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김건희 여사, 내리막길이 보인다
도이치모터스 2심 선고, 김 여사에 올가미 씌워... 공고한 성채 같던 김 여사 지위에 균열 조짐 뚜렷
▲ 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단 뚝섬수난구조대를 방문해 근무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선고는 김건희 여사가 광폭 행보를 보이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재판부가 '돈줄' 역할을 한 사람에게 유죄를 내려 김 여사가 빠져나갈 여지는 거의 없어졌다. 아무리 검찰 수뇌부가 봐주려 해도 이 엄연한 사실을 피하기는 어려울 터다. 기껏 할 수 있는 게 김 여사 사건 처리를 가능한 늦추는 것일 게다.
김 여사에 대한 불리한 판결은 재판부의 엄정함뿐 아니라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검찰 수사팀의 공정함에 기인한 바 크다.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씨가 주가조작으로 20억 넘는 수익을 올렸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도, 1심에서 무죄가 난 전주에게 '방조범' 혐의를 추가해 김 여사를 옭아맨 것도 일선 수사팀이었다. 검찰이라고 해서 모두 윤석열 정권의 '부역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공고한 성채 같던 김 여사의 지위는 균열이 생기는 조짐이 뚜렷하다. 김 여사의 총선 공천 개입 의혹을 증언한 당사자들은 여권 진영의 인사들이다. 머지않아 이를 뒷받침할 물증이 공개되고, 다른 공천 개입 사례도 터질 거라는 말이 여의도에 파다하다. 이 말고도 김 여사가 인사와 정책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무수히 떠돌고 있다. 언젠가 차곡차곡 쌓인 화약이 한꺼번에 폭발할 순간이 다가올 거란 예감이 든다.
김 여사는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싸늘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검찰이 명품백을 무혐의 처분할 거라는 것만 믿고 외부 행보를 부쩍 늘렸다. 그간 자신을 짓누르던 시름을 훌훌 벗어던진 듯하다. 대통령실에선 향후 김 여사 활동 계획을 줄줄이 세워놨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간이 부족해 제2부속실 설치를 못하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 말에서 이제 김 여사가 대통령실의 넓은 공간에서 직원들을 부리는 광경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대통령 행세한다"는 비아냥이 나온 119한강구조대 '시찰'은 그 단면이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이날 김 여사 사진은 최근 윤 대통령이 참석한 어느 행사보다도 많다. 누군가의 승인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용산 내 역학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행위다. 앞으로 김 여사의 활동이 소외된 계층 위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적 기관의 정책 수행을 점검하고 나무라고, 지시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야당이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에는 김 여사 혐의로 8가지가 적시돼 있다. 도이치 사건과 명품백, 공천 개입에 이어 코바나콘텐츠 뇌물성 협찬,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구명 로비, 장·차관 인사 개입 등 나열하기도 벅차다. 역대 영부인 가운데 이토록 많은 의혹과 비리에 연루된 경우가 있었나 싶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고개를 숙이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인데, 김 여사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사유의 핵심인 헌법 질서 훼손에는 최순실의 국정 관여가 큰 몫을 차지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배후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세한 책임을 엄중히 물었다. 같은 논리로 국민이 뽑은 건 대통령이지 배우자가 아니다. 배우자로서 조언은 할 수 있지만 이를 빙자해 대통령에 준하는 권력을 행사하는 건 선을 넘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돼 김 여사가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한다며 안타까워 한다고 한다. 김 여사로 인해 상처 받고 불편해 하는 국민 다수의 심정은 안중에 없다. 배우자의 월권을 막지 못한 책임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지금 보수진영에선 윤석열 정권이 좌초되면 상당 부분은 김 여사 때문일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강구조대원들과 찍은 사진 속 김 여사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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