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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할 때 아내와 상의하지 않아서 생긴 일

주방과 화장실 공사, 뒤늦게라도 시정할 수 있어서 다행

등록|2024.10.27 10:37 수정|2024.10.28 16:49
연재 <베이비부머의 집수리>는 오래된 집을 수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한 기록이다. 노후를 위해 집을 수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들이, 베이비부머 등 고령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감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기자말]

▲ 수리 중인 거실 ⓒ 이혁진


집수리를 하면서 현장에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큰소리를 낸 건 아니었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면 애초 계획한 바나 의도한 대로 되는 경우가 적었다. 이를 막으려면 어쩔 수 없이 시정을 요구해야 했어서, 자주 신경이 곤두서 있고는 했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지만, 아내와도 이런저런 이유로 실랑이를 벌였다. 집수리를 처음 시작할 때 아내는 현장에 있는 내가 수고한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일하시는 분들도 알아서 잘 챙기리라 믿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6월과 7월 여름 날씨는 또 얼마나 무더웠던가. 폭염이 지속되는 와중, 더위를 참아가며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현장에 있었다. 오래된 집을 수리하지만 집을 새로 짓는다는 일념으로 일꾼처럼 열심히 일했다.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현장 작업자들도 못지않았다. 에어컨과 선풍기에서 되레 뜨거운 바람이 나왔는데도 아예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자기들 상황은 낫다며 일손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작업자들에게 매일 3시경이면 더위를 식힐 겸 아이스크림과 아이스 커피 등을 구해와 대령했다(이들이 집수리의 직접적인 작업자이니, 잘 부탁한다고 해둘 필요도 있었다).

집수리 공정은 크게 철거 작업을 시작으로 방, 거실, 주방, 화장실 내부공사에 이어 건물 외벽 방수 등 외부공사로 마무리된다.

실내 공사가 어느 정도 골격이 갖추어지자 나는 아내에게 한번 다녀가라고 말을 건넸다. 아내도 그간의 작업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이전에도 아내에게 간간이 현장의 돌아가는 이야기는 가끔 들려주었었다.

▲ 타일공이 거실 타일작업을 하고 있다. ⓒ 이혁진


늦여름 어느 날, 아내가 내가 있는 현장으로 찾아왔다. 나는 내심 현장의 수고로움을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맞았다. 아내는 수리 진행 중인 현장을 구경할 겸, 나와 현장 작업자들을 위로도 할 겸 여차저차 방문한 것이다.

아내는 실내를 한 바퀴 돌았다. 아내는 다른 곳보다도 주방과 화장실을 유심히 살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현장에서는 한마디 말이 없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우리가 세든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에 집에 와 아내에게 싫어했던 내색을 물어보니 이내 불만을 쏟아냈다. 아내가 한 말이다.

"주방과 화장실 공사를 지켜보면서 현장에서 당신은 뭘 했나요? 어떤 제품이 들어가고 모델은 뭘 쓰는지 미리 제게도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지금은 이미 다 정해진 것 아닌가요?"

일단, 방과 화장실의 문짝은 디자인과 색깔이 같아야 하는데 방은 하얗고 문짝만 다른 색이었다. 화장실 문짝만 색깔이 왜 누렇냐며 전반적으로 톤이 맞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이다. 색을 대체 누가 고른 것이냐며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했다.

이것뿐만 아니었다. 화장실의 수전과 거울, 수납장 디자인도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자기와 상의하지 않고 자신을 무시했다고까지 말했다. 내 나름 신경 쓴다고 썼는데, 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 집수리 실내의 기본방향은 과거 갈색 월넛 분위기를 거의 흰색 톤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유행하는 밝은 색상과 분위기를 따른 것이기도 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나는 화장실 문은 방문과 조금 달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설비업자와도 미리 상의해 결정했는데, 아내와는 충분히 대화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아내는 당시 병원을 왔다갔다 하는 중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발장까지 거의 모든 인테리어를 흰색으로 바꾸자는 아내의 생각은 나와는 달랐다. '화장실 문만 다른 색이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 수리 중인 화장실 ⓒ 이혁진


타일 디자인도 흰색이되 주방과 화장실이 약간 달라야 하는데, 나는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간과하고 있었다. 대화 중 흥분한 아내는 나뿐 아니라 업자까지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아내의 생각에 애들도 거들고 나섰다. 이러다 보니 나는 현장을 지켰던 보람도 없이 '무능한 감독자'라는 오명과 욕만 얻어 먹어야 했다.

결국 나는 아내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돈이 다시 들더라도, 화장실 문짝을 흰 것으로 새로 교체하기로 했다. 타일도 아내가 원하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교체했다.

아내가 자주 사용하는 공간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아내의 현장 감독이 잦아졌다. 주방과 화장실 공사과정을 일일이 체크했고, 그래도 내심 못 미더운지 채근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내가 화장실 개조에 신경을 쓴다고 예상은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관심이 큰 줄은 몰랐다. 그렇게까지 서운해 할 줄은 예상 못했던 게 불찰이었다.

아내 왈 시공업자들 대부분은 중국제를 설치한다면서, 자신은 그보다는 자기 취향에 맞는 디자인과 모델을 골라 설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장실 공사비가 몇 십 만 원 추가되더라도 아내가 원하는 인테리어를 설치하기로 업자와 다시 협의했다.

이후 아내와 상의해 아내에게 화장실에 들어갈 세면기와 양변기, 샤워기, 거울 등 인테리어 국산 제품과 모델을 직접 선택하게 했다. 나중에 그걸 설치하니 그제야 흡족해 했다.

결국, 주방과 화장실은 아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리를 마쳤다. 생각해보면 이런 공간들은 아내가 자주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 새롭게 리모델링한 주방에 서 있는 아내 뒷모습. ⓒ 이혁진


생각해보면 아내 주장에도 일리가 있었다. 수십 년 주방을 지켜온 아내 입장에서는 새 주방을 만드는 데 있어 디자인과 색상 면에서 누구보다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산뜻한 화장실도 아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다. 그간 우리 집 화장실은 본래 용도보다 쓰레기 창고로 사용된 것을 감안하면, 아내의 '화장실 욕심'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돌아보면 이건 집수리를 하면서 내 고집을 앞세워 벌어진 일이었다. 아내와 먼저 상의하고, 아내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 늦었고, 그래서 비용과 시간이 더 들기는 했지만, 지금은 이 공간들에 아내의 의견과 아이디어가 녹아있어 내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렇다고 아내 의견을 무시한 적은 없다. 내 나름 노력했지만, 아내의 생각을 더 세심히 반영하지 못했던 게 새삼 미안하다.

사실 집수리는 94세 아버지뿐 아니라, 아내와 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노후를 보내려는 작업이었다. 그러면 공사 처음부터 내가 주도할 것이 아니라 아내 의견이 십분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돈은 더 들었지만, 중간 중간 다시 조율해야 해 고생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아내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맞았다고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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