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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불교 싸움에 '차범근' 등 터질 뻔

[주장] 종교계의 극한 대립, 상대에 대한 무관심이 답이다

등록|2015.05.15 20:22 수정|2015.05.15 20:22

▲ 2012 런던올림픽 축구 중계 당시 SBS 차범근 해설위원(오른쪽, 전 국가대표팀 감독) ⓒ SBS


"수백 년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보다 차범근 선수의 가치가 더 크다는 말이냐. 사찰과 문화유산을 가로지르는 도로 개설 자체가 문제인데, 한 술 더 떠서 사찰 옆 도로에 '축구와 교회만 안다'는 차범근 집사의 이름을 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공식 항의에 나서겠다."

경기도 화성시가 안녕동에서 기안동 사이를 연결하는 서부로 5.2km 구간을 '차범근로'로 붙인다고 확정공고한 데 대해 용주사 기획국장 법진 승려가 4월 30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도로명·지하철명 두고 극한 대립

이와 관련해 지난 1일 <불교신문>은 "문화유산에 도로 개설도 모자라 교회 집사 명칭을 쓰겠다니…"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하여 "용주사로라 명명하기 싫은 개신교 심사위원들의 고의적 행태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박법수 전 용주사 청년회장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최근 이런 불교계의 반대에 부딪힌 화성시는 '차범근로' 명칭 사용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차범근 전 감독도 "제 이름을 딴 도로 명명은 개인적으로 명예로운 일이고 화성시에 감사하지만, 정중히 사양한다"는 뜻을 시에 밝혔다고 한다. 결국 '차범근로'는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처럼 도로명이나 역명에 대한 개신교와 불교 간 대립은 '봉은사역' 이름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3월 28일 개통한 서울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명칭을 두고 기독교계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아래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와 한국교회연합(아래 한교연, 대표회장 양병희)은 지난 2월 27일 CCMM빌딩 국제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한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개신교계의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명칭 반대 이유는 ▲ 지하철 역명에 특정 종교의 사찰이름을 쓰는 것이 서울시가 정한 원칙에 위배되며 ▲ 다종교사회에서 서울시의 종교편향적 행정으로 인해 종교 간 갈등이 빚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고 ▲ 한국 기독교회는 불교를 비롯한 어떠한 타종교와의 갈등과 대립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봉은사역' 이름 두고 소송 벌여

한기총은 다시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기독교연합회관 한기총 회의실에서 임원회를 갖고 "봉은사역명 사용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결의했다. 회의에서 '봉은사역명 대책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역명 변경을 위해 신연희 강남구청장을 면담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한교연 역시 종교편향이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한교연은 지난 3월 역명 최종 결정권자인 박원순 시장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역명 사용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6월 세 번째 심리를 앞두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행정소송까지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보수 개신교계 두 단체의 움직임으로 볼 때 봉은사역명이 변경되지 않는 한 불교계와의 끊임없는 마찰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봉은사' 역명에 하자가 없다며 재판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기독교계와는 별도로 강남구 주민들을 중심으로 '코엑스역명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위원회는 신연희 강남구청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이들은 서울시의 봉은사역명 변경 전 여론조사가 조작되었다며 '코엑스역'으로 역명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봉은사의 인지도가 코엑스에 못 미친다는 게 이유다.

역명을 가지고 빚은 두 종교계 간 대립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부선 KTX 울산역 역명 제정을 놓고 대립했다. 당시 개통을 앞두고 있던 KTX 역명을 '울산역'과 '통도사'로 병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기독교계가 불교계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 서울 강남구에 있는 봉은사(자료사진) ⓒ 박소희


여러 사안에서 개신교와 불교 갈등 빚어

지난해에는 기독교계가 지리산 선교사 유적지를 문화재로 등재하려고 하면서 불교계와 갈등을 빚었다. 유적지 등재 신청 소식에 불교계는 선교사 유적이 불법 건축물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청와대 등으로 보내 문화재 등재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해발 1200m인 지리산 왕시루봉에 선교사들이 지은 주택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 2013년 1월 29일 한국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가 시민공모전 '이것만은 꼭 지키자'를 통하여 선정한 보전대상지이다.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되었다가 1962년 휴 린튼 선교사에 의해 재건되었다.

1900년대 초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부가 지리산 일대에 수양관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세계 각국의 건축양식으로 1960년대 무렵에 지어진 목조주택, 토담집 등 창고, 채플실, 수양관으로 쓰였던 건물이 남아 있다(박문각 편 <시사상식사전> 참조).

화엄사에서는 지난해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무단으로 편의시설 등을 지은 것을 지적하며 철거를 촉구하고 나섰다. 불교계는 "민족의 성지이자 절대적인 자연보존구역인 지리산의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즉각적인 왕시루봉 선교사 별장의 철거를 요망한다"고 밝혔다.

사안마다 기독교계와 불교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기독교계는 국립공원 입장료(문화재 관람료) 징수에 반대하고(이 경우 꼭 기독교계만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템플스테이 국가보조에 종교편향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반대로 불교계는 처치스테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상대 종교에 무관심해져야 한다

나름대로의 정당성과 이유를 들며 두 종교계가 정부나 관계기관을 상대로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보는 국민은 짜증이 난다. 모름지기 종교는 화합과 사랑, 자비가 그 중심 정신이다. 갈등을 막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종교가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에 편승한 주장을 하며 상대 종교를 적대시할 때 종교무용론이 그 힘을 얻는 건 당연하다.

한국갤럽의 최근 종교실태 조사는 이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신자 수가 점점 줄고 있다. 무교의 숫자가 50%로 늘었다. 신자 비율은 1984년 조사 때 44%였는데 2004년 54%까지 늘었다가 2014년 50%로 줄어들었다.

개신교와 불교 간 갈등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종교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고, 국민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종교 간 불신이 두텁고 갈등의 골은 더 깊어만 가고 있다.

실은 상대 종교에 대하여 서로 모르는 데서 갈등이 빚어진다. 그렇다면 상대종교를 모르니 간섭하지 않거나, 상대종교에 대해 알려고 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상대종교를 이해하려고 하는 배려가 가장 최선의 해결방법이다. 그러나 어차피 종교는 절대진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그게 어렵다. 그렇다면 상대종교에 대하여 무관심해지자.

도로 이름에 상대종교가 쓰이든, 역 이름에 상대종교가 나오든 그 이름을 주관하는 이들에게 맡기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사사건건 들고 일어나 이리저리 고쳐달라고 하지 말고 말이다. 그게 상대종교를 배려하는 게 아닐까.

○ 편집ㅣ최규화 기자

덧붙이는 글 기자는 기독교 목사다. 혹 목사가 썼으니 개신교를 대변하려고 쓴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기독교인으로 쓴 게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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