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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당장 눈물 흘리면 통과... 지금도 통할까

[서평] 일그러진 종교사 다룬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등록|2015.01.19 18:10 수정|2015.01.20 14:22
'마녀사냥' 혹은 '마녀재판' 등의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마녀사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축에 속한다. 얼핏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마녀사냥식으로 했다"는 구절을 읽을 때는 표적을 정해 놓고 상대를 정죄한 것을 일컫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현실의 '마녀사냥', 정권의 입맛에 안 맞아 발생?

작금에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이나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통일토크콘서트가 종북 논란에 휩싸일 때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신은미씨의 경우 콘서트는 물론 북한을 여행하고 쓴 저서와 기사를 문제 삼기도 했다.

그의 저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오마이뉴스>에 기사로도 연재되었다)가, 아니 오히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화부)의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던 책이 종편TV의 종북 콘서트 논란에 힘입어 급기야 지난 12월 31일 지정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언론에 따르면 이 책은 "반공이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써서 믿을 만한 책"이라는 이유를 들어 우수도서로 선정됐다고 한다. 조정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18일 문화부에서 받은 '2013년도 우수문학도서 보급사업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평가보고서에는 신씨를 "우리나라 보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대구 출신의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반공이념과 신념으로 똘똘 뭉쳐져 있던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이 책이 전문적인 르포 작가나 진보 진영에 속한 분에 의해 쓰였다면 우리의 공감과 감동은 적었을지도 모른다"며 선정이유를 적었다고 한다. 신씨는 종북 논란으로 조사를 받고 지난 10일 미국으로 강제 출국됐다.

참 희한한 일 아닌가. 극히 보수적인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극히 종북적인 인물로 변해 쫓겨난 것이다. 실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간첩이 아닌 사람이 간첩으로 조작되거나, 조작으로 죽어간 일이 부지기수다. 민청학련 사건, 울릉도 간첩 조작 사건, 납북 귀환어부 간첩사건, 송창섭 일가 간첩사건, 얼마 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신씨의 강제추방 정도는 약과라고 할 수 있다.

신은미씨 강제추방 사건을 접하며 박근혜 정권의 입맛에 안 맞아 발생한 사건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미처 신은미씨의 정체(?)를 몰랐다가 종편방송이 너그럽게 가르쳐주니 내친 것이란 뜻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의 우경화는 심각하게 우려하면서도 박근혜 정권의 우경화는 그리 너그러운 게 무슨 이유일까. 하여튼 정권에 의한 '마녀사냥'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중세의 '마녀사냥', 고문으로 만들어?

▲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표지 ⓒ 이랑

중세 중기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북아메리카, 북아프리카 일대에 행해졌던 마녀나 마법 행위에 대한 추궁과 재판에서부터 형벌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마녀사냥'을 '마녀재판'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위키백과)

'마녀사냥'의 사전적 의미다. '마녀사냥'에 대한 문헌적 고찰이 양태자 박사에 의해 책으로 출간되었다.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이 그것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한 학자로 <중세의 뒷골목 풍경>, <중세의 뒷골목 사랑> 등의 책을 통해 중세 유럽의 풍속사를 소개한 바 있다.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에는 중세 기독교가 저지른 '마녀사냥'의 생생한 증거들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중세의 기독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에 반대하는 것은 곧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독재정권이나 그 아류일수록 그 반대측을 숙청하는 방법이 잔인하다. 중세의 기독교는 신·구교할 것 없이 독재 위의 독재였다. 그 가장 명확한 증거가 '마녀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드리히 슈페는 <재판관에 대한 경고>에서 당시 '마녀재판'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신학자들이 탁상공론 속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 마녀이고 마녀사냥이다. 이들은 이 가상의 인물이 실제로 있다고 믿고 의심되는 사람을 잡아다 심한 고문을 하느라 정작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70쪽)

프레드리히 슈페의 <재판관에 대한 경고> 이후 '마녀사냥'의 잘못을 인식한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1649년 '마녀사냥'을 금지했다. 이후 계몽주의가 태동할 때까지 유럽 전역에서는 '마녀사냥'이 끔찍한 고문과 함께 자행되었다. 대부분 마녀로 지목된 이들은 이웃의 시기, 질투, 복수, 해코지 등의 대상으로, 일단 고발되기만 하면 심한 고문 때문에 있지도 않은 일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을 만들어낸 우리로서는 중세의 이와 같은 '마녀사냥'이나 고문이 남의 일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일단 마녀로 지목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문하여 마녀로 만들어 죽였다. 불시험, 물시험, 십자가시험 등 끔찍한 고문을 통하여 소설에서나 등장할 신비한 '마녀 스토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중세의 '마녀사냥', 기독교의 입맛에 안 맞아 발생?

심지어는 교회가 재산을 빼앗기 위해 돈 많은 노인을 마녀로 모는 경우도 있었다. 일단 '마녀재판'에 걸려들면 시나 교회는 그가 소유했던 재산을 몰수하는데,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모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1666년 한 노인이 농사를 망치게 하고 마술로 나쁜 날씨를 몰고 왔으며 빗자루를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벌거벗은 채 땅에 내려와 여자들을 희롱했다는 죄로 참수형을 당했다. 노인은 당연히 고문에 못 이겨 위와 같은 허무맹랑한 "마녀 스토리'를 지어내어 자백했고 그 죄로 참수형을 당했다. 재산은 모두 교회에 몰수당했다.

어떤 신비주의 기독교인은 그 신비주의 때문에 마녀로 몰렸다. 실은 신비주의 때문에 성녀였었다가 후에 마녀가 된 머저리 캠프라는 여인 이야기는 특이하다. 교회 지도자들의 입맛에 의해 마녀가 되기도 하고 성녀가 되기도 하는 본보기다. 그는 교회가 금하는데도 계속 신비주의적 환상을 전파했다. 결국,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다른 마녀에게는 없는 현상이 있었다. 그것은 괴성과 함께 눈물을 많이 흘린다는 점이다. 그녀는 눈물시험에 통과해 살 수 있었다. 눈물시험이란 마녀로 의심받는 사람이 잡혀왔을 때 그 자리에서 당장 눈물을 흘리지 못하면 마녀로 간주하는 시험이다. 눈물을 흘릴 수 있어 살아났다니 '마녀사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맞다. 중세 기독교의 '마녀재판'은 그랬다. 혹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정권이 하는 짓이 그렇다면 후세는 이를 '마녀 스토리'의 희극으로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저자의 논평으로 글을 맺는다.

중세 사람들이 죄 없는 사람을 마녀로 죽인 이유는 오로지 종교 때문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한 신을 위한 충성 때문이다. 신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이 믿는 종교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이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마녀를 살려두면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인간이 다치니 세상을 평화롭게 하기 위하여 마녀를 죽여야 한다고 믿었다.(110쪽)
덧붙이는 글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양태자 지음 / 이랑 펴냄 / 2015. 1 / 270쪽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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