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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수원 화성 경사길 "당신 나 믿지?"

[루게릭병 환자가 눈으로 쓴 에세이] 수원화성에 다녀와서

등록|2019.08.05 08:51 수정|2019.08.05 08:51
이 글은 7년여간 루게릭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신정금씨가 삶의 의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쓴 에세이입니다. 신정금씨는 온몸이 굳은 상태로 안구마우스를 이용해 눈을 움직여 글을 씁니다. 하루 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 단 한 명에게라도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편집자말]
토요일 밤 퇴근한 남편에게 "내일 수원화성엘 가보자" 했더니 남편은 "화성은 계단이 있어 못 갈 텐데" 하며 호수공원엘 가자 했다. 난 남편이 겉에서만 보고 지레 겁먹고 포기를 종용하는 것 같아 살짝 짜증이 났다. 나는 일단 가서 못 갈 것 같으면 그때 포기하자며 고집을 부렸다. 남편도 마지못해 그러자 하며 낮엔 더울테니 아침에 가자 한다.

막상 아침이 되니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정작 장애인콜택시에 탔을 땐 정오가 다 돼서였다. 차 예약 때 목적지를 화성행궁으로 했지만, 남편이 성곽길을 유심히 살폈는지 중간에 휠체어 다닐 수 있는 길을 봤다면서 기사님께 내렸으면 좋겠다 했고, 기사님은 유턴하여 창룡문 주차장에 차를 세워 주셨다. 가서 보니 계단 아닌 길이 있긴 했지만 휠체어, 그것도 석션기(전동기 등에 연결한 튜브를 이용해 가래 등을 빼내는 것)에 인공호흡기까지 아래에 넣고 다니는 키 높은 특수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잔디 사이사이에 멋스럽게 놓여져 있는 잘 깎인 대리석들은 보기엔 좋았지만 나에겐 위험한 장애물일 뿐이었다. 이어진 길 역시 급경사였다. 포기해야 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남편은 갈 수 있겠다 싶었는지 주저없이 성곽길로 향했다.

역경 이겨내고 목적 쟁취한 동화 속 주인공처럼

성곽 위에 올라가니 탁 트인 시야에 수원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좁은 성곽길은 애당초 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길은 좁고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심해서 몹시 위태로웠다.

그러나 막상 창룡문 망루에 오르니 마치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목적을 쟁취한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황홀했다. 넓고 시원한 도로, 높고 낮은 건물들, 잘 가꿔진 가로수와 조경수들을 창룡문 망루에서 바라보니 마치 정조대왕 시절인 18세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온 사람처럼 경이로웠다. 아찔함과 경이로움은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듯 내 머릿속에서 잘 섞여 황홀한 감동이 되었다.

정조대왕과 정약용은 후대에 이 성이 본래의 목적과는 너무도 다른 관광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꿈엔들 했을까? 난 잠시 엉뚱한 상념에 빠져 수 세기를 거슬러가 역사 속의 정조대왕과 다산 선생을 소환하였다.

남편은 반복되는 급경사 길을 오르막에선 바로가고 내리막에선 거꾸로 가기를 반복해도 힘든 내색 한번 없었다. 평지로 내려오니 그 시대에 심었을까 싶은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서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여기서 쉬었다 집에 가겠지 한 내 예상을 깨고 남편은 공사중인 성곽길로 향했다. 거기는 사람은 덜 다녀 한적했지만 경사는 더 심하고 좁은 비포장 길까지 있어 더욱 힘들었다. 남편이 오르막길 끝의 전망 좋고 한적한 곳에 휠체어를 약간 뉘어 주었다. 파란하늘의 뭉게구름이 '시'가 되어 내 품에 안겨왔다.

내가 행복해하며 환하게 웃자 남편도 좋아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건강했던 시절에도 남편은 내가 행복하면 자신도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바라보니 고맙고 가여운 생각에 울컥했다.

선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훨씬 많구나
 

▲ 수원 화성에서 ⓒ 신정금


남편은 잠시 길을 살피고 오더니 계속 갈 수 있겠다며 끝까지 가자 하며 휠체어를 서둘러 밀었다. 거의 마지막 지점에서 반대편에서 우리를 향해오던 인상 좋은 형제님이 마지막엔 계단밖에 없다며, 자신이 돕겠다 하시고 주변 분들께도 도움을 요청해 네 다섯 분이 도왔다. 나는 미소로 감사 인사를 대신하고 도움 준 분들을 위해 화살기도를 했다.

그분들 덕분에 무사히 평지까지 내려와서 이어지는 도로로 향하는데, 방금 도움 주던 우리 아들 또래의 청년이 가던 길을 되돌아서며 혹시 계단이 있으면 돕겠다 하며 따라왔다. 계단 대신 수원천으로 이어지는 샛길이 있어 그리로 가겠다 하니 비로소 그 청년도 가던 길을 서둘러갔다. 청년의 따뜻하고 선한 심성이 느껴졌다. 뉴스 시청을 하다 보면 세상이 각박하고 흉흉한 것만 같지만, 아직도 세상엔 선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훨씬 많고 살 만한 곳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

남편은 수원천변 길로 가보자 하며 내려갔다. 가물어서 물이 많진 않았지만 냇가엔 수양버들과 수초가 풍성했다. 그늘엔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수원천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예전엔 여기가 지금과는 다른 용도의 개천이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이곳에서 있었을 아이들의 물장구 소리와 아낙들의 빨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더위로 다소 지쳐갈 무렵 장애인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남편에게 "당신 힘들지?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 하고 인사를 한 후 앞으론 안내판도 좀 여유있게 읽고 천천히 휴식도 해가며 다녔으면 좋겠다 했다.

저녁에 활동보조 언니가 오자 남편은 아찔했던 순간을 이야기 하며 자신이 얼마나 긴장했었는지를 말했다. 내가 남편에게 글자판으로 "난 어땠을 것 같아?" 하고 물었더니 남편은 "당신은 날 믿었잖아" 하고 대답해서 내가 놀라 "그걸 알고 있었어?" 했더니 "그럼, 당연히 알았지" 하고 말하며 내 볼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45도는 됨직한 길을 휠체어를 눕혀서 거꾸로 가고 있는 위험천만 한 상황에도 나는 엄마 등에 업힌 천진한 아기처럼 푸른하늘의 뭉게구름을 편안히 감상했었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내게 늘 이런 사람이었다. 내가 건강했을 땐 서로에게 이런 존재였었는데 지금은 신체적 한계 탓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하지만 가질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불행해 하지말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고 지금 가능한 일에 최선을 다하며 기쁘게 살아가겠다 오늘도 다짐해 본다. 2019.6.24

남편이 고마워 얼마 전에 써놓은 편지도 여기 같이 쓴다.

애통함보다 감사함, 행복함이 더 컸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당신!

이른 아침엔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 시간이 지날수록 산들바람이 구름을 데려와 그림을 그립니다. 평소와는 바람의 방향이 달라 왼쪽으로 옮겨가던 구름들이 오늘은 오른쪽으로 옮겨가며 그림을 바꿔주네요.

계절마다 나뭇잎에 내려앉은 아침 햇살의 느낌이 다른 건 태양의 남중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이겠지요.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이 새로운 이웃이 되어 제게 다가와줌은 큰 값을 지불하고 얻은 작은 소득이지요.

여보, 이번 토요일 본당(다니는 성당) 족구 시합 때 펄펄 날을 당신의 멋진 모습을 못 본다는 게 아쉽네요.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 신경이 발달한 당신의 경기 모습은 무척 멋있고 매력적인 남성미가 넘쳐 흐르지요. 그런 내 마음을 잘 알기라도 하듯 당신은 운동하는 모습을 내가 지켜봐 주는 걸 좋아 했었지요. 도복을 입고 검도하는 모습도 멋지고, 농구, 축구, 하다못해 본당 행사 때 제기 차는 모습까지 당신의 모습들은 언제나 내 가슴을 설레게 했지요.

성격은 적극적이나 잘하는 운동이라곤 없고 술은 가끔 마셨지만 노래방 가선 자신있게 부를 노래 한 곡 없는 나와는 딴판으로, 평소엔 지나치리만큼 과묵한 당신은 노래 실력 또한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으뜸이지요. 손글씨 또한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 당신 글씨가 가장 멋지지요.

축구시합이라도 할 때면 술 안주와 식사준비를 해서 함께 운동장에 가 큰소리로 당신 이름을 부르며 "멋있다! 잘한다!" 응원해 주면 당신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좋아라 했지요.

내성적이고 신중하며 과묵한 성격의 당신과는 달리 외향적이고 무모하리만큼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내가 스무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좋아했었지요. 나는 당신 성격을 너무 좋아했고 결혼생활 내내 당신한테 반해서 살았지요. 당신은 종종 날 쳐다보며 미소 띤 얼굴로 "내가 그렇게 좋으냐?" 묻곤 했지요.

여보, 생각해 보니 우린 정말 좋은 부부였네요. 가끔 당신의 과음으로 내게 혼난 걸 빼면 흔한 부부싸움조차 해 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에요. 자타가 공인하는 잉꼬부부였지요.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불의에 맞선 동지였고, 다정하고 따뜻한 애인이었고, 어두운 밤 길 함께 걷는 길동무였고, 언제나 편들어 주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벗이었지요.

사랑하는 당신,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존경하며 사랑하며 예쁘게 살았는지는 주님께서 잘 아실 거예요. 여보, 내가 종종 이야기 하는 것처럼 당신은 기쁘게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입장이 바뀌어 당신이 누워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내 입장이기도 해요.

만약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는 볼 수 없다면, 나는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고 꿈에서라도 보고싶다 하느님께 간청했을 거예요. 여보, 당신 또한 마찬가지였을 거란 걸 저는 잘 알아요. 그런데 여보, 그 간절함을 주님께서 날마다 들어 주시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요. 게다가 맑은 정신까지 갖고 있어 대소사 의논하고 우리 아이들 성장까지 함께 지켜볼 수 있잖아요.

비록 우리가 함께 누렸을 인간적인 즐거움들은 많이 접어둬야 하지만, 그 또한 천국행으로 주님께서 다 보상해 주실 거라 믿어요. 그러니 여보! 당신은 어두운 표정 짓지 말고 당당하게 어깨 펴고 즐겁고 행복하게 감사하며 살아요.

때때로 내가 힘들어 하고 갑갑해 하고 억울해 할 때가 있더라도, 그건 내가 감내해야 할 내 십자가이니 당신은 애통함보다 지금 함께함에 감사함, 행복함이 더 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가끔 내가 어리광 부리면 넉넉한 가슴으로 언제나처럼 품어줬으면 좋겠어요.

- 사랑하는 아내가.
 

▲ 눈으로 글을 입력하고 있다. ⓒ 김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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