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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그리고 여기 '혼놀'도 있습니다

[책 뒤안길] <나는 나랑 논다>가 일러주는 야릇한 놀이

등록|2017.07.20 12:13 수정|2017.07.20 12:13
어라? 아하! 응~?? 그랬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 속에 일어난 맴돌이다.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바람이 그네들의 놀이터로 나를 끌고 가 처박는다. 김별, 이혜린, 이민영 그리고 그림을 그린 김화연까지. 이들이 나를 마구 자신들의 재미난 여정으로 끌어들인다. <나는 나랑 논다>는 '서툰 어른들이 발견한 혼자 노는 즐거움'이란 부제 때문에 선택한 책이다. 하지만 완전 빗나갔다.

'서툰 어른들'이라 해서 '서툰 어르신들'인 줄 알았다. 내가 어르신 줄에 막 들어서고 있기에 도움이 되려니 하고 선택한 책이다. 서툴기도 한참 서툴기에 나에게 맞는 책이라 생각한 것이다. '서툰 꼰대' 되기 싫어서 말이다. 그런데 완.존.히 빗나갔다.

어르신을 위한 책도 아니다. 서툰 이들의 책도 아니다. 서툴기는커녕 완.존.히 능수능란하다. 책이 '어른들'이라고 말한 대목은 수정이 필요하다. 그들은 어른들이 아니다. 생기발랄한 청춘에 가까운 성인들이다. 아줌마라 하기엔 너무 발랄하고, 어른이라 하기엔 너무 젊었고, 그렇다고 어린이도 아니고... 하여튼 내가 보기에 그들은 진짜 노는 게 뭔지 아는 '아씨줌마들(아가씨+아줌마)'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그리 자신들의 삶을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신나게 노는(혹은 일하는) 모습이 독특하게 맛깔 난다. 이런 놀이터라면 대한민국 사람 모두를 초대하고프다. 이렇게 노는 거라면 세계인 놀이대회를 개최하고프다. 너무 너스레가 길다고? "한번 읽어 봐요"라고 말하고프다. 아마 독자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처럼 생각할 게 뻔하다.

#김별 – 혼낮술 하는 프리랜서

저자 중 맨 앞에 이름을 올린 김별은 '무위의 즐거움(Dolce Far Niente, 돌체 파 니엔떼)'을 구가 하는 여행가이자 프리랜서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서른, 우리 술로 꽃피우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재미없는 직장 생활을 때려치우고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처자다.

"나는 논다. 나랑 논다. 그냥, 재미있으니까"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다. 놀고 싶으면 지하철 독서게임을 한다. 책 한 권 들고 지하철에 올라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지하철에서 내리지 않는다. 추리소설, 만화, 청소년문학, 단편소설, 연애소설, 에세이가 제격이란다. 그는 세계정복을 꿈꾸는 여행가처럼 지하철 정복을 꿈꾼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사람 구경도 하고, 가끔 책을 덮고 졸기도 한다. 쉬엄쉬엄 책을 읽는 과정 자체도 즐겁지만, 지하철 독서의 백미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이다. 이때 내가 항상 하는 의식이 있는데, 책을 덮는 순간 고개를 들어 역을 확인하는 거다. 그리고 역 이름과 책 제목을 수첩에 적는다.

<속 깊은 이성친구>
2015년 1월 29일 목요일, 오후 1시
9호선 국회의사당역"(11,12쪽)

햐, 거참 매력 있는 놀이다. 또 자유인은 자유수영이 놀이로 적당하다며 추천한다. "수영은 별게 아니다. 사지를 쉼 없이 버둥거리며 그 와중에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물 밖으로 드는 것, 그리고 다시 물속으로 처박는 것..." 이런 뭐 수영을 물 보듯 하는 이가 있단 말인가. 꼬박 2년이란 기간을 들이고서야 수영이란 걸 하는 나로선 마음이 불편하다.

심심할 때 문방구 쇼핑 홀릭, 동네 한 바퀴 돌며 지도 만들기, 미술관 들러 미술 관람하기, 도시 속 사찰 둘러보기, 대학 캠퍼스 걷기, 그네 타기, 공항 대합실에서 놀기, 만화방, 새벽 꽃시장 구경, 봉사활동 등 놀이가 너무 많다.

저자의 백미는 '낮혼술'이다. 낮에 혼자 술을 마신다? 뇨.자.혼.자? 그렇다. "크아아아~ 흐으으흥흥~ 기가 막히는구먼!!!!" 그렇게 즐기며 토해낸 게 바로 이 책이란 말씀!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다. 이쯤 되면 낮혼술 한 잔 할 만하지 않은가.

#이혜린 – 일을 놀이라 우기는 워킹맘

▲ 소분하는 즐거움을 그린 김화연의 그림이다. ⓒ 뜨인돌


늦깎이 대학원생이자 '내가 니 엄마'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육아 맘, 혜린은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논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놀이는 다 일이다. 그는 일을 놀이처럼 하는 것이란 게 내 결론이다. 붓펜을 들고 필사를 즐긴다. '마더파더 잰틀맨' 하다가 '네 이년', '꺼져'까지. 한강의 단편 <몽고반점>도 필사했다고 한다. 참 참한 취미며 놀이다.

소분(음식재료를 잘게 써는 것), 냉장고 파먹기, 밤 까기, 사격장 가서 총 쏘기 놀이, 매물로 나온 남의 집 구경하기(집 장만을 위한 탐색인 듯), 버뮤다 삼각지대도 갈 수 있는 구글지도 탐색하기, 간판 간파하기 등 일 같은 놀이, 놀이 같은 일들이 즐비하다. 일을 가지고 놀이라고 우긴다고 하는 이들을 위해 첨언도 잊지 않는다.

"혼자 놀기를 가장한 주부의 전형적인 살림살이 아니냐고 반문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전쟁 같은 일상에 또 다른 일거리를 던지는 거냐며 눈을 치뜨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딱히 반박하고 싶진 않다. 근데 이것만 말하고 싶다. 나에게 소분은 일이나 효율적인 살림 방법이 아니라 혼자 하는 '놀이'다."(106쪽)

그가 그렇다는 데 딴지 걸 필요가 없을 듯하다. 대학교 앞 커피숍에 앉아 옆 자리 손님들의 속삭임을 도청하는 즐거움을 말할 땐 이건 범죄행위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디어가 풍부해 날마다 창업을 한다는 말도 구미 당긴다. 밤 까기 예찬은 혀를 두르게 만든다. 밤 한 번 까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잘 삶은 밤을 까는 일의 위대함은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침이 없다. 칼날의 방향 조절은 과일을 깎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날카로운 칼날이 딱딱한 밤의 굴곡을 따라 지나갈 때면 칼과 내가 하나가 된 것 같다. '반인반도'의 느낌으로 밤을 휘감아 겉껍질을 깎아 내면 보드라운 속껍질이 남는다. 간혹 운이 좋다면 속껍질도 한 번에 시원하게 벗겨지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그때의 카타르시스는 마치 곪았던 피지가 시원하게 빠져 나올 때와 같다."(112쪽)

#이민영 - 호기심 만땅, 자제력 제로

민영은 자신 있게 말한다. "나는 하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하면서 산다"고. 근데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게 그의 고민거리다. 책에 밑줄 긋는 취미, 심야서점을 찾아 밤을 하얗게 불태우기, 멍 때리기, 퇴근 후 공짜 교육 사이트 찾아가 공부하기, 자가 책 출판, 자가 뷰티 살롱, 공짜 사이트 방문하여 음악 듣기, 혼밥, 혼영화 등 다양하기도 하다.

호기심은 만땅, 자제력을 제로여서 하고자 하는 것은 다한다. 그의 혼자 놀기는 대부분 취미생활이다. 특히 멍 때리기는 제대로 맞는 혼자 놀이다. 쿠바에서 멍 때리기 유학을 한 자칭 유학파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쿠바에서의 멍 때리기 단기 유학 후, 내가 이것에 꽤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필 예쁘게 깎기 이후 처음으로 발견한 나도 몰랐던 내 재능. (중략) 나는 쿠바 유학파니까 좀 흐트러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생활밀착형 멍 때리기로 노선을 잡았다. 내가 선택한 멍 때리기는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172,173쪽)

그러면서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눈으로 그림 그리기' 방법을 추천한다. 벽면수행의 변형이라나. 후후후. 책은 김화연의 그림으로 더욱 빛난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림 속에 꽉 들어박혔다. 책은 기획된 것임을 우리 같은 책 좀 읽는 사람들은 한 눈에 안다. 그게 흠이라면 흠이다.

자, 이 어른아이들의 놀이 어떤가. 어라? 아하! 응~?? 이 내 반응,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독자들도 이 어른아이, 하나도 서툴지 않은, 상큼 발랄한, '아씨줌마들'의 반란어린 놀이의 대열에 끼어들면 어떨까. 참으로 행.복.만.땅.일 듯하다.
덧붙이는 글 <나는 나랑 논다> (김별 외 2인 지음 / 뜨인돌 펴냄 / 2017. 6 / 219쪽 / 1만4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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