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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녀석의 '할배 편애'... 이런 게 사는 맛이지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17] '할배바라기' 손자, 은근 싫지 않습니다

등록|2016.03.16 09:51 수정|2016.03.19 17:06
"찌! 찌~!"

찌르레기가 우냐고요? 하하하. 손자 녀석 서준이가 이 할배 부르는 소리랍니다. '할아버지!'라는 발음은 아직 언감생심이고요. "'하브지'라고 해라"라고 아무리 일러줘도 '하브'는 빼먹고 '지'만 센소리로 읊조립니다.

21개월을 넘겨가면서도 아직 말이 여간 어눌한 게 아닙니다. 대개 여자아이가 빠르고 남자아이가 조금 느리다는 건 알지만, 그리 확실히 발음하는 말이 "우와!" 하는 감탄사와 "아빠, 엄마" 정도입니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내년 이맘때나 발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알파벳은 알아도, 한글 발음은 아직...

▲ 자기 등짝 만한 어린이집 가방을 둘러메고 어린이집으로 향하여 아파트를 나서고 있는 서준이의 늠름한 모습입니다. ⓒ 김학현


그러나 이해가 안 되는 건 녀석이 알파벳을 뗐다는 겁니다. 그것도 독학으로. 엄마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유아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보고 외운 거랍니다. 우리 집에 와 전기렌지 회사로고가 영문으로 된 걸 보더니 한 자 한 자 짚으며 "티(T), 이(E), 엠(M)" 하는 거예요. 참 나.

한글 발음은 아직….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서준이의 '할배바라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답니다. 부모가 다 직장생활을 하는 몸들인지라, 벌써부터 서준이는 어린이집이란 곳을 출퇴근한답니다. 딸내미 집에 갔더니 오후 3시에 서준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리더군요.

이런 명령이라면 너무 좋죠. 오랜만에 서준이를 만나는 참이기에 그놈의 잔뜩 생글거리는 얼굴을 한시라도 빨리 보려고 아내와 서둘러 외출했습니다. 어린이집이 아파트 몇 동 앞에 있다는 딸내미의 말만 듣고 달려 나갔는데, 집 앞에 바로 어린이집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얼씨구나 하고 들어가 서준이 내놓으라고 했더니…. 어라! 그런 아이는 없다는 게 아니겠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서준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의 어린이집은 정원이 차서 길 건너 아파트 앞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닌다는군요.

우리 부부는 길 건너 아파트 앞으로 갔지만 통 어린이집이 안 보이는 거예요. 아파트에 딸린 슈퍼마켓에 들러 어린이집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도 모른다는 겁니다. 하는 수 없이 우리 부부는 아파트를 한 바퀴 빙 돌아 주민센터 2층에 숨어있는(?) 어린이집을 발견했습니다.

어린이집을 이리 숨겨놓다니? 옆집인 슈퍼마켓도 모르게…. 하하하. 하여튼,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서준이 녀석 다니는 어린이집을 찾았습니다. 다짜고짜로 서준이 데리러 왔다고 했죠. 잠시 후 서준이 녀석이 짠 하고 나왔습니다.

"우와!"

▲ 오서준 군의 어린이집 퍠션, 어때요? ⓒ 김학현


서준이가 할아버지·할머니를 보고 처음으로 한 말입니다. 우리를 환영하는 소리지요. 할배 할매를 만나서 반갑다는 말입니다. 벌써부터 양 손을 벌리고 달려와 내 품으로 안겨듭니다. 얼마나 사랑스럽고 행복한지.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할아버지가 아니라면 이때 느끼는 기분을 모르실 겁니다.

감동의 '우와' 그리고 '찌'만 알면 된다?

녀석을 번쩍 들어 올려 안아주곤, 이내 손을 잡고 걸어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 뒤, 이 할배는 집으로 왔고 할매가 딸내미 집에 머물며 서준이를 일주간 돌봤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제 아내가 이튿날 서준이를 데리러 갔을 때는 반가운 표정이 아니더랍니다.

할머니와 집에 오는 것보다 아이들과 노는 걸 더 좋아했다는…. 이 할배가 꾸며낸 이야기라고요? 아뇨. 정말, 일주일을 계속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제 손자 서준이는 '할배바라기'라는 거지요. 이 할배만 '손자 바보'가 아니라 서준이도 '할배바라기'라는 게 신기합니다.

가는 사랑만큼 오는 게 사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리 말하면 정말 제 아내가 실족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아내도 인정합니다. 자신은 두 팔 벌리고 달려드는 서준이를 안아줄 힘이 없다고요. 그러니까 서준이가 이 할배를 더 좋아하는 건 순전이 아직도 남은 이 할배의 힘 때문라고 해두죠.

▲ 서준이가 오렌지 한쪽을 입에 물고 온 세상을 다 가진 양 활짝 웃고 있습니다. ⓒ 김학현


아내와 딸내미 내외가 주말을 이용해 서준이와 함께 우리 집에 왔습니다. 엄마 품에 있던 녀석이 제가 두 팔을 벌리자 이내 안겨오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겐 그런 일이 없답니다. 유독 이 할배에게만 그런다고요. 허, 기분이 얼마나 째지는지(?) 모릅니다.

이후 하룻밤을 자고 가는 동안 서준이 입에서는 "찌!"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몸이 녀석 곁으로 달려갔고요. 서준인 '찌'만 곁에 있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낮잠도 제가 곁에 누워 가슴을 토닥거려 주니 금방 '스르르'입니다. 그 사랑이야 저나 내 아내나 다름이 없건만 서준인 참 이상도 하죠?

녀석이 자기 집으로 떠난 지금도 귓전에 맴 돕니다. 서준이가 부르던 할배 이름.

"찌! 찌!"
덧붙이는 글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는 손자를 보고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할아버지의 글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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