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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소유한 뒤... 50대 친구의 삶이 달라졌다

땀 흘리는 노동의 기쁨을 만끽하는 삶... 이런 '소유'는 참 좋네요

등록|2021.07.04 18:18 수정|2021.07.04 18:18

▲ 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벼포기가 나날이 굵어진다. 자연의 생명력이 놀랍다! ⓒ 우경화


소유욕이 본능처럼 자연스러운 시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만큼 사람들의 삶을 추동해가는 것이 또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소유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친구 Y를 보며 혜안을 얻는다.

Y는 얼마 전에 시댁 소유의 농장을 구입했다. 그때부터 그녀가 달라졌다. 일주일에 2, 3번이나 농장에 간다. 그렇다고 농장이 가깝다고 지레짐작하지 마시라.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릴 때 자동차로 1시간 거리다. 그녀는 평일에 농장에 가기 위해 고속도로 운전을 생전 처음 시도했다.

Y는 시댁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방치해 놓았던 농장 농막을 손보느라 정신이 없는 듯하다. 그동안 쌓여있던 물건들을 치우고, 장판과 도배를 하고 화장실 변기를 고치고. 그녀의 취향과 안목에 따라 곳곳에 꽃나무도 심고... 땀 흘려 일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삶을 추동해가는 소유의 개념

농장이 시댁 소유였을 때도 Y가 그렇게 농장일에 열심이었을까. 물론 바지런한 그녀는 농장에 갈 때마다 쓸고 닦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열심일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녀의 열정은 지금의 반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전후 비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농장을 소유하기 전에는 기껏해야 2주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다. 그 농장에서 작물을 키우고 있는 나의 옆지기가 주말마다 그곳으로 출근했던 것에 못 미치는 빈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틀이 멀다 하고 들락거린다.

씀씀이 또한 달라졌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변기 물탱크가 동파했다. 바로 그 가을에 갈았는데 말이다. Y는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깨져버린 변기가 아까웠을 것이다. 물탱크를 갈지 않고, 변기에 직접 물을 붓는 식으로 사용할 참이었다.

설상가상 지하수도 어디가 막혔는지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농장이 된 후로는 물탱크도 갈고, 지하수도 돌본 결과 물이 나오게 되었다. 아, 전기 배선도 기사를 불러 전체적으로 손본다고 했던가.

Y의 변화는 당연한 수순이다. 시댁의 소유였을 때,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청소하는 것뿐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제 자기 소유가 되었다. 그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한 끗 차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소유냐 아니냐에 따라서 말이다.

그녀의 달라진 행동이 언뜻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Y는 농장 구입을 계기로 땀 흘리는 노동의 기쁨을 맛본다고 한다. 뽀얀 피부가 햇볕에 그을리는 것도 괘념치 않을 정도다. 날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생명력이 감탄스럽단다. 뿐만 아니다. 농장에 함께 가는 그녀의 친구들도 덩달아 혜택을 누린다.

일전에 그녀의 농장에 가서 보리수와 앵두를 따왔다. 고개를 쳐들고 새빨갛게 익은 열매를 따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더라. 더 따고 싶었지만, 그만 따라는 Y의 제지를 받았다. 앞으로 6명의 친구들이 와서 딸 예정이란다. 내가 처음이 아닐 텐데... 도대체 몇 명이나 보리수와 앵두나무에 매달리는 거지?
 

▲ 친구 농장에서 따온 열매로 만든 앵두청과 보리수청 ⓒ 박미연


소유를 통해 존재를 더 풍요롭게 

소유가 당연한 세계에 살지만, 그 소유로 말미암아 가끔씩 피곤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소유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실현 가능한 걸까.

추 와이홍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에게 소유라는 개념은 깊이 내면화 된 삶의 원리이다. 그런 그녀가 소유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모쒀족 공동체에서 겪은 일은 꽤나 인상적이다.

그녀는 모쒀족 공동체 내에 별장을 짓고 편리를 위해 자동차를 구입했다. 그곳에 머물지 않는 동안은 한 친구에게 자동차 열쇠를 맡기며, 그에게만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그녀의 자동차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모쒀 공동체의 삶의 방식은 공유재산의 개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추 와이홍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도무지 소유물에 대한 애착을 떼어버릴 수 없었다.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수년이 흘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동의하지 않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물건을 쓸 때면 여전히 불끈 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자동차를 팔았다.

무소유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면, 지혜롭게 소유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추 와이홍처럼, 삶을 위협할 때는 과감하게 소유를 포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하지만 소유가 자신의 존재와 타인과의 관계를 더 풍요롭게 한다면, 굳이 무소유를 향할 이유는 없겠다. 친구 Y와 같이 소유를 통해 삶의 다른 측면이 풍요롭게 열릴지 누가 알겠는가.

친구 땅에서 작물을 키우고 있는 옆지기가 맹지라도 사야겠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이제사 내 귀에 들려온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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