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뽑은 2008년 '좋은' 어린이책 세 가지

[책읽기가 즐겁다 227] 올 한 해 나온 어린이책들을 돌아보면서

등록 2008.11.24 14:07수정 2008.11.2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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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를 다루는 잡지 〈북새통〉에서는 달마다 갈래로 나누어서 ‘좋은 책’을 뽑습니다. 먼저 잡지사에서 다섯 가지 책을 후보로 뽑아서 다섯 사람한테 보내어 평점을 매기는 한편 잡지독자 평점과 책방 판매지수를 더해서 한 가지 책을 ‘이달에 추천할 책’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하면 한 해에 열두 가지 책이 ‘이달 추천 책’이 되는데, 이 열두 가지 책 가운데 또 세 가지 책을 추천하면서 ‘올해 추천 책’ 하나를 뽑습니다.
 
저는 잡지 〈북새통〉 어린이책 갈래 전문위원으로 달마다 한 가지 책을 추천해 왔습니다. 이번에 올해 책 하나를 1ㆍ2ㆍ3위 세 차례로 나누어서 추천하게 되면서 적은 글을 옮겨 봅니다. 추천해야 할 책들은 제가 생각하는 ‘이달 좋은 책’이나 ‘올해 좋은 책’하고는 어느 만큼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즐겨읽고 많이 팔린다고 하는 책들 가운데 2008년 한 해에 걸쳐서 이와 같은 어린이책이 있었고, 이와 같은 어린이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를 적는 일은, 오늘날 우리네 어린이책 문화를 곰곰이 돌아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글쓴이 말)

 

 

1. 아빠의 만세발가락 / 리타 페르스휘르 씀, 두레아이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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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꾸밈없이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한 아이 삶과 생각을 조촐히 담아낸 좋은 어린이책입니다. ⓒ 두레아이들

▲ 겉그림 꾸밈없이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한 아이 삶과 생각을 조촐히 담아낸 좋은 어린이책입니다. ⓒ 두레아이들

: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앞으로 살아갈 꿈을 키우면 좋을까를 생각할 때, 오늘날 쏟아지는 수많은 책 가운데 선뜻 손에 쥘 만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니, 제법 많으나 제가 못 알아보기도 합니다.

 

요즈음, 아이 키우기를 하면서 밤잠도 아침잠도 낮잠도 제대로 이루기 어려운 가운데 책을 살피다 보면, 잠이 모자라 졸려서 하품 나오는 책도 많기는 하지만, 구태여 이런 책을 왜 썼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책, 그러니까 배부른 책이 참 많습니다.

 

출판사도 배부르고 작가도 배부르며 독자도 배부릅니다. 배고픈 책이 몹시 드뭅니다. 배고픈 출판사도 배고픈 작가도 배고픈 독자도 참으로 드뭅니다. 아니, 이보다는 배고픔을 제대로 어우러 놓는 출판사와 작가가 모자라고 배고픈 가운데, 책을 쥐어드는 독자 스스로도 배고픈 가슴이 모자랍니다.

 

이러다 보니, 출판사와 작가로서는 배부른 사람들 입맛과 눈높이에 맞추는 책만 자꾸 쏟아내게 되고, 배고픈 사람은 자꾸자꾸 책하고 멀어집니다. 사람들이 책을 덜 읽게 되는 대단히 큰 까닭 가운데 하나는, 출판사와 작가 모두 지나치게 배부른 가운데 책을 엮어내다 보니, 여느 배고픈 사람들 가려운 데를 못 긁어서 책읽는 즐거움을 깔아뭉개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참 재미 참 즐거움 참 웃음 참 눈물하고는 동떨어진 값싼 장난질과 돈지랄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 나라밖 문학작품인 《아빠의 만세발가락》은 아이 하나가 자라는 동안 부대껴야 하는 숱한 마음앓이가 골고루 녹아들어 있는데, 팔짱 끼고 구경하는 구름에 앉은 신선놀음이 아닌, 아이와 어깨동무하면서 머리를 맞댄 옆지기와 같은 매무새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따스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직 우리 나라에는 이만한 작품을 엮어내는 문학가가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손가락으로 꼽기 힘이 드는데, 부디 앞으로는 배고픔과 가난이 무엇인지 참뜻을 제대로 깨달으면서 작품을 엮어내는 작가가 늘고, 이런 작품을 잘 알아보면서 책으로 묶어내는 출판사가 늘어나 주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책은 날마다 먹는 밥처럼 늘 찾아먹을 수 있어야 하고, 날마다 먹어도 지루하지 않아야 하며, 날마다 몸과 마음을 살찌울 수 있어야 하는 한편, 따뜻함과 싱그러움을 간직해야 하는 가운데 식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하고, 한 숟가락씩 덜어 이웃과 나누는 마음이 깃들기도 하면서, 먹고 나서 똥으로 나와 흙을 기름지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밥다움을 잃는 밥은 밥이 아니라 돈장난이듯, 책다움을 잃는 책은 책이 아니라 돈지랄일 뿐입니다.

 

2. 랑랑별 때때롱 / 권정생 씀, 보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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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권정생 님이 손수 쓴 마지막 작품입니다. 꾸밈없고 조촐하게 펼쳐낸 이야기가 애틋합니다. ⓒ 보리

▲ 겉그림 권정생 님이 손수 쓴 마지막 작품입니다. 꾸밈없고 조촐하게 펼쳐낸 이야기가 애틋합니다. ⓒ 보리

: 권정생 님이 우리한테 마지막으로 남겨준 고마운 선물입니다. 마지막 선물인 만큼 대단히 뜻이 있고 빛이 나며 사랑이 서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마지막 선물을 당신 피를 뚝뚝 흘려 가면서 온몸으로 나누어 준 권정생 님 사랑과 믿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랑과 믿음을 잃을 때, 우리들은 치고박고 다툴 뿐 아니라, 내 밥그릇과 밥벌이에 눈이 먼 채 이웃 삶을 망가뜨리고 이웃 삶터를 재개발로 무너뜨리게 됩니다. 사랑 없이 하는 일은 그저 끔찍하기만 하고, 믿음 없이 하는 놀이는 그예 두렵기만 합니다. 사랑 없이 쓰는 글은 달콤한 개살구에 지나지 않고, 믿음 없이 쏟아지는 새책들은 제 이름값 알리려고 나무 목숨을 죽이는데다가 지구 공기를 더럽히는 못난쟁이 하릴없는 짓입니다.

 

그런데, 권정생 님을 좋아한다는 분들은 《랑랑별 때때롱》이 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할까요? 그냥 ‘권정생’ 이름 석 자가 박혀 있어서? 권정생 님 마지막 선물이라서? 우리 나라를 빛낸 어린이문학가라서? 어린이문학가임을 넘어 당신 아픔을 삭여내어 아이들한테 즐거움과 빛줄기를 베풀어 주고픈 넉넉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분이 쓴 글이라서? 왜 이 작품이 아름답다고 하며, 왜 이 작품을 읽혀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권정생’ 이름 석 자를 지우고서도 《랑랑별 때때롱》을 즐겁게 읽으면서 이웃과 오순도순 나눌 수 있으신지요. ‘권정생 마지막 선물’이라는 띠종이를 벗겨내고도 《랑랑별 때때롱》을 신나게 읽으면서 아이들하고 올망졸망 어깨동무를 할 수 있으신지요. 《랑랑별 때때롱》을 아이들한테 쥐어주는 왼손이 있다면, 학습지와 영어교재를 아이들한테 쥐어주는 오른손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랑랑별 때때롱》을 사 주는 지갑에는 부동산투기와 주식투기를 하는 다른 돈이 함께 들어 있지는 않으십니까. 아파트에 살면서 《랑랑별 때때롱》을 읽히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나라밖 나들이를 가고자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누비며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길에 가방에 챙겨 넣은 《랑랑별 때때롱》은 아니온지요.

 

아이 키우기는 오로지 애 엄마한테 맡겨 놓고 회사일이랍시고 하루 내내 밖에서 떠돌고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지키며 영업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둘러댄 채, 그저 휙 하고 아이한테 던져 주는 《랑랑별 때때롱》은 아닙니까.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도 자가용을 버리지 못한다면, 부디 《우리들의 하느님》은 헌책방에 내놓아서 주머니 가난한 이웃들이 싼값에 사서 읽도록 해 주십시오. 《랑랑별 때때롱》을 읽고도 큰집(거의 다 아파트일 테지요)을 버린 다음 얻은 돈으로 이웃나눔을 펼치고 작은집으로 옮겨서 작은방에서 식구들이 한 이불을 덮고 잠들지 않을 바에는 《랑랑별 때때롱》도 동네 헌책방에 내놓아서 집안형편 빠듯한 이웃이 반갑게 집어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3.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 / 리처드 플랫 씀, 푸른숲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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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우리 밥차림과 밥거리를 곰곰이 돌아보도록 하면서, '으레 그러려니' 하는 생각을 씻어내게끔 도와주는 재미난 이야기책입니다. ⓒ 푸른숲

▲ 겉그림 우리 밥차림과 밥거리를 곰곰이 돌아보도록 하면서, '으레 그러려니' 하는 생각을 씻어내게끔 도와주는 재미난 이야기책입니다. ⓒ 푸른숲

: 날마다 밥을 안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날마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배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배속에는 아무것이나 넣을 수 없습니다. 맛난 봄나물도 가려서 먹어야 하듯, 배속에 넣는 밥 또한 골라서 넣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든 어른이든 몸이 아파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을 때에도 이 주사와 약이 어떤 성분으로 빚어졌는가를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우리들은 화학조미료와 화학첨가물과 화학착색료가 몸에 나쁜 줄을 이제서야 비로소 깨닫기에, 요새는 조미료 회사며 식품회사며 ‘MSG 無 첨가’라는 굵직한 글씨를 비닐봉지 겉에 박아 놓곤 합니다.
 
그러면 이런 딱지를 안 붙일 때까지는 으레 넣어 왔다는 소리일 텐데, 이런 잘잘못을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병원 주사와 약이 화학조합물인 한편 우리들한테 약 성분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문제로 삼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예방접종 주사에 수은과 포름알데히드 같은 성분이 있음을 깨닫는 사람도 드물고, 이를 깨달아도 예방접종 주사를 거스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그러다 보니까, 미친병에 걸린 소고기를 들여오는 일에는 두 소매 걷어붙이면서 반대를 하지만, 유전자조작 곡식이 일찌감치 들어와서 팔리고 있는 일에는, 또 이런 곡식으로 이름난 식품회사 먹을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일에는, 또 길거리 밥집에서는 이런 곡식으로 밥을 지어서 팔고 있는 일에는 모르쇠일 뿐더러 젬병입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는 이러한 간지러운 구석까지 건드리지는 못하지만 넌지시 귀띔은 합니다. 넌지시 귀띔을 해서 ‘지금 당신이 아이와 함께 먹는 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하고 묻습니다. 스스로 자기 밥차림을 돌아보도록 이끕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땅을 일구고 짐승을 쳐서 밥을 차릴 때와, 우리가 돈만 벌어서 돈으로만 밥을 사다 먹을 때가 어떻게 다른지를 깨닫도록 이끕니다.
 
편견으로 얼룩져서 으레 ‘야만’이라고 여기는 ‘옛 살림살이 고스란히 지키는 사람들’ 밥거리는 그네들이 얼마나 자기 터전에 잘 들어맞는 밥거리인가를 돌아보도록 이끕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책 하나를 읽으면서도, 또 읽고 나서도, 배를 곯아 죽고 있는 북녘 이웃을 도울 마음을 품지 못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 무기를 버리고 참된 사람권리와 평등과 자유와 통일과 민주를 일으키고자 손을 맞잡으려는 데에 나서지 못합니다.
 
작은 힘을 모아서 큰 힘이 되도록, 티끌을 모아서 큰산을 이루도록, 이런 길에 나서도록 길잡이 노릇을 하는 책 하나임에도 조금도 못 느끼거나 안 느끼면서 아이들한테 햄버거를 사먹입니다. 하긴, 어른들부터 햄버거와 피자를 얼마나 좋아하나요.

 

잡지 <북새통>에 올 한 해 추천된 '이달 좋은책' 목록

 

2007년 12월 : 아빠의 만세발가락 / 리타 페르스휘르, 두레아이들

2008년 01월 : 누가 체리를 먹을까? / 페트릭 띠아르. 그린북

2008년 02월 : 숲으로 간 코끼리 / 하재경, 보림

2008년 03월 : 어린이 양성 평등 이야기 / 권인숙, 청년사

2008년 04월 :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지혜롭게 살았을까? / 강난숙, 청년사

2008년 05월 : 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 / 윤구병, 보리

2008년 06월 : 낙타굼 / 박기범, 낮은산

2008년 07월 : 랑랑별 때때롱 / 권정생, 보리

2008년 08월 : 입이 똥꼬에게 / 박경호, 비룡소

2008년 09월 : 개념 잡는 초등세계사 사전 / 김선옥 외, 주니어김영사

2008년 10월 :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 / 리처드 플랫, 푸른숲

2008년 11월 :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 / 국제앰네스티, 사파리

덧붙이는 글 | 잡지 <북새통>에는 몇 줄로만 간추려서 '추천도서 선정기'를 보냈고, <오마이뉴스>에는 '추천도서 선정기'를 모두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8.11.24 14:0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잡지 <북새통>에는 몇 줄로만 간추려서 '추천도서 선정기'를 보냈고, <오마이뉴스>에는 '추천도서 선정기'를 모두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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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만세발가락 - 마음으로 보는 그림 같은 이야기

리타 페르스휘르 지음, 유혜자 옮김,
두레아이들, 2007


#어린이책 #추천도서 #책읽기 #책 #북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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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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