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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야구팬한테 장원삼이라고 하는 선수 한 사람은...

[주장] 장원삼 투수를 '돈성' 한테 빼앗길 수 없는 까닭

08.11.21 15:16최종업데이트08.11.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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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삼 선수 서울도시철도공사 팬 사인회에서. (2008.10.18.) 문지희 님이 히어로즈 야구단 팬클럽 사이트에 올려 주신 사진 ⓒ 문지희/히어로즈

야구팬들 사이에는 다른 야구단을 살짝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듯 일컫는 이름이 있습니다. 에스케이를 놓고 '스크'라 하거나 '주유소'라 한다든지, 두산을 놓고 '곰'이라 한다든지, 엘지를 놓고 '엘쥐'라 한다든지 하면서.

이런저런 이름들을 꼽씹노라면, 인천 야구팬으로서는 늘 들러리처럼 구경만 합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와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우리 히어로즈에 이르기까지, 인천 야구팬들이 응원할 연고지 야구단한테는 딱히 붙여지는 이름(별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아냥거리듯 붙이는 '돈성'(삼성) 같은 이름마저도, 때로는 부럽다고 느껴지곤 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바탕이 되었던 현대 피닉스가, 한창 현대 기업이 잘나가던 때 돈으로 싹쓸이를 하듯 선수를 사들였지만 '돈성'과 같은 이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한창 잘나가던 큰기업이라고 해도, 차츰 기울고 기울어 박종호, 박진만, 심정수를 잇달아 삼성 라이온즈한테 내주면서 겨우겨우 버티어 간 탓이 한몫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이참에 '현금 트레이드'로 크게 문제가 불거진 장원삼 선수만 하더라도 새내기 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 들어올 때 계약금을 모두 못 받는 어이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주, 삼성과 히어로즈 구단 사이에서 장원삼 선수를 맞돈 30억 원에 사고팔겠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습니다. 삼성 구단에서는 왼손 투수 박성훈 선수를 함께 묶어 내어주면서 '현금만 오가는 거래가 아닌 듯' 모양새를 꾸몄지만, 속알맹이를 보면 두 구단은 여태까지 이렁저렁 지켜온 틀과 규칙을 모조리 무너뜨린 셈이었습니다.

선수와 선수가 오가는 모양새를 넘어서, 맞돈 30억, 그리고 프로야구단이 서로 규칙을 세워서 야구판을 8개 구단 틀로 지키고 선수들 권리를 조금이나마 북돋우고자 만든 '자유계약선수(FA)' 제도를 그지없이 허물었으니까요.

돈이 없어 쪼들리는 히어로즈 구단으로서는 30억이라는 돈은 가뭄에 단비와 같았을 테지요. 그러나, 자유계약선수 제도로 장원삼 선수를 삼성한테 내줄 몇 해 뒤 일을 헤아린다면, 장원삼 선수 값어치는 30억이 아니라 300억을 치러야 맞았습니다.

프로입단 동기인 류현진 선수와 올해 빛나는 솜씨를 선보인 김광현 선수와 함께, 우리 나라 프로야구판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히는 장원삼 선수(꼭 왼손투수가 아니더라도)인데, '피안타율'과 '회에 따른 볼넷 비율'과 '탈삼진 숫자'를 헤아리면 1위에 오른 적은 없으나 거의 1위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장원삼 선수가 몸담은 구단이 지난 세 해 동안 거의 바닥에서 기고 있었음을 헤아린다면, 또 내외야 수비가 다른 구단과 견주어 꽤 뒤처질 뿐 아니라, 타자들 뒷배가 그리 좋지 않음을 헤아린다면, 류현진 선수와 김광현 선수보다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고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삼성에서 으뜸투수는 배영수 선수인데, 배영수 선수가 2006∼2007년과 2008년에 현대와 히어로즈에서 뛰는 투수였다면, 또 류현진 선수나 김광현 선수가 현대와 히어로즈에서 뛰는 투수였다면 얼마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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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름에서 '돈성'이라는 낱말을 써서 삼성 야구단 팬들한테는 몹시 언짢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인천에서 나고 자라며 아마추어 고교야구부터 프로구단 야구를 줄곧 지켜보고 즐겨온 '쌍방울 다음으로 팬이 적은 야구단 팬'인 한 사람으로서는 이번 장원삼 선수 사태를 놓고, 삼성 구단이 보여준 모습은 오로지 돈 하나로 1등만 하면 된다는 매무새일 뿐이라 참으로 가슴이 답답합니다.

운동경기가, 더욱이 성적에 따라 돈으로 갚음이 되는 프로운동 경기가, 공정한 경쟁이 아님은 일찍부터 느끼고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미국 선수와 피지 선수가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하겠습니까. 영국 선수와 카메룬 선수가 공정한 경쟁을 벌이는 셈이겠습니까. 프랑스 선수와 베트남 선수가, 일본 선수와 라오스 선수가, 남녘 선수와 북녘 선수가, 중국 선수와 몽골 선수가, 이탈리아 선수와 보스니아 선수가, 러시아 선수와 라트비아 선수가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돈이 아주 많은 경기단에서는 빼어난 솜씨를 선보이는 선수를 넉넉히 돈을 들여서 쓸 수 있습니다. 돈이 아주 바닥인 경기단에서는 그저 땀방울 흘리기 하나만으로 선수를 키울밖에 없습니다.

임춘애 선수가 라면만 먹으면서도 1986년 아시안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가난하고 힘여리고 이름없는 사람들한테 악바리를 빼고 무엇이 있을는지요. 이스포트 가운데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면 공군 에이스 선수들은 등록선수가 고작 일곱 사람인 가운데 등록선수 열둘에다가 예비선수와 2군과 준프로와 견습까지 골고루 있는 다른 프로 선수단하고는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공군 선수들은 지난주에 비로소 새로운 선수 셋을 받아들이기는 했는데, 이렇다고는 해도 연습을 내부 선수로만 해야 하고, 다른 프로 선수단은 연습상대도 많을 뿐더러 서로서로 연습상대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꼭, 동네축구가 영국 1부리그나 스페인 1부리그 구단하고 맞붙는 셈이지요.

그래, 장원삼 선수를 비롯해서, 정성훈, 이택근, 김수경, 전준호(2), 송지만, 이숭용, 김동수, 마일영, 조용훈 들이 있는 우리 히어로즈인데, 다른 야구단 팬한테는 이만한 이름쯤 되어야 조금 익숙하지, 다른 선수들은 거의 다 낯설거나 ‘무명’에 가깝다고 할 이름입니다. 정수근 선수 동생인 정수성 선수쯤은 알려나요.

이러한 히어로즈 구단에서 장원삼이라고 하는 이름은, 또 장원삼 선수가 거두는 성적은, 히어로즈 구단에서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장원삼 선수를 뺀 2008년 히어로즈는, 다가올 2009년 히어로즈는, 포를 하나도 아닌 둘 모두 떼고서 치는 장기판인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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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위원회는 ‘장원삼 현금 트레이드’를 놓고 하루이틀 미루고 또 미룬 끝에, 드디어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선수장사는 안 된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가 이러한 마무리를 짓기 앞서,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와 삼성 야구단은 이와 같은 '돈으로 선수 사고파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선수를 사들이고 싶으면 앞으로 몇 해를 기다려서 장원삼 선수를 자유계약선수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아니면, 장원삼 선수를 데려오면서 히어로즈에 내주려고 했던 박성훈 선수를 구슬땀을 흘리게 하면서 장원삼 선수처럼 키워내야 합니다.

장원삼이라고 하는 선수가 하루아침에 '현금 30억에 트레이드 시킬 만한 돈보따리감'이었겠습니까. 틀림없이 모든 선수한테는 구단에 기둥이 될 만한 바탕이 있습니다. 이러한 바탕을 얼마나 알아보면서 키우느냐는 감독과 코치와 트레이너가 할 몫입니다.

지난날 현대 유니콘스가 '선수 1차 지명권'을 한 번도 누리지 못하고 스카우트비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가운데에도 '신인왕'을 잇달아 내놓을 수 있던 바탕을, 지금 히어로즈 구단주와 삼성 관계자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삼성 야구단은 야구판 바탕틀을 깨면서 저희 구단만 1등 성적을 내는 데에 머리를 기울이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구단에 돈이 넉넉하니 돈으로 선수를 사 와서 굴려도 되지 않느냐고,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 나라이고 자유와 민주가 있는 나라이니, 이렇게 돈으로 프로야구판을 움직이는 일이 무어 잘못이냐고 생각할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말입니다. 높은 성적과 명예와 1등, 여기에 1등을 하면 굴러들어올 더 큰돈이라는 사탕이 눈앞에 보여서 오로지 돈을 쓸어붓기만 하면서 운동경기를 하려고 한다면, 야구라는 운동경기를 즐기는 삼성팬을 비롯한 다른 야구단 즐김이한테 어떤 보기가 될는지를 곱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바탕틀은 '공정한 경쟁'은 있을 수 없다는 자본주의 나라 프로운동경기판이라고 하지만, 그토록 선수와 감독과 심판이 입에 담는 '신사적'이라는 말마따나, '땀흘려서 운동을 하는 참뜻'을 헤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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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야구팬은, 저처럼 에스케이 와이번스를 '인천 야구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천'
야구팬은, 삼성 구단이 장원삼 선수를 오로지 돈 하나로만 빼앗으려는 일을 아주 못마땅하게, 아니 가슴아프게 바라보았습니다. 마무리는, 다시 히어로즈로 돌아가도록 했지만, 한 주에 걸쳐 선수와 감독과 즐김이 모두한테 아픔을 남긴 짓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습니다.

현대 야구단은 당신들 구단을 믿었던 즐김이를 저버리고 인천을 떠나 서울로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수원에서 일곱 해라는 세월을 보냈고, 이러는 사이 인천 야구단하고는 조금도 끈이 안 닿던 쌍방울을 거두어들인 에스케이가 인천으로 연고지를 옮길 때 더할 나위 없이 가슴이 찢어지고 속이 탔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닌 불벼락도 아닌, 이야말로 날불벼락이었습니다. 지난해, 에스케이 구단이 지난날 '태평양 돌핀스' 옷을 입고 '돌핀스데이'라고 하면서 히어로즈 선수와 경기를 치렀을 때에는 쓴웃음이 나기까지 했습니다. 태평양 돌핀스 적 옷을 입고 뛴 선수가 에스케이 와이번스에 누가 있다고, 누가 그때 눈물과 웃음을 알고 있다고, 이런 '팬서비스'를, 다른 구단도 아닌 히어로즈 구단하고 맞붙으면서 할 수 있었을까요.

이제 와서 히어로즈 구단은 인천으로 연고지를 돌아갈 수 없을 뿐더러, 에스케이 구단이 인천 연고지를 내줄 일도 없으리라 봅니다. 히어로즈 구단은 어찌어찌 서울로 연고지를 들어가기는 했지만, '서울 구단'이라는 느낌이나 사랑을 받으려면 앞으로 한참 먼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 여덟 구단 가운데 가장 즐김이가 적은 히어로즈 구단은 이처럼 선수장사를 해서는 즐김이가 더 줄어들고, 없는 살림은 더 버거워질 길밖에 안 남으리라 봅니다. 있는 선수끼리 더 똘똘 뭉치는 경기를 보여주어야, 없는 가운데에도 더 구슬땀을 흘리는 악바리로 경기를 치러내어야, 있건 없건 늘 깨끗하면서 온힘을 다하는 경기를 선보여야, 차츰차츰 즐김이들 사랑과 믿음을 받으면서 구단 살림도 불고 광고주도 생기며 선수와 감독도 힘을 내면서 멋진 경기를 이끌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삼성 야구단이 적잖이 걱정됩니다. 김응룡 사장과 선동열 감독이라고 하는, 우리 나라 프로야구에서 내로라하는 금빛 큰별이 거느리는 삼성 야구단인데, 금빛 큰별에 조금도 걸맞지 않은 걸음걸이만을 보여주고 있으니 안쓰럽습니다.

높은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자리에 걸맞도록 매무새로 꾸려나가야 할 텐데, 외려 속좁고 속얕은 길로만 치닫고 있으니 근심스럽습니다. 이번 ‘장원삼 현금 트레이드’가 참말로 삼성과 히어로즈 서로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밀어붙였는지요. 이렇게 야구판 물을 흐려서 삼성만 혼자 1등을 하면 야구가 더 재미있어지고, 삼성도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지요.

박종호, 박진만, 심정수가 빠진 히어로즈 선수단 자리에는 아직도 구멍이 크게 나 있다고 느껴지지만, 이 구멍을 제대로 메우지 못한 탓은 현대와 히어로즈 두 구단에 있습니다. 젊거나 어린 선수들이 부지런히 애쓰지만 그만큼 닿지 못하니, 앞으로도 더 힘내라고 북돋워 주고 손뼉을 쳐 줄 뿐입니다.

다만, 이렇게 애쓰고 눈물콧물 흘리면서 웃음 한 번 시익 날리는 ‘낮은자리 야구 즐김이’한테서, 그나마 보람 하나 있는 장원삼 같은 선수를 돈주머니로 짓밟거나 까뭉개지는 말아 주십사 하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삼미팬 청보팬 태평양팬 현대팬 히어로즈팬이라고 해서 우습게 보지 말고, 함부로 여기지 말아 주십사 하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장원삼 프로야구 히어로즈 삼성 라이온즈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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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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