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 입맛 회복, 시어머니의 특별한 레시피 덕분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전수받은 설렁탕, 두 손자와 남편과 함께 먹다
"설렁탕 한 그릇 먹고 들어갈까?"
웬만해서는 외식하자는 소리 않는 내 입에서 불쑥 설렁탕 소리가 나왔다. 코로나가 한바탕 훑고 지나간 자리에 생겨난 까칠해진 입맛 때문이었다. 평소 "맛없는 게 하나도 없다"며 잡식성 입맛을 자랑해 왔었는데 코로나 발병 직후엔 어떤 음식과도 타협이 안 됐다. 더군다나 소질 없는 내 집밥 솜씨로는 입맛 회복은 불가능해 보였다.
"설렁탕집 얼마 전 문 닫았던데..."
간간히 드나들던 단골식당이 문 닫았던 소리에 마음을 접고 돌아섰지만 때마침 뚝 떨어진 기온이 뜨거운 국물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몇 년 전 퇴직을 한 남편은 집밥 먹을 기회가 늘어났다. 술자리가 잦고 외식으로 무장된 남편의 입맛은 집밥에 호의적이지 않다. 주방과 친하지 않은 나에게나 웬만한 미식가 뺨치는 남편에게나 집밥 먹을 기회란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소화력이 떨어져 담백한 음식을 선호하는 나와 달리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는 남편의 입맛은 공통분모가 적다. 그래도 간혹 끓이는 설렁탕 국물에는 남편의 숟가락 드는 속도가 달라지니 설렁탕은 포기 못 할 집밥 메뉴이기도 했다. 입맛을 맞추기 어려운 외식의 경우에도 유일한 타협점이 설렁탕이었으니 남편에게 설렁탕은 국물음식의 대표선수이다.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설렁탕 레시피
어떤 식당은 설렁탕으로, 다른 식당은 곰탕으로 표기하는 두 음식의 차이를 나는 잘 구분하지 못했다. 누군가 뼈 위주로 우려내는 것이 설렁탕이고 고기 위주로 우려내는 것이 곰탕이라고 했는데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우리 집의 설렁탕은 넉넉한 쇠고기와 사골로 우려내니 설렁탕 반, 곰탕 반이라 할 것이다. 시가에서는 설렁탕이기도 곰탕이기도 한 국물을 곰국이라고 불렀다. 대체로는 사골국이라는 정직한 호칭으로 불렀다.
시가에서 설렁탕은 김치만큼이나 존재감이 큰 음식이었다.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레시피대로 설렁탕을 끓여 내면 남편은 "어릴 때 먹은 곰국에는 노란 기름이 동동 떠 있었고 쪽쪽 찢은 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며 예전 같지 않은 설렁탕 맛을 잡아냈다. 그러면서도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워냈다. 일찍 귀가한 남편이 "오늘은 곰국 먹을까" 하면 커다란 뚝배기에 설렁탕을 국자로 옮겨 담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설렁탕을 끓이기 전 깍두기부터 담갔다. 큼직하게 썬 깍두기 무에 고춧가루와 새우젓을 썩썩 비벼놓고 맛이 들기를 기다렸다. 설렁탕의 느끼한 맛을 잡아 줄 깍두기는 국물과의 환상조합을 기다리며 베란다에서 익어갔다.
해마다 연례행사로 끓이던 설렁탕을 포기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뜨거운 설렁탕 대형냄비를 올려났던 주방 싱크대 상판에 금이 간 이후부터였다. 상판 교체에만 60만 원이 든다는 소리에 앞으로 설렁탕은 식당에서 사 먹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단골집을 찾아 다녔다.
문 닫은 설렁탕집으로 해서 입맛 찾을 기회를 잃은 나는 설렁탕 끓이기의 번거로움을 잊고 "물만 부어 간단히 우려내지 뭐"하며 덜렁 사골 뼈와 사태살을 샀다. 아무래도 부쩍이나 밥양이 줄어든 남편도 코로나 직격탄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듯했으니 둘의 입맛을 찾는다는 큰 명분까지 생겼다.
4시간씩 3번 우려내기
눈에 삼삼한 설렁탕을 먹으려면 우선 베란다 창고 깊숙이 보관된 큰 냄비부터 내려야 한다. 일 년에 몇 번 얼굴 볼까 말까 하는 대형냄비의 먼지부터 말끔히 씻어낸다. 그리고는 솥에 가득한 사골 뼈에 물을 넉넉히 받아 밤새 핏물을 뺀다. 베란다에서 하룻밤 재우는 준비과정이다.
설렁탕 끓이는 날에는 아침잠 많은 나도 새벽 기상한다. 핏물을 뺀 사골을 펄펄 끓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말끔하게 씻어내면 그때부터 사골 뼈 우리는 시간이다.
'4시간씩 3번 우려내기.' 이것이 하루 만에 설렁탕을 끓일 수 있는 규칙이다.
"사태 살은 두 번째 끓일 때 넣어서 2시간만 우려야 한다. 그래야 국물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는 거야."
시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두 번째 사골 뼈를 우리기 시작할 때 사태를 넣어 뭉근히 끓여낸다. 고기의 단맛이 국물에 적당히 빠지고 사골의 고소한 맛이 고기에 입혀져 국물도 고기도 맛있어지는 더하기 빼기의 시간이 끝나면 사태 살을 꺼내 양 손가락으로 쪽쪽 찢어 놓는다.
설렁탕 끓일 때, 딱 한 번 남편을 부른다. 우려낸 설렁탕 국물을 식히기 위해 큰 양재기에 옮겨 담을 때다. 국물이 든 무거운 대형냄비를 기울이자면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전에는 혼자 하던 일이었는데 남편이 퇴직한 이후에는 도움을 받는다.
나보다 키가 한 뼘이나 작으셨던 시어머니는 뜨겁고 무거운 설렁탕 국물을 어떻게 세 번이나 옮기셨을까. 찬 바람 불면 설렁탕을 끓이기 시작했던 시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설렁탕을 먹이던 젊은 시절부터 손자가 군대를 가던 팔순까지 설렁탕을 끓여 식구들의 배를 불려주셨다. 시어머니에게 배운 설렁탕으로 시어머니의 아들과 손자를 먹이고 있으니 이거 하나만은 어머니에게 훈장 받을 만하다.
4시간씩 3번 끓여낸 탕은 모두 섞어 다시 한번 끓여낸다. 가스 불을 끄면 두 번째 날의 설렁탕 끓이기가 끝난다. 그날 밤 설렁탕은 시원한 베란다에서 하룻밤을 더 잔다. 하얀 기름옷 입기를 기다리면서.
셋째 날 국물이 식고 국물표면에 자리한 기름옷을 거두어 내고 나면 여러 개의 통에 나누어 놓는다. 국물의 일부는 냉동실에 넣고 미끈거리는 냄비를 뜨거운 물로 닦고 정리하면 비로소 설렁탕 맛볼 시간이다. 뽀얀 국물과 사태살을 뚝배기에 담고 펄펄 끓여 파를 듬뿍 넣어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가스레인지에서 식탁으로 옮겨가는 뜨거운 뚝배기를 잡은 두 손이 벌써 보람 있다.
코로나로 빼앗긴 입맛에 봄이 온다
뜨거운 설렁탕을 먹는 남편과 나는 달리 말이 없다. 유난히 뜨거운 국물을 잘 먹는 남편은 이때만큼은 온 신경을 설렁탕에 집중한다.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만족스러운 숟가락질이 계속된다. 뜨거운 국물이 서툰 나는 신맛의 깍두기나 김치를 한 젓갈 넣어 불그스레해지고 개운해진 국물을 한 수저씩 떠먹는다. 밥을 말아 짧은 시간에 후루룩후루룩 먹는 남편과 달리 국물 따로 밥 따로 먹는 게 설렁탕을 음미하는 내 방법이다.
코로나로 빼앗긴 내 입맛에 봄이 올 것인가. 뚝배기에 코를 박듯 하고 설렁탕에 열중하는 남편의 입맛에는 봄이 온 듯하다. 4살 된 큰 손자도 탕에 밥 말아먹는 맛을 알아가고 있다. 뜨거운 것이 서툰 손자는 설렁탕 먹기 전 후후 불어가는 식전 행사를 더 좋아한다.
언젠가 두 손자가 나란히 고개를 떨어뜨리고 설렁탕을 먹게 될 때가 되면 시어머니가 허리를 굽혀가며 끓여 냈던 설렁탕의 맛을 이어가는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며 온 식구가 머리를 떨어뜨리고 정신없이 설렁탕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시어머니의 미소를 나도 짓게 될 것이다.
두 손자와 나란히 설렁탕 먹는 남편의 모습, 하늘에 계신 시어머니께 자신 있게 보고하고 싶은 그림이다.
웬만해서는 외식하자는 소리 않는 내 입에서 불쑥 설렁탕 소리가 나왔다. 코로나가 한바탕 훑고 지나간 자리에 생겨난 까칠해진 입맛 때문이었다. 평소 "맛없는 게 하나도 없다"며 잡식성 입맛을 자랑해 왔었는데 코로나 발병 직후엔 어떤 음식과도 타협이 안 됐다. 더군다나 소질 없는 내 집밥 솜씨로는 입맛 회복은 불가능해 보였다.
간간히 드나들던 단골식당이 문 닫았던 소리에 마음을 접고 돌아섰지만 때마침 뚝 떨어진 기온이 뜨거운 국물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몇 년 전 퇴직을 한 남편은 집밥 먹을 기회가 늘어났다. 술자리가 잦고 외식으로 무장된 남편의 입맛은 집밥에 호의적이지 않다. 주방과 친하지 않은 나에게나 웬만한 미식가 뺨치는 남편에게나 집밥 먹을 기회란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소화력이 떨어져 담백한 음식을 선호하는 나와 달리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는 남편의 입맛은 공통분모가 적다. 그래도 간혹 끓이는 설렁탕 국물에는 남편의 숟가락 드는 속도가 달라지니 설렁탕은 포기 못 할 집밥 메뉴이기도 했다. 입맛을 맞추기 어려운 외식의 경우에도 유일한 타협점이 설렁탕이었으니 남편에게 설렁탕은 국물음식의 대표선수이다.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설렁탕 레시피
▲ 시어머니는 찬 바람 불면 설렁탕 끓이기부터 시작하셨다. ⓒ 오안라
어떤 식당은 설렁탕으로, 다른 식당은 곰탕으로 표기하는 두 음식의 차이를 나는 잘 구분하지 못했다. 누군가 뼈 위주로 우려내는 것이 설렁탕이고 고기 위주로 우려내는 것이 곰탕이라고 했는데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우리 집의 설렁탕은 넉넉한 쇠고기와 사골로 우려내니 설렁탕 반, 곰탕 반이라 할 것이다. 시가에서는 설렁탕이기도 곰탕이기도 한 국물을 곰국이라고 불렀다. 대체로는 사골국이라는 정직한 호칭으로 불렀다.
시가에서 설렁탕은 김치만큼이나 존재감이 큰 음식이었다.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레시피대로 설렁탕을 끓여 내면 남편은 "어릴 때 먹은 곰국에는 노란 기름이 동동 떠 있었고 쪽쪽 찢은 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며 예전 같지 않은 설렁탕 맛을 잡아냈다. 그러면서도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워냈다. 일찍 귀가한 남편이 "오늘은 곰국 먹을까" 하면 커다란 뚝배기에 설렁탕을 국자로 옮겨 담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설렁탕을 끓이기 전 깍두기부터 담갔다. 큼직하게 썬 깍두기 무에 고춧가루와 새우젓을 썩썩 비벼놓고 맛이 들기를 기다렸다. 설렁탕의 느끼한 맛을 잡아 줄 깍두기는 국물과의 환상조합을 기다리며 베란다에서 익어갔다.
해마다 연례행사로 끓이던 설렁탕을 포기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뜨거운 설렁탕 대형냄비를 올려났던 주방 싱크대 상판에 금이 간 이후부터였다. 상판 교체에만 60만 원이 든다는 소리에 앞으로 설렁탕은 식당에서 사 먹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단골집을 찾아 다녔다.
문 닫은 설렁탕집으로 해서 입맛 찾을 기회를 잃은 나는 설렁탕 끓이기의 번거로움을 잊고 "물만 부어 간단히 우려내지 뭐"하며 덜렁 사골 뼈와 사태살을 샀다. 아무래도 부쩍이나 밥양이 줄어든 남편도 코로나 직격탄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듯했으니 둘의 입맛을 찾는다는 큰 명분까지 생겼다.
4시간씩 3번 우려내기
눈에 삼삼한 설렁탕을 먹으려면 우선 베란다 창고 깊숙이 보관된 큰 냄비부터 내려야 한다. 일 년에 몇 번 얼굴 볼까 말까 하는 대형냄비의 먼지부터 말끔히 씻어낸다. 그리고는 솥에 가득한 사골 뼈에 물을 넉넉히 받아 밤새 핏물을 뺀다. 베란다에서 하룻밤 재우는 준비과정이다.
설렁탕 끓이는 날에는 아침잠 많은 나도 새벽 기상한다. 핏물을 뺀 사골을 펄펄 끓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말끔하게 씻어내면 그때부터 사골 뼈 우리는 시간이다.
'4시간씩 3번 우려내기.' 이것이 하루 만에 설렁탕을 끓일 수 있는 규칙이다.
"사태 살은 두 번째 끓일 때 넣어서 2시간만 우려야 한다. 그래야 국물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는 거야."
시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두 번째 사골 뼈를 우리기 시작할 때 사태를 넣어 뭉근히 끓여낸다. 고기의 단맛이 국물에 적당히 빠지고 사골의 고소한 맛이 고기에 입혀져 국물도 고기도 맛있어지는 더하기 빼기의 시간이 끝나면 사태 살을 꺼내 양 손가락으로 쪽쪽 찢어 놓는다.
설렁탕 끓일 때, 딱 한 번 남편을 부른다. 우려낸 설렁탕 국물을 식히기 위해 큰 양재기에 옮겨 담을 때다. 국물이 든 무거운 대형냄비를 기울이자면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전에는 혼자 하던 일이었는데 남편이 퇴직한 이후에는 도움을 받는다.
나보다 키가 한 뼘이나 작으셨던 시어머니는 뜨겁고 무거운 설렁탕 국물을 어떻게 세 번이나 옮기셨을까. 찬 바람 불면 설렁탕을 끓이기 시작했던 시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설렁탕을 먹이던 젊은 시절부터 손자가 군대를 가던 팔순까지 설렁탕을 끓여 식구들의 배를 불려주셨다. 시어머니에게 배운 설렁탕으로 시어머니의 아들과 손자를 먹이고 있으니 이거 하나만은 어머니에게 훈장 받을 만하다.
4시간씩 3번 끓여낸 탕은 모두 섞어 다시 한번 끓여낸다. 가스 불을 끄면 두 번째 날의 설렁탕 끓이기가 끝난다. 그날 밤 설렁탕은 시원한 베란다에서 하룻밤을 더 잔다. 하얀 기름옷 입기를 기다리면서.
셋째 날 국물이 식고 국물표면에 자리한 기름옷을 거두어 내고 나면 여러 개의 통에 나누어 놓는다. 국물의 일부는 냉동실에 넣고 미끈거리는 냄비를 뜨거운 물로 닦고 정리하면 비로소 설렁탕 맛볼 시간이다. 뽀얀 국물과 사태살을 뚝배기에 담고 펄펄 끓여 파를 듬뿍 넣어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가스레인지에서 식탁으로 옮겨가는 뜨거운 뚝배기를 잡은 두 손이 벌써 보람 있다.
코로나로 빼앗긴 입맛에 봄이 온다
뜨거운 설렁탕을 먹는 남편과 나는 달리 말이 없다. 유난히 뜨거운 국물을 잘 먹는 남편은 이때만큼은 온 신경을 설렁탕에 집중한다.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만족스러운 숟가락질이 계속된다. 뜨거운 국물이 서툰 나는 신맛의 깍두기나 김치를 한 젓갈 넣어 불그스레해지고 개운해진 국물을 한 수저씩 떠먹는다. 밥을 말아 짧은 시간에 후루룩후루룩 먹는 남편과 달리 국물 따로 밥 따로 먹는 게 설렁탕을 음미하는 내 방법이다.
코로나로 빼앗긴 내 입맛에 봄이 올 것인가. 뚝배기에 코를 박듯 하고 설렁탕에 열중하는 남편의 입맛에는 봄이 온 듯하다. 4살 된 큰 손자도 탕에 밥 말아먹는 맛을 알아가고 있다. 뜨거운 것이 서툰 손자는 설렁탕 먹기 전 후후 불어가는 식전 행사를 더 좋아한다.
언젠가 두 손자가 나란히 고개를 떨어뜨리고 설렁탕을 먹게 될 때가 되면 시어머니가 허리를 굽혀가며 끓여 냈던 설렁탕의 맛을 이어가는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며 온 식구가 머리를 떨어뜨리고 정신없이 설렁탕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시어머니의 미소를 나도 짓게 될 것이다.
두 손자와 나란히 설렁탕 먹는 남편의 모습, 하늘에 계신 시어머니께 자신 있게 보고하고 싶은 그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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