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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애슬론이 뭐냐'는 질문이 제일 슬퍼요"

[평창인을 만나다⑩] 한국 바이애슬론 간판 문지희 -귀화 국가대표 안나 프롤리나·티모페이 랍신

18.02.11 20:51최종업데이트18.02.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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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한국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계스포츠는 대부분 비인기 종목으로 그동안 음지에 가려져 있던 분야였습니다. 동계스포츠 현장에서 내일의 희망을 키워가는 지도자, 관계자 등을 만났습니다. - 기자 말

바이애슬론 문지희 선수 ⓒ 이희훈


바이애슬론 ⓒ 이희훈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카운트다운을 하며 오는 9일 개막하지만 아직 바이애슬론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종목이다. 스키와 사격이 더해진 바이애슬론은 동계와 하계 스포츠가 결합해 즐거움이 배가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 대표팀이 여자 선수 5명, 남자 선수 1명이 참가한다.

오랫동안 바이애슬론 태극마크를 달고 세 번째 올림픽에 나서는 문지희(30 평창군청), 러시아에서 귀화해 한국 바이애슬론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하는 안나 프롤리나(34), 남자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하는 티모페이 랍신(30) 등 귀화 선수까지 더해져 이전 대회와는 다른 결과를 내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각오다. 여기에 문지희의 뒤를 이을 기대주로 고은정(22 전북체육회), 정주미(21 전북체육회)와 안나와 함께 귀화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예카테리나 에바쿠모바(28)까지 함께한다.

특히 평창을 앞두고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2016-2017 국제바이애슬론연맹(IBU) 월드컵 국가순위에서 20위에 진입해 동계올림픽 최초로 단체전에도 참가한다. 지난 1월 31일 강원도 평창으로 이들을 찾아갔다. 대표팀은 28일 유럽에서 귀국한 후 곧바로 평창으로 향해 마지막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안방에서 열리는 첫 올림픽에서 한국 바이애슬론은 차가운 설원 위를 뜨겁게 질주해 끝이 아닌 새 출발점을 세울 것이다.

[문지희] 평창은 '바이애슬론 애정'으로 가득할 것

바이애슬론 문지희 선수 ⓒ 이희훈


문지희는 한국 바이애슬론의 명맥을 이어온 주인공이다. 그가 있었기에 한국 바이애슬론이 지금껏 이어져 올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키와 소총을 매고 설원 위를 제치며 선수 생활을 한 지 어언 17년째. 중학교 입학을 앞둔 한 소녀는 친구의 유혹에 넘어간 그때 그 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06년 국가대표 생활을 시작한 후 태극마크만 벌써 13년째, 올림픽도 이번이 세 번째다.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시작해 평창을 오면서 점점 올림픽에 대해 크게 느끼고 있어요. 첫 올림픽이었던 밴쿠버 때는 월드컵과 같은 시합이라는 생각만 들었고, 소치 때부터 서서히 큰 경기라는 것이 생겼죠. 올림픽 전 세계가 가장 크게 주목하는 시합이고 정말 크잖아요. 평창을 앞두고 이제는 저 또한 그 열기를 느끼면서 두 대회와는 남다르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이애슬론 대표팀은 평창을 코앞에 둔 지난 1월 말까지도 유럽에서 열린 국제대회 출전해 마지막 기량 점검을 했다. 문지희를 비롯한 대표팀은 귀국 후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시차 적응과 함께 안드레이 코치의 지도 아래 몸 상태와 코스 운영 계획을 세우며 최종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대체 그게 뭐냐고'고 물을 정도로 한국에서 바이애슬론은 생소하다.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동계올림픽 종목 가운데 피겨, 아이스하키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 스키와 사격 두 종목을 모두 다뤄야 하는데, 최소 10km 이상 설원 위를 달려야 하니 체력에서도 극한의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지희는 뒤늦게 바이애슬론 '사랑'에 푹 빠졌다. 밴쿠버와 소치 올림픽을 나갔던 시점, 흥미를 잃고 방황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국내법 규정 등으로 소총을 자유자재로 소지할 수 없어 훈련에 제약도 따르고, 여름에는 눈이 없어 맨땅에서 롤러스케이트 등을 신고 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성적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으니 흥미를 잃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2016년을 기점으로 생각이 달라졌다.

"바이애슬론은 정말 힘든 종목이에요. 제가 알기로 복싱 다음으로 힘들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힘든 만큼 포기하고 싶지가 않아요. 하면 할수록 재밌어요. 그런데 이걸 깨닫고 나니 제 나이가 어느덧 31살이네요. 좀더 하고 싶은데 이렇게 나이가 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서글퍼졌죠. 그땐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2016년을 기점으로 바이애슬론의 매력을 느꼈고 알아가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열정으로 가득해졌어요.

유럽 선수들의 경우 방이나 숙소 등 어떤 곳에서 총기 소지가 가능해요. 그러다 보니 자세훈련 등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훈련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사격에서 뒤떨어져서 그 점을 보완하고 싶은데 마음껏 하지 못해 참 안타깝네요."

종목에 대해 애정이 증가하니 성적도 오르기 시작했다. 올 시즌 국제바이애슬론연맹(IBU) 월드컵 대회에서 문지희는 1, 2차 대회는 70위권에 머물렀지만, 3차 대회에서는 30위로 급격하게 상승했다. 지난달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유럽선수권 대회에서도 40위에 올랐다. 30~40위 숫자를 보고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지만, 종목 특성상 변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30위권 안에 들 경우 대부분 메달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분류된다.

혹자들은 사람들에게 묻고는 한다. '바이애슬론이 대체 뭐지?' 선수들에게 있어 힘든 순간은 많았지만,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문지희는 가장 가슴 아팠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포기란 없었다. 자신이 내딛는 한 걸음이 곧 한국 바이애슬론의 미래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 번째 올림픽인 평창은, 바이애슬론을 향한 즐거움과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번 평창 경기 지켜봐 주실 때 사격을 중점적으로 보시면 바이애슬론을 더 즐겁게 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기쁨을 안겨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나 프롤리나] 한국 사상 첫 메달 도전

바이애슬론 안나플로리나 선수 ⓒ 이희훈


평창을 앞두고 한국 바이애슬론 대표팀에는 '푸른 눈을 지닌 한국 대표'도 생겼다. 2016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안나 프롤리나가 그 주인공이다. 안나는 러시아 바이애슬론 국가대표로서 이미 9년 전 평창에 방문했던 기억도 있다. 2009년 세계선수권 대회가 평창에서 열렸는데 당시 안나는 여자 계주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스프린트 대회는 4위를 차지했다. 안나는 당시의 추억을 또렷이 기억하며 "코스나 환경 등이 매우 친숙하다"며 웃었다.

이후 자국에서 열렸던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그는 출산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다시 선수 생활을 복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러시아에서 그가 설 수 있었던 자리는 없었다. 그때 한국으로부터 귀화 제의를 받고 모두의 축하와 응원 속에 한국 국적을 취득해 태극전사가 됐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아주 좋았습니다. 생활하는 데도 큰 불편함도 없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만 매운 음식은 어렵네요."

최근 성적에서도 안나는 '평창 기대주'로 꼽히기에 충분했다. 안나는 올 시즌 IBU 월드컵에서 3차 대회 19위로 출발해 4차 대회에서는 8위에 오르며 '톱10'에 들었다. 올림픽을 앞둔 마지막 대회였던 유럽선수권에서는 6위까지 순위가 상승했다. 안나는 몸 상태를 유지해 평창에서 한국 선수 사상 첫 바이애슬론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다.

"올림픽은 제게 있어 큰 행사입니다. 사실 이곳에 설 수 있고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입니다. 평창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며, 한국분들에게도 바이애슬론이라는 종목이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티모페이 랍신] 한국에 찾아온 '바이애슬론 전도사'

바이애슬론 티모페이 랍신 선수 ⓒ 이희훈


한편 평창에서 남자대표로는 티모페이 랍신이 홀로 출전한다. 랍신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러시아 국가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간판급 선수로, 월드컵에서도 6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베테랑이다. 하지만 러시아 내 파벌 다툼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때 한국과 우크라이나로부터 귀화 제의를 받았고, 그는 최종적으로 한국을 선택해 특별귀화 심사를 거쳐 태극마크를 달고 생애 첫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한국과 우크라이나 중에서 고민하던 당시, 제가 아는 트레이너분이 한국에 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이 더 끌리는 느낌이 있었죠. 또 한국에서는 아직 바이애슬론이 유명하지 않다고 알고 있었는데, 제가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에 바이애슬론은 널리 알고 싶었습니다. (웃음) 저는 지금까지도 한국 국적을 택해 온 것에 대해 전혀 아쉽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위기도 있었다. 지난해 5월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으며 대표팀의 여름 전지훈련에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복이 빠른 덕에 월드컵에는 무리 없이 출전했다. 랍신에게 현재 몸 상태와 부상 회복 정도를 묻자 그는 자신 있게 손을 흔들며 '완벽하다'라고 말해 웃음을 유발하며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함께 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라고 말하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랍신은 올 시즌 월드컵 2, 4, 5차 대회에 출전했는데 모두 20위권의 성적을 냈다. 특히 남자 10km 스프린트 경기에서는 3차 8위, 4차 14위를 차지했다. 랍신은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쉬웠을 뿐"이라며 평창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랍신은 이제는 완전히 '한국인'이 다 됐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매운 음식을 사랑하는 팬이었다. 실제로 이날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는 대표팀 선수와 코치진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랍신은 고추장 양념이 듬뿍 들어갔던 오삼불고기를 거침없이 먹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좋았습니다. 모스크바에 있었을 때도 한국음식을 찾아다니면서 먹었을 정도였으니깐요."

새로운 국적으로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을 노리는 랍신은 바이애슬론의 특징은 '예측할 수 없는 점'을 꼽으며 응원을 부탁했다.

"바이애슬론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사격부터 시작해 경기장의 바람까지 모든 것이 우리의 경기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다고 장담합니다. 많이 봐주시고 응원해주십시오. 평창 동계올림픽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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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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