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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에서 고추장 만들기, 전혀 이상하지 않네요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은 건강 고추장도 만들고 이웃도 돕고 이석이조

등록|2024.11.06 13:28 수정|2024.11.06 13:36

▲ 메주가루를 넣고 덩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잘 저어주고 있다. ⓒ 이혁진


우연히 참가한 보건소 고추장 체험, 남자는 나 혼자

지난달 동네 독산보건지소에 '대사증후군' 검진을 잠시 받으러 갔다가 고추장 만들기 행사 포스터를 보고 신청한 후 지난 5일 참가했다.

보건소가 고추장 체험까지 한다니 처음엔 의아했지만 건강한 식품정보도 제공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고추장 만들기는 기발한 발상이라 생각했다.

이날 보건소 2층 다목적홀에 주민 30명이 모였다. 신청 예약자 전원이 출석했다고 한다. 나만 제외하곤 전부 30~50대 여성과 주부들이다. 짐작컨대 나이도 내가 제일 많았을 것이다.

보건소도 당초 고령자들이 대거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많아 놀랐다는 반응이다.

이는 고령자 못지않게 젊은 세대도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평생 처음 고추장을 만들어 본다는 참가자도 많았다.

김장은 아내를 도와 수십 년 했지만 고추장은 나 또한 처음 실습하는 것이다. 그런데 레시피와 만드는 순서에 대해 설명을 들으니 고추장 만들기는 의외로 간단해 보였다.

체험행사를 지도하는 최 아무개 영양사는 사전에 조청(650g), 소금(150g), 메주가루(125g), 고춧가루(250g), 따뜻한 물(500ml) 등 모든 재료를 정량에 맞춰 준비해 두었다.

참가자들은 이들 재료를 영양사가 지시하는 대로 붓고 섞으면 고추창이 완성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조청을 담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붓고 갈색의 꿀처럼 생긴 조청이 다 녹도록 저어주었다. 이어 굵은소금을 넣고 알갱이가 남지 않을 때까지 또다시 휘저었다.

▲ 소금이 다 녹으면 메주가루를 넣고 잘 휘젓는다. ⓒ 이혁진


▲ 메주가루에 이어 고춧가루를 넣어 잘 섞어야 한다. ⓒ 이혁진


▲ 고추장이 되직해지면 거의 완성된 것이다. ⓒ 이혁진


단순 작업에 일가견 있는 나는 시키는대로 열심히 저었다. 소금이 다 녹았을 즈음, 메주가루를 넣고 덩어리가 풀어지도록 섞었다. 이제부터는 액체의 끈기가 점점 세지는 것이 손으로 느껴졌다.

마지막에는 고춧가루를 넣고 이 역시 덩어리가 완전히 풀어지도록 휘젓는 것이다. 저을 때마 점성이 강해지는 것이 메주가루와는 새삼 다르다.

고추장 만들기는 생각보다 힘을 많이 쓰는 작업이다. 고추장 공장에서는 이런 과정을 기계가 자동으로 대신하겠지만 직접 담글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고춧가루를 넣고 완전히 되직한 상태가 될 때까지 남자인 나도 사실 힘들었다. 과거 우리 어머니들이 혼자서 고추장을 담갔을텐데 얼마나 고됐을까 싶다.

생전의 어머니는 결혼한 아내에게 고추장 담그는 법을 전수한다면서 며칠간 작업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내가 직접 만든 '건강한 고추장'에 뿌듯

남자 참가자가 나 혼자니 체험행사를 진행하는 영양사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오늘 어르신 남성도 참석했다"라며 여러 시선을 내게 집중시켰다.

진행을 돕는 여러 도우미들도 나를 주목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멋쩍은 듯 어색하게 웃으면서 맷집으로 버텼다.

도우미 중 한 분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어르신은 집에서도 이렇게 하시면 아내분이 환영할 것 같은데요"라며 격려했다.

한 시간 반 체험이 흘렀을까. 이윽고 모양이 그럴듯한 고추장이 완성됐다. 손가락으로 조금 맛을 봤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짠맛이다.

보는 것과 달리 재료들이 아직 제대로 섞이지 않아 발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 고추장은 3개월간 냉장상태에서 숙성한 후 먹을 수 있다. 가공해 판매하는 고추장처럼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 보건소가 배포한 식품 영양정보 예시 자료, 건강을 챙기려면 가공식품 포장에 적힌 영양정보를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한다. ⓒ 이혁진


우리가 만든 고추장은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았다. '건강 고추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날 고추장 체험의 진정한 의미도 '가공식품'에 대한 정보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이에 영양사도 건강을 챙기려면 식품마다 포장에 있는 '영양정보' 표시를 세심히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품 영양정보에는 총 내용량과 칼로리가 제시되고 나트륨, 탄수화물, 지방, 콜레스테롤, 단백질 등 1일 영양성분 기준치에 대한 비율(%)이 표시돼 있다.

▲ 참가자가 만든 고추장은 조그만 용기에 담아 가져가고 나머지는 취약가정에 전달된다. ⓒ 이혁진

▲ 보건소는 고추장체험을 통해 건강식품도 챙겨주고 있다. ⓒ 이혁진


▲ 고추장 체험행사에 참가한 주민들, 남자는 나 혼자였다. ⓒ 이혁진


한편 이날 만든 고추장은 참가자들이 조그만 병에 담아 가고 나머지는 보건소에서 불우이웃이나 취약가정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추장 체험이 나눔 행사를 겸하는 것이다.

내가 직접 만든 고추장이라니 뿌듯했다. 가족을 생각하는 주부들의 마음이 아마 이럴 것이다. 재료만 준비하면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아내에게 대놓고 자랑할 것이 생겼다.

보건소는 질병을 예방하는 단순한 진료실이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한 먹거리까지 챙기는 맞춤형 건강관리센터로 변신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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