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절 '구조조정' 트라우마 떠오르게 한 영화
[리뷰] 영화 <해야 할 일>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군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아."
영화 <해야 할 일>에서 인사팀 이동우 차장(서석규)은 신참 강준희(장성범) 대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에 강 대리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네가 없어도 누군가 똥물을 뒤집어써야 하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며 위로한다. 이 차장이 여기서 말하는 일과 똥물은 회사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이다.
21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2024. 10.15~10.20) 기간에 예술영화관 필름포럼에서 상영된 <해야 할 일>은 2016년 무렵 조선업 한양중공업 인사팀을 배경으로 한다. 입사 4년 차 강 대리가 신참으로 발령된 이 시기, 인사팀 직원들은 현재 회사가 당면한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갑자기 불어닥친 불황과 수주 절벽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회사는 정리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강 대리는 팀장과 차장의 지시에 따라 블랙리스트(해고 대상)를 고르는 일에 착수한다. 인사팀 직원은 현장을 찾아 설득과 회유에 나서고 이어 인사팀은 조정대상자 선별기준과 해고 대상 인원을 상부에 보고한다.
여기까지 보여준 일련의 시나리오는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다. 보통 노동문제를 다룬 영화 대부분 빼앗긴 일자리와 약자인 노동자 입장을 대변한다. 동시에 경영자를 '악마화'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내세운다.
인사팀 직원의 일
그러나 <해야 할 일>은 인사팀 직원들도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노동자와 경영자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구조조정에 대해 인식의 차가 있을지언정 실은 모두 비슷한 갈등과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강 대리도 인사팀 일원으로서 구조조정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배치되는 상황과 갈등에 번민한다. 인사팀 직원들은 회사가 가야 할 구조조정 방향에 수긍하면서도 각자 미묘한 입장차를 드러내는데 영화는 이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강 대리의 옆자리 선임 손경연 대리(장리우)는 스스로 '희망퇴직'을 신청한다. 구조조정 앞에서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고 시궁창 같은 세상에 반감을 표시한 것이다. 손 대리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열정과 성실함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여성이다.
회사는 결국 구조조정 인원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다. 남은 사람을 대상으로 또 언젠가 구조조정이 벌어질 것이다. 풍랑을 만난 배가 몸집을 줄이듯 누군가 바다로 뛰어내려야 할지 모른다.
영화는 우리에게 구조조정 그것만이 살길인지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 구조조정이 답이라고 믿는 가치관, 즉 어떤 길이 진정 살 방도인지 우리 사회의 세계관을 바꾸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가 나눠지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 제목 <해야 할 일>은 의무적인 과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입장차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지난 19일 시네토크에서 박홍준 감독은 "베이징영화제에서도 상영했는데 거기서는 '다음은 누구인가'로 번역됐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쓴 박 감독은 실제 조선업 인사팀에서 4년 반 일했다. 그는 "이 영화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결국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런 상황(구조조정)이라면 어떻게 할지 묻는다. 분명한 건 갈등, 고민 모두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기자 또한 IMF 시절 한 중소기업의 인력관리부장으로 구조조정을 담당해 이 영화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직도 그 시절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데, 영화를 보니 조금은 위로가 됐다.
"누군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아."
21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2024. 10.15~10.20) 기간에 예술영화관 필름포럼에서 상영된 <해야 할 일>은 2016년 무렵 조선업 한양중공업 인사팀을 배경으로 한다. 입사 4년 차 강 대리가 신참으로 발령된 이 시기, 인사팀 직원들은 현재 회사가 당면한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갑자기 불어닥친 불황과 수주 절벽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회사는 정리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강 대리는 팀장과 차장의 지시에 따라 블랙리스트(해고 대상)를 고르는 일에 착수한다. 인사팀 직원은 현장을 찾아 설득과 회유에 나서고 이어 인사팀은 조정대상자 선별기준과 해고 대상 인원을 상부에 보고한다.
여기까지 보여준 일련의 시나리오는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다. 보통 노동문제를 다룬 영화 대부분 빼앗긴 일자리와 약자인 노동자 입장을 대변한다. 동시에 경영자를 '악마화'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내세운다.
인사팀 직원의 일
▲ 영화 <해야 할 일> 스틸 ⓒ 명필름문화재단
그러나 <해야 할 일>은 인사팀 직원들도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노동자와 경영자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구조조정에 대해 인식의 차가 있을지언정 실은 모두 비슷한 갈등과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강 대리도 인사팀 일원으로서 구조조정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배치되는 상황과 갈등에 번민한다. 인사팀 직원들은 회사가 가야 할 구조조정 방향에 수긍하면서도 각자 미묘한 입장차를 드러내는데 영화는 이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강 대리의 옆자리 선임 손경연 대리(장리우)는 스스로 '희망퇴직'을 신청한다. 구조조정 앞에서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고 시궁창 같은 세상에 반감을 표시한 것이다. 손 대리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열정과 성실함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여성이다.
회사는 결국 구조조정 인원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다. 남은 사람을 대상으로 또 언젠가 구조조정이 벌어질 것이다. 풍랑을 만난 배가 몸집을 줄이듯 누군가 바다로 뛰어내려야 할지 모른다.
영화는 우리에게 구조조정 그것만이 살길인지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 구조조정이 답이라고 믿는 가치관, 즉 어떤 길이 진정 살 방도인지 우리 사회의 세계관을 바꾸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가 나눠지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 제목 <해야 할 일>은 의무적인 과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입장차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 영화 <해야 할 일> 시네토크 하는 박홍준 감독 ⓒ 이혁진
지난 19일 시네토크에서 박홍준 감독은 "베이징영화제에서도 상영했는데 거기서는 '다음은 누구인가'로 번역됐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쓴 박 감독은 실제 조선업 인사팀에서 4년 반 일했다. 그는 "이 영화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결국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런 상황(구조조정)이라면 어떻게 할지 묻는다. 분명한 건 갈등, 고민 모두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기자 또한 IMF 시절 한 중소기업의 인력관리부장으로 구조조정을 담당해 이 영화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직도 그 시절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데, 영화를 보니 조금은 위로가 됐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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