 내게 부끄러움을 한 아름 안겨다 주었다.

결국 부흥사경회 참석하지 않기로

▲ 2010년 연기지방 부흥회, 구제역은 종교집회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잇다. ⓒ 김학현



지난 수요일 저녁에는 예배 후 긴급히 예정에도 없던 회의를 했다. 제가 전화받은 이야기를 하며 이번 부흥사경회에 모두 참석하자고 광고했는데 여기에 대하여 의견을 말해 달라고 의제를 꺼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충청도 양반들(?)인지라 회의 때 거의 발언하는 사람이 없다. 이날도 예외 없이 아무 말들이 없다. 내가 두서없이 이야기를 이었다.

"전화를 받고 보니 저도 아차 싶었습니다. 구제역 때문에 집회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아무래도 이번 집회에는 순서 맡은 이들이나 한 번쯤 참석하는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교회가 강사 접대하는 날이나 제가 가도록 해야 할 것 같고요. 수요일예배는 연합으로 드리자고 했는데 그냥 우리교회에서 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충청도 분들과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눈빛만 봐도 다 안다.(?) 회의가 끝나고 인사를 나누는데 이 사람 저 사람이 '회의 후 발언'(? 이게 아주 중요하다)을 하신다. 거의 충청도 분들은 이렇다. 회의 때는 가만히들 계시다가 후에 자신들의 의견을 툭툭 던진다. 근데 이 의견을 무시했다가는 큰일 난다. 하하하.

"전 슬그머니 안 참석하려고 했어유."
"목사님께 그렇지 않아도 참석하지 말자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유."
"목사님, 광고하실 때, '저건 아닌데 했어유.' 우리 아이들에게 설날에도 오지 말라고 했거든유."
"목사님, 잘 하셨어유. 지금 구제역 때문에 난리인데 부흥회 참석이라니유? 그냥 목사님께서 광고하신 거라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었지. 아마,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을 거예유."

대강 이런 내용들이다. 장로님께서 나와 악수를 하며 한마디 던지니, 이어 한 권사님이, 또 집사님이…. 그렇게 뒷갈망들을 남기고 컴컴한 공기를 가르며 타고 오신 차들을 타고 눈길 위를 미끄러져 사라져 간다. 다음날 나는 이번 집회를 주최하는 주무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교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총무 목사도 자신도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노라고 했다.

구제역, 남의 이야기 아니다

▲ 조치원전통재래시장에 14일부터 장을 폐쇄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 장승현



TV 화면에서 키우던 가축을 살처분하고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울던 농민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다. 구제역 때문에 자식 같은 가축을 잃고 울어대는 농민의 눈물이 바로 내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 왜 그걸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기도는 열심히 하면서 왜 실제적인 조처들엔 미흡했을까.

조금 거리가 있는 지역을 갈라치면 방역을 해야 한다. 하도 춥기 때문에 뿜어내는 소독약이 차에 뿌려지자마자 얼어 몇 번을 차로에 차를 세우고 언 차창의 얼음을 긁어내려야 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하는 게 요즘 우리네 고충이다. 눈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독약 때문에 차가 항상 더럽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이를 불평한다. 나도 예외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방역에 참여한 이들이 추위 때문에 떨고 있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아픈 마음으로 보았던가. 방역을 잘하느니 못하느니, 방역이 너무 형식적이라느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러나 이 강추위에 노즐이 얼어붙는 상태에서 그들의 어려움을 헤아리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또 가축을 키우는 농부는 어떨까. 내남직 남의 아픔보다는 자신의 편리함만 추구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은가. 온 나라가 구제역과 AI 때문에 야단인데도 돼지고기 값 오른 것만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까짓 것은 그저 한두 번 고기 덜 먹으면 되는 문제다. 구제역,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사는 연기군에서는 조치원전통재래시장을 비롯하여 세 개의 시장이 있는데, 시장도 구제역 때문에 폐장 조처를 취했다. 그러나 상인들이 그리 잘 협조하지 않는 모양이다. 상인들의 생계는 내 이야기고 축산농가의 이야기는 남의 얘기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돈을 조금 덜 벌면 되는 문제이나 축산농민들은 모든 게 달린 문제다.

"살처분한 가축에 대하여는 보상을 다 해준다며? 근데 왜 저리 울고 난리야?"

이런 말들에 대하여 연기군낙농협회 회장이신 우리교회 유병찬 장로님은 이렇게 내게 말했다.

"말이 보상이지. 사안에 따라 보상액이 달라지구유. 그게 얼마나 까다롭다구유. 그나저나 보상을 다 받았다고 해도 다시 가축을 들여놓고 시작하려면 수익이 날 때까지 4년에서 6, 7년은 걸려유. 그때까지 뭐 먹고 살어유? 괜히 우는 게 아녜유. 모르면 가만히들이나 있지. 원."

조그만 불편을 내가 감수함으로, 지금의 작은 손해를 내가 참아냄으로, 생계를 가축에 의지하는 우리 이웃을 도울 수 있다. 그런 노력들이 모일 때 구제역이나 AI 등 가축전염병이 사그라지지 않겠는가. 그게 실은 크게 보면 손해가 아니라 다 같이 잘되고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누스앤조이,당당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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