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아들 걱정하는 95세 아버지
가족을 통하지 않고 세상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있을 때 잘하라"는 게 내 인생지론
▲ 카네이션 ⓒ 이혁진
이제 내 친구를 포함해 지인들의 부모님들은, 이미 돌아가셔서 거의 안 계시는 게 대부분인 것 같다. 간혹 친구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하지만, 그것도 아주 드문 일이다.
어머니 또한 32년 전 급환으로 돌아가셨다. 현재 95세인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짧은 생애를 대신해 살고 계신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우리의 부모세대는 거의 다 가시고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돌아가셨다. 어찌 보면 지금 남은 우리들도 삶을 정리할 때인지 모른다.
그러면서 연로한 아버지가 곁에 있어 부럽다고 한다. 그 말이 왠지 고맙게 들린다. 내 안부를 포함해 아버지까지 염려해 주는 것이 고맙고 가상하기 때문이다.
한때 소원했던 어떤 친구는 노골적으로 내게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시냐" 물으며 갸우뚱한다. 내심 고약한 질문이라고 느꼈지만, 그 친구에게도 "아버지는 건재하다"라고 답을 한다.
이어지는 친구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아버지가 계실 때 잘해드려"라는 말을 덧붙인다. 여기엔 자신들은 부모가 계실 때 잘해드리지 못했다는 회한이 묻어있다.
사실 아버지에 대한 측은한 생각을 시작한 계기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다. 쓸쓸하게 혼자 계신 아버지가 걱정됐다.
▲ 현 95세 아버지(왼쪽)와 92세 숙부님이 지난해 여름 오찬하는 모습 ⓒ 이혁진
효도는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덕목이지만, 막상 성인이 되고서는 먹기 살기 급급했지 부모님 은혜와 고마움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만 해도 당시 혼자 남은 노인은 외로움에 오래 살지 못한다고 여겨 자식들이 부양하거나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
장남으로서 나는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다. 이전에도 결혼해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분가한 지 2년 만에 다시 합가 했다.
이후 함께 보낸 세월이 30여 년이 흘렀다. 아버지가 혼자라는 생각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아버지의 장수비결이라는 지적에 일부 공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부자(父子)가 함께 사는 법
한편 아버지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집안의 큰 어른이 엄존하고, 그게 상징하는 의미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아버지와 함께 한 세월은 우리 가족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어쩌다 아버지가 칭찬을 하실 때, 나는 여전히 아버지 앞에서 어린애가 되고 주책없이 어리광을 부린다. 때론 아버지가 기뻐하도록 미담과 추억을 부러 만들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자상한 사랑을 받고 자란 손자들은 어떤가.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자주 찾는다. 아이들이 여기서 쌓은 유대감은 아이들이 커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감사하는 것이 또 있다. 흔히 놓치기 쉬운 아버지의 소소한 일상이다. 근 100세에도 혼자 식사를 챙겨드시는 모습은 자식들의 시름을 덜게 한다. 당신께서 평소 아껴 둔 용돈을 내어 우리에게 줄 때는 괜스레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다.
아버지는 매사 자식 걱정이다. '운전한다고' '멀리 간다고' '늦게 다닌다고' '아픈데 무리하지 말라고'... 그 애틋한 걱정은 실은 아버지의 또 다른 사랑표현이다.
사실 이런 걱정도 아버지가 그나마 건강하시다는 방증이다. 살아계신 부모님 잔소리라도 들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푸념하는 내 또래들이 많다.
이렇게 아버지와 함께 한 삶이 어언 70년이다. 우리 부자는 함께 늙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백세를 바라보고 있고 나는 올해 70세 고희를 맞았다.
나이 들수록 더불어 함께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법, 최근 아버지와 나는 동병상련하기에 세상 누구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버지와 소통은 주로 매일 새벽에 시작된다. 귀는 어두워도 아버지는 내 목소리에 익숙하기에, 반응이 빠르시다. 아버지와 나누는 즐겁고 재미난 대화가 언제 갑자기 멈출까 싶어 염려스러울 정도다.
"살아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인생지론이다. 아버지와 나는 지금 이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를 보면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누구든 가족을 통하지 않고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친구는 우리 부자의 삶이 일종의 '예술'이라 부추겼다.
▲ 어머니 묘소 앞에서 ⓒ 이혁진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새벽에 아버지 기침을 살피면서 어버이날을 상기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달력을 매일 체크하는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실 터.
며칠 전 아내가 아버지에게 '빨강 카네이션' 화분을 방에 갖다 드렸다. 한동안 꽃 피울 카네이션은 아버지와 나의 풍성한 대화에 일조할 것이다.
지난 어린이날 연휴에 전곡에 있는 어머니 묘소를 잠시 다녀왔다. 나는 어머니께 속으로 소원 하나를 간곡히 빌었다.
"어머니, 아버지와 제가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도록 보살펴주십시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