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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치 않은 76세 작가, 나도 이렇게 늙고 싶다

[리뷰] 이런 어른 되려면 필요한 것, 즐거운 중년... 이옥선 <즐거운 어른>

등록|2024.11.14 11:28 수정|2024.11.14 11:40

책표지즐거운 어른 ⓒ 이야기장수


이옥선 작가님은 독보적인 말솜씨와 글쓰기로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작가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쓴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이시고, 김하나 작가의 어린 시절을 기록한 육아일기 <빅토리 노트>를 통해 작가로 데뷔하셨다.

<빅토리 노트>를 읽으며 딸의 어린 시절을 이토록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김하나 작가 못지않은 범상치 않은 단단한 필력에 또 한 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첫 책 이후 이렇게 빨리 단독 에세이를 가지고 나타나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76세의 나이에 당당히 단독 저서를 출간하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출간 40일 만에 10쇄를 찍고,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계시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안 가본 노년의 삶... 어떤 게 행복일까

<즐거운 어른>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노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지나가게 될 그 시기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일지 생각하게 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떤 면에선 두려운 일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 또한 막연하게 상상해 보곤 하는데, 그 미래를 먼저 맛본 선배가 들려주는 실제 경험담이기에 크게 가슴에 와닿는다.

출판사 책소개가 설명하듯, 매사에 쫓기면서 전전긍긍 살아가는 현대인과 젊은이들에게 이옥선 작가는 '대충' '최선을 다하지 않고' '다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당부한다.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붙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자유로운 어른은, 그럼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배우고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 출판사 '이야기장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옥선 작가 게시글(https://www.instagram.com/promunhak/) 갈무리. ⓒ 이야기장수 인스타그램


이옥선 작가님의 솔직하고 호탕한 일갈, 칼칼한 유머 덕분에 독자들은 시종일관 유쾌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즐거운 어른>이라는 제목처럼, 아주아주 명랑하고 밝은 책임에는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아래 문장처럼 부모로서 자식에게 갖는 기대감에 대해 유능한 사람과 유명한 사람의 차이로 설명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믿고 지지해 주는 어머니가 계셨기에, 김하나 작가가 유능한 사람을 넘어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중년의 내 자식이 자신의 업계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유능한 사람과 유명인은 다르다. 유능한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차질 없이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40 중반을 넘고 50을 향해 가는 사람이 유능하지 않으면 평균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도 힘든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113쪽)

유쾌하고 명랑하고 당당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어른일지라도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이옥선 작가님은 오래전부터 함께 모임을 하던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자주 아프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죽음에 대한 자각도 뚜렷해지셨다고 말한다. 또 연명 의료로 본인과 가족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고독사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씀하신다.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남은 시간, 즉 인생의 골든 에이지를 명랑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작가님의 바람이 매우 공감되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겨진 자들에게 좋은 기억으로만 남고 싶은 것은 모두의 희망이지 않을까.

​'다신 젊어지고 싶지 않다'는 그녀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도덕으로부터, 또 종교와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214쪽)

70대 후반의 작가가 썼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이 책에서 어떤 통찰력이나 교훈을 기대하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은 그러한 거대 담론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소소한 일상과 사소한 깨달음으로 인해 노년의 삶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해 주는 책이기에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일상을 반짝이게 하는 재미를 찾아내려 노력하면서, 소소한 배움과 깨달음에 기뻐하면서 즐거운 할머니로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70대에 '즐거운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일찍이 '즐거운 중년'부터 빌드 업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결코 녹록하지는 않다는 걸 실감한다. 매일매일이 즐거운 할머니까지는 아니더라도, 때때로 즐거운 할머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책을 덮으며 했다.

그리고 이제는,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라는 타이틀 없이 '작가 이옥선'으로 독자들과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작가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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