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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봐도 좋은 손자, 헤어지면 더 좋다?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⑭] 손자 보기,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요

등록|2015.05.27 17:57 수정|2015.05.28 09:24

▲ 서준이가 할배 품에 안겨 수국 꽃을 흩으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 김학현


▲ 손자 서준이가 할배의 얼굴을 찌르며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까르르르 웃습니다. ⓒ 김학현


"아드님 왔다 갔어요? 손자, 많이 컸죠? 손자가 그렇게 귀엽다는데..."
"네, 다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갔어요. 손주 녀석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깨물어주고 싶어요."

"참 좋으시겠어요. 난 언제나 손자를 본담?"

"근데 오면 반갑고 좋은데, 가면 더 좋아요."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몸이 안 따라줘서 그렇죠. 손자는 안기는데, 덩치는 좀 커요!? 근데 귀엽다고 안아주다 보면 아이들 가고 나면 앓아 누워요."
"하하."

대강 이런 대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아직 손자가 없을 때 '깨물어주고 싶다'는 표현을 들으면 소름이 돋곤 했습니다. 속으로 '꼴불견도 유분수지' '팔불출이 따로 없네'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참 귀엽겠어요"라고 좋은 말을 할 때, 바로 그 때 나눈 대화입니다. 그냥 상대의 손자 자랑에 가락은 맞춰줘야 사람 도리인 듯해서 나눈 대화였습니다.

'손자, 깨물어주고 싶다'? 500% 공감

제가 그 집 손자를 알거든요. 덩치는 큰 그 아이. 하하하.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그놈 만큼 깨물어주고 싶을 만한 놈이 없는 거죠. 지금은 아주 자~알 안답니다. 제가 손자를 보고 나니 그 할머니의 심정에 500% 공감합니다.

그런데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소름 돋게 하던 상대가 한 말과 똑같은 말을 제가 하고 다니니 말입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내와 대화를 나눕니다. "오면 너무 반갑고 좋은데, 가면 더 좋다"라고 말입니다. 뭐, 그런 앞뒤 안 맞는 상황이 있냐고요?

네. 그런 상황은 언제든지 있답니다. 제 손자 서준이가 벌써 돌이 지났습니다. 그리곤 처음 맞은 이 할배 생일 축하해준다고 왔죠. 엄밀히 말하면 딸이 온 것이지만. 그동안 아이는 훌쩍 컸습니다. 두어 달 전만 해도 무엇인가 의지해 일어서는 게 고작이었던 아이가 이제는 온 실내를 헤집고 다닙니다. 우리 부부는 녀석 가는 데마다 뒤따라 다니느라 기진맥진이죠.

'걸어 다니는 폭탄'이라고 아실는지 모르겠네요. 네, 제 손자가 그런 존재거든요. 자기 집은 손자에게 맞춰진 '특화 아파트'입니다. 밑에는 푹신한 매트가 깔려있고, 가구의 모서리마다 머리를 박아도 상하지 않도록 덮개 처리가 돼 있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울타리까지 쳐져 있답니다. 녀석 돌 때 가서 보았죠.

하지만 우리 집은 우리 내외에게 맞춘 집이잖아요. 거실에는 한 가득 화분들이 놓여있습니다. 이리저리 아이가 옮길 때마다 모서리 진 가구들이 즐비합니다. 이런 위험천만한 지뢰지역을 아이가 한시도 가만 안 있고 누비고 다니니 그냥 두고 볼 수 없잖아요.

손자 귀여워한 죄?... 몸이 고되요

▲ 손자 서준이가 아빠 품에 안겨 심드렁합니다. ⓒ 김학현


▲ 손자 서준이가 외할머니, 엄마와 함께 야외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 김학현


'귀엽다'고 연발총을 쏜 죄 때문에 제가 아이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근데 요놈이 제가 자신을 따라 다닌다는 걸 알아요. '이놈~!' '에비~!' 하면서 말릴 때마다 일부러 화분을 만져요. 그리곤 눈치를 보죠. 고게 또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떼어 놓으면 또 만지고, 떼어 놓으면 또 만지고...

그러다가 느닷없이 다른 장소로 내달립니다. 그 앞에선 모서리 날카로운 가구가 기다리고요. 순발력은 타고난 저이지만 그럴 땐 좀 부치기도 해요. 그러나 힘을 다해 모서리를 손으로 막아줍니다. 그러면 이 녀석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들이밀며 심술궂게 제 손을 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손을 잠간 떼어주기도 하죠.

우리 서준이에겐 이런 모든 게 다 놀이랍니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아 이 할배 집에 오면 따로 장난감이 필요 없습니다. 리모콘이며 계산기, 굴러다니는 볼펜... 서준이는 뭐든지 새로운 걸 보면 잡고 봅니다. 그리곤 한참을 가지고 다니며 굴려도 보고, 던져도 보고, 찍어도 보고 하면서 놉니다. 그러니 날카로운 걸 만지면 일단 빼앗아보고 안 되면 촉을 100배로 상승시키고 지켜보는 게 제 소명이지요. 하하.

어느 가수가 노래했던가요? '사랑한 게 죄라서...'라고요. 네, 귀여워한 게 죄라서 서준이를 오늘도 졸졸 따라 다닙니다. 따라다닐 때에는 잘 모릅니다. 그게 그리 고된 일인지. 녀석이 가고 나면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쑤시죠. 손자 귀여워하면 몸이 고됩니다. 앞으로 손자 보실 분들 잘 알아두시길. 허.

따라다니는 것보다 더 '독한 놈'이 있습니다. 그건 '안아주기'라는 놈이죠. 우리 서준인 어찌된 녀석인지 이 할애빌 너무 좋아해요. 식구 중 누가 두 손을 내밀며 안아주겠다고 하면 안 가다가도(평소에는 누구에게든 잘 안기는 넉살좋은 녀석이지만) 이 할애비에겐 달려듭니다. 들어올려 안아줄 수밖에요.

안아줄 때는 몰라요.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죠. 그러나 하루쯤 지나면 허리가 아픕니다. 어깨도 뻐근하고요. 전 천성적으로 강골입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다릅니다. 약골이거든요. 그러니 제가 여기저기 아픈 것에 비하면 아내는 배는 더 아프고 쑤신 거죠. 그래서 실은 아내가 아이들 며칠 잡아두려다 그냥 보냈다더군요.

손자가 걷습니다

▲ 손자 서준이가 대청댐을 유유자적 걷습니다. ⓒ 김학현


▲ 손자 서준이가 대청댐에서 데이트하는 커플에게 시비를 겁니다. 붙임성 끝내줍니다. ⓒ 김학현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 그러냐고요? 하하. 이제 갓 예순 꽃할배입니다. 서양 나이로는 아직 50대고요. 근데도 그러냐고요? 네, 그런데도 그렇답니다. 그러니 손자 귀여워하는 것, 얕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 손자를 못 보신 분들에게 고합니다. 지금부터 체력보강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아이의 성장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생후 346일 째 드디어 걷기 시작했습니다. 10개월째는 물건을 잡고 서고, 11개월째는 한 발 두 발 내딛더니 돌이 다가오면서 아장아장, 돌이 지난 지금은 거의 쉬지 않고 걸어 다닙니다. 아직 뜀박질은 못하지만 꽤 빠른 걸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대청댐에 가서 온누리를 휘저으며 산책나온 이들의 혼을 빼놓았으니까요.

좀 늦은 게 아닌가 걱정했던 치아도 이젠 네 개나 났습니다. 볼 때마다 자란 모습을 보는 게 이 할배의 큰 낙입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이요, 변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어느 작가의 말대로 살아 있으니 희망이 있는 거지요. 우리 서준이 볼 때마다 희망 '팍팍'입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를 차량 아이시트에 앉히는데 영 안 앉으려고 떼를 씁니다. 녀석이 헤어지는 걸 알아요. 좀 전만 해도 수국 꽃을 흩뿌리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했었는데, 오만상을 찌푸립니다. 그러더니 결국 우네요. 아이를 보내고 제 할미도 눈물이 글썽이고요. 녀석이 이젠 정까지 주고 가는군요.
덧붙이는 글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는 손자를 보고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할아버지의 글입니다. 계속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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