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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과 저항의 땅 아프가니스탄에서 스러져간 청춘들

[영화로 읽는 세상 이야기 ⑥] 아프간 전쟁이 남긴 것 <제9중대>

09.11.27 20:06최종업데이트11.05.24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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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2월1일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략과 관련해 TV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골자는 미군의 추가 파병으로 규모는 약 3만 명이 넘을 것으로 외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미 국민 과반수가 추가 파병에 반대하고 있고 여당인 민주당에서조차 병력 증파을 반대하고 있음에도 강행하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아프간 주둔 미군은 6만8000명이며, 미군을 포함한 외국 군인은 모두 11만여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 국내에서도 한국군의 재파병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한 지난 18일 반전평화연대(준)와 참여연대 등 65개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반대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는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점령 중단과 파병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또한 19일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파병 반대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하기 직전인 17일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에서는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정책 및 현안과 관련하여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파병과 관련해 국민 2명 중 1명(47.9%)이 파병 명분이 없을 뿐 아니라 한국군의 안전문제와 재외 국민들의 테러위험 등을 꼽으며 반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문명의 십자로'라 불릴 만큼 동서의 문화교류에 가교 역할을 해온 아프가니스탄이 비극의 땅으로 전락한 것은 1979년 소련이 개입해 카르말 친소파 정부를 수립하면서 시작됩니다. 1989년 소련군이 완전 철수했으나 내전을 거듭하다 2001년 9월11일 '9.11' 사태를 빌미로 알카에다에게 선전포고를 한 부시 정권이 그해 10월7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에 대해 전격적인 침공을 시작하면서 아프간 전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듭니다.

황량한 아프간에 총알받이로 버려지는 젊은 영혼들

옛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참전한 젊은 영혼들의 절망과 비극을 정면에서 응시한 러시아판 플래툰 <제9중대> 포스터. ⓒ 아트 픽쳐스 그룹


미국에 베트남 전쟁이 있었다면, 소련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있었습니다. 미군이 베트남 침공에 실패했듯이 소련도 아프간 침공에 실패하고 철수했습니다. 1979년부터 89년까지 이어졌던 아프간 침공에는 옛 소련 군인 6만2천 명이 파병됐고, 1만5천여 명의 사상자만 남겼습니다. 오늘 함께 읽을 러시아 영화 <제9중대>도 당시 아프간 전투에 참가했던 젊디젊은 청춘들의 못다 핀 꿈을 기록한 실화입니다.

명분도 의미도 없는 아프간 전쟁터로 내몰려 살육훈련 끝에 하나 둘씩 파괴되는 젊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그린 러시아판 플래툰 <제9중대>는 핏빛 풍경 속에서 피와 땀과 죽음의 공포가 섞여 입 안에서 단내가 확확 풍기는 극한의 상황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합니다. 잔인하고 치열한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은 없지만, 그 안에 반전의 당위성과 명분 없는 전쟁의 비극을 녹여 낸 영화 <제9중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9년째인 1988년 어느 날.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각자의 사연을 남겨둔 채 자원입대한 한 무리의 청춘들이 군용열차에 올라타 훈련소로 향합니다. 군바리 체질의 고아 출신 리따예프(아서 스몰랴니노프),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진 예비교사 바라비(알렉세이 차도프), 물감과 팔레트를 챙겨 들고 온 화가 지망생 지오콘다(콘스탄틴 크류코프), 사랑하는 어린 딸이 그린 그림을 간직한 스타쉬(아르티옴 미하일코프), 입대 전날 결혼한 새신랑 추가이노프(이반 코코린) 등등.

꿈과 희망으로 벅찬 젊은 청춘들이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거짓 명분에 이끌려 아프간 전쟁에 참전한 뒤 훈련소에서 열병식을 갖고 있다. ⓒ 아트 픽쳐스 그룹


머리카락 한 올 남김없이 빡빡 민 이들은 리따예프를 중심으로 6소대에 배치됩니다. 아프간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이 교차되는 가운데 훈련소에서 만난 광기 어린 교관 디갈로(미카일 포레첸코프)의 혹독한 조련 속에 이들은 각자의 꿈을 꺾고 병사로 태어납니다. 훈련이 끝나는 날, 연대장이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나오라고 하지만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이들의 아프간의 여정은 시작됩니다.

영화의 전반부라고 할 수 있는 지독한 훈련 과정은 이들을 뛰어난 전투병기로 변신시켜 놓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순수한 청년 바라비는 폭력을 즐기고, 지오콘다는 붓보다 총을 잡는 게 더 익숙해지고, 냉정한 현실주의자 리따예프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하나둘씩 체득해 나가며 살상무기로 탈바꿈해 갑니다.

훈련소 시절을 끝내고 이들이 배치된 9중대는 아프간의 자르단 3234고지에서 후방 수송부대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최전방 지역. 아프간 외딴 마을에 수색을 나갔던 부대는 스타쉬가 아프간 소년이 쏜 총에 맞아 숨지고, 분노한 수색분대의 공중지원 요청으로 마을은 초토화되고 맙니다. 새해를 맞아 조촐한 파티를 즐긴 다음 달, 고향으로 돌아 갈 소박한 꿈을 꾸는 이들에게 이윽고 무자헤딘의 총공세가 들이닥치고 유일한 생존자는 리따예프뿐, 나머지 부대원은 몰살당합니다. 

동전의 양면에 불과한 소비에트와 미국의 아프간 침략  

영화 <제9중대>는 반전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습니다. 꿈 많은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육을 서슴지 않는 군인으로 변해 가는지 그 과정에 주목합니다.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이유도 모른 채 훈련소행 기차에 몸을 싣고, 낮선 아프간 땅에서 버려지는 이유도 모른 채 하나 둘씩 죽어 나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응시합니다. 마치 황량한 아프간 땅에서 그들이 찾고자 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스러져 가는 지를 되묻듯이, 일그러진 병사들의 얼굴과 아프간의 스산한 풍광을 교차시키며 카메라 앵글을 이동합니다. 
   
이들에게 전쟁의 명분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노련한 교관 디갈로가 훈련병들로 하여금 수시로 복창케 하는 "국제적 의무를 다해 아프간 형제들을 도와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해서"서 드러납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던 소비에트가 사실은 아프간을 침략한 또 다른 제국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계처럼 구호를 외치는 병사들을 통해 증언하게 합니다. 이로써 제국주의와 소비에트는 동의어가 되고 아프간 침공의 명분은 허위임을 영화는 고발합니다.

아프간 오지 마을 수색에서 숨진 스타쉬를 안고 통곡하는 지오콘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소련군의 공중폭격으로 마을은 불바다가 되고 만다. ⓒ 아트 픽쳐스 그룹


이러한 아프간 침공의 허위를 영화는 두 곳에서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앞서 언급한 아프간 마을 수색에서 피투성이로 숨진 스타쉬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9중대원들의 뒤로 공중폭격으로 마을이 초토화되는 장면입니다. 전우 한 명의 죽음과 맞바꾼 마을주민들의 목숨은 베트남에서 미군 한 명과 베트남 주민들의 목숨을 맞바꾼 영화 <플래툰>과 다르지 않습니다. 평화를 사랑한 소비에트 명분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명분은 이 지점에서 동일한 궤에 놓여 있습니다. 침략의 역사는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 되풀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또 다른 장면은 3234고지에서의 마지막 전투입니다. 전투용 헬기를 이끌고 고지에 도착한 실존인물 발레리 대령은 유일한 생존자 라띠예프에게 "(아프간) 전쟁은 끝났다"고 말합니다. 사연인즉슨, 9중대의 무전기가 고장이나 종전이 돼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통신두절로 생때같은 목숨들이 버려진 3234고지에서 홀로 살아남은 라띠예프의 절규는 아프간의 계곡을 타고 하늘로 솟구쳐 올라 전 세계를 향해 외치듯이 처절하기만 합니다. 

무자헤딘과 지옥과 같은 전투를 치르고 혼자 살아남은 리따예프가 이미 종전이 됐다는 얘기를 뒤늦게 전해 듣고 울부짖고 있다. ⓒ 아트 픽쳐스 그룹


그리고 영화는 전투에서 살아남은 라띠예프의 독백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 당시의 사정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가 목숨 바쳐 지키고자 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2년 뒤에 사라질 것을 몰랐고, 더 이상 강대국에 포함되지 않을 것도 몰랐다…, 우리는 그 뒤로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위대한 군대가 우리를 잊을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되풀이되는 비극, 오바마가 아프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오바마 대통령의 미군 증파 계획의 뿌리는 미국 주도하의 테러와의 전쟁에 닿습니다. 소련의 붕괴 뒤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주변의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의 장악을 목적으로 한 '실크로드 전략법'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원을 안정적으로 운송하기 위한 송유관 확보의 한 가운데에 아프간이 놓여 있고 그래서 아프간 전쟁을 '파이프라인 전쟁'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른바 오바마의 '아프팍 전략'은 이 '실크로드 전략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선을 파키스탄까지 확대해 송유관의 안정적 확보를 기하는데 있으며, 이를 위해 미군 증파를 승인 연설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미국의 국익에 맞춰 아프간 재파병이라는 선물을 선사한 이명박 정부는 한국군은 전투부대가 아닌 지역 재건팀(PRT)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PRT를 "전투력의 중요한 일부로 아프간 전쟁에서 유용한 구실을 하고 있다"고 규정한 바 있으며, 실제로 미군의 아프간 PRT는 연합합동기동부대 예하 부대로 점령군의 일부입니다. 즉, PRT는 민간기구가 아니라 군대라는 것입니다.

침략과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아프간은 우리에게 고통스런 기억을 되살리는 곳입니다. 2007년에 아프간에 파병된 윤장호 하사가 목숨을 잃었고, 선교 목적의 자원봉사 활동을 갔던 한국인 23명이 인질로 잡혀 2명이 죽는 사태를 경험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참여정부는 아프간에 주둔해 있던 동의부대와 다산부대를 철수시켰으며, 다시는 병력을 파병하지 않겠다고 국민들에게 분명히 약속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과 2년 만에 재파병 약속을 하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파병을 다시 하겠다는 것입니다.

영화 <제9중대>의 배경이 되는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200만 명 이상의 아프간 국민들이 희생되었으며, 100만 명 이상의 무자헤딘 반군이 전사했습니다. 아울러 전 세계 NGO 단체들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다국적군의 공습에 의해 5백 명이 넘는 민간인 사상자가 났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적 범죄의 현장에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재파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친미정권을 매개로 천연자원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점령과 학살의 침공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다시 총을 든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요, 이명박 대통령님?


영화 <제9중대>는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 등을 위한 '아름다운 공존-다문화 영화제 2009'에서 볼 수 있습니다. 멀티플렉스 극장체인인 CJ CGV는 11월26일부터 CGV대학로(11월26∼29일), CGV안산(12월3∼6일), CGV구로(12월10∼11일), CGV인천(12월17∼18일) 등에서 4주간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작품을 상영합니다.

이번 영화제는 다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고 사회적 편견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기획됐습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상영되는 영화는 '제9중대'(러시아/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러블리 로즈'(베트남), '나그네와 마술사'(부탄/호주), '나는 인어공주'(러시아), '내 곁에 있어줘'(싱가포르), '드랙퀸 가무단'(대만), '몽골리안 핑퐁'(중국/몽골), '블랙'(인도), '시티즌 독'(태국), '엄마는 밸리댄서'(홍콩), '여우비'(말레이시아/홍콩), '옹박 더 레전드'(태국), '천국의 가장자리'(터키/독일), '터치 오브 스파이스'(터키/그리스) 등 총 14편(편당 6000원)이 상영됩니다.

아프간 재파병 제9중대 오바마 아프팍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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