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대신 시니어·어르신 쓰는데, 노인정은 왜 그대로일까
경로당 대신 노인정 표기 안내판 여전히 많아... 명칭 정비 '시급'
▲ 금천현대아파트내 경로당은 <효의집>이란 옥호를 달아 주목받고 있다. ⓒ 이혁진
70대인 내 주변 일상에서 최근 노인이라는 말은 좋든 싫든 자제하는 분위기라는 게 느껴진다. 노인의 의미가 예전과는 달리, '나이 먹은 꼰대' 등 다소 부정적인 맥락에서 자주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이나 시니어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는 최근 현상을 볼 때, 아마도 '노인'이라는 표현 또한 조만간 사라지지 않을까 예상된다.
경로당인가, 노인정인가
내 경우 지하철을 탈때 가급적 노약자석은 피해 다니는 편이다. 지난해 며느리를 본 아내도 자신이 노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 또래 친구들도 생각은 비슷하다. 노인이라고 자리를 양보하면 무안해 하거나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친구는 '어르신'이라는 말도 듣기에 거북하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세태는 요즘 젊은 노인세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어려서부터 노인을 공경하며 자란 나 같은 '베이비부머들'조차 노인임을 부정하는데 요즘 세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노인에 대한 인식변화는 장수인들이 증가하는 고령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백세를 누리는 요즘 노인 개념과 나이 구분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노인석이 '경로석'으로 바뀐 지도 오래다. 노인이란 표현은 이제 법전에서 쓰이지 일반생활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경로당을 지원하는 관할 구청도 정책상 법적인 용어인 노인을 쓰고 있지만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직제도 '어르신과'로 고쳤다.
그런데 이런 변화와는 무관하게 아파트 안내 표지판은 노인정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어떤 경로당은 노인정이라는 표지도 함께 붙여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최근 금천구 관내 5군데 아파트를 방문했는데 경로당을 두고서도 아파트안내판에는 모두 노인정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었다.
▲ 한 경로당은 과거 노인정 표지를 붙여놓았다. ⓒ 이혁진
아파트마다 입주자대표회의 등 협의체가 있을진데 노인정 표기에 대한 검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노인이란 표현이 거부감을 주는 것처럼 노인정도 경로당으로 표기하면 어떨까.
'노인복지법'도 노인여가복지시설로 노인정이 아닌 경로당을 공식용어라 규정하고 있다. 아파트 안내표지판은 노인정이라 쓰고 경로당으로 읽으라는 식이다.
이와 같이 노인정 명칭을 경로당으로 바로 잡는 것에 주관단체인 대한노인회는 별다른 입장이 없다. 아마도 노인회 명칭을 변경하는 것보다 고수하는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금천구의 금천현대아파트의 경로당은 <효의 집>이라는 문패를 별도로 달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직관적으로 경로당을 떠올릴 정도로 그 발상이 신선하다. 경로당 바로 옆 파라솔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과 오가는 아파트 주민들도 옥호가 괜찮다는 평이다.
경로당 명칭과 관련해 노인회를 경로회라 부르는 지회와 경로당이 많이 생기고 있다. 노인이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노인을 위한 우리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뜻으로 읽히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매우 바람직해 보인다.
▲ 아파트 안내표지판에 경로당 대신 노인정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 이혁진
▲ 아파트 안내표지판에는 경로당 대신 노인정이라 표기하고 있다. ⓒ 이혁진
노인을 대신하는 명칭 난무, 용어 통일해야
노인을 '시니어'라 부르는 현상도 잦아지고 있다. 실제로 노인일자리를 제공하는 거점기관의 명칭을 '시니어클럽'이라 칭하고 있다. 노인일자리 참여자들도 노인이라는 용어보다는 시니어를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도 노인이라는 명칭보다는 어르신을 택하고 있다. 서울시는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지하철 무료 이용카드를 '어르신교통카드'라 칭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는 '선배시민'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노인과 어르신을 아우르는 용어인데 후배시민과 대칭개념으로 아직은 생소하고 느낌이 언뜻 다가오지 않는다.
이처럼 노인을 대신해 부르는 호칭과 용어가 난무하는 실정이다. 노인을 대체할 용어의 발굴과 보급이 시급하다. 용어를 통일한 후 법과 정책상 널리 통용되는 노인이라는 용어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동네 가까운 경로당을 찾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다니는 곳이다. 더위로 고생하는 어르신들을 위로차 들렀지만 어르신들은 예상보다 적었다. 등록회원은 60여 명인데 매일 경로당을 찾는 회원은 3분의 1도 안된다고 한다.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노인과 노인정 표기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80대의 어르신들도 대부분 노인보다는 어르신, 노인정보다는 경로당으로 불러주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초고령자 경로당에 걸맞은 변화와 활기 필요
▲ 최근 방문한 독산동의 한 경로당 내부, 컴퓨터, 대형TV, 안락의자 등이 완비돼 노인여가시설로 아늑하고 훌륭했다. ⓒ 이혁진
경로당 어르신들도 노인이라는 정체성을 인정하면서도 노인이라는 표현에는 부정적이다. 여기에는 과거 대접받던 노인들에 대한 향수와 바람도 담겨있지만 분명 과거와 다른 전향적인 모습이다.
경로대상 나이를 상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이 생겼다. 이제 고령화추세를 보는 시선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로당을 관할하는 대한노인회는 아파트 노인정 안내표기에 다소 수수방관하고 있는 모습이다. 과거 노인연령상향에 대해 전향적인 모습과는 대비된다.
경로당에는 나 같은 70대는 거의 볼 수 없다. 최근 들른 경로당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80대 중반이며 90세 이상이다. 초고령자 경로당에 걸맞은 변화와 활기가 필요하다.
경로당은 초고령사회 백세시대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대한노인회가 노인정을 경로당으로 바꿔부르는 것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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