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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티브 뒤에 가려진 현장실습생의 '참담한' 죽음

[리뷰] 영화 <다음 소희>

23.02.14 11:12최종업데이트23.02.1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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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안무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소희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가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소재로 했다는 점을 아는 관객이라면 첫 장면부터 편한 마음으로 지켜보기가 어렵다. 춤을 추고 있는 소녀가 바로 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소희가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크고 작은 멸시와 모욕을 버티다 겨우 도달한 곳이 결국 '죽음'이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하니까.

고강도의 감정노동과 부당한 근로 환경을 견디던 소희는 끝내 스스로 죽음을 택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이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죽음에 더 가깝다. 그렇게 보면 이 문제는 현장실습생이라는 피해자와 이들을 착취한 기업이라는 가해자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다음 소희>는 소희의 죽음에 얽히고 설킨 구조적인 한계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동시에 그 구조 속의 개인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인센티브' 뒤에 가려진 죽음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소희는 어떻게든 고객의 '해지'를 막아야 하는 콜센터 해지방어팀에서 실적 1위를 했다. 매일 전화기 너머로 쏟아지는 고객들의 분노와 욕설, 심지어는 성희롱 발언까지 견디며 일한 결과다.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계산대로라면 월급은 300만 원이 넘어야 하지만, 월급명세서에 찍힌 숫자는 최저임금에도 턱없이 모자라다. 따져묻는 소희에게 팀장은 말한다.

"넌 아직 수습이잖아."

그 한마디로 회사가 저지르는 모든 부조리는 '당연한 것'으로 둔갑한다.

소희를 죽음으로 내몬 건 비단 회사의 인센티브만은 아니었다. 사건 담당 형사인 유진이 소희의 고등학교를 찾아가자 교사의 입에서 나온 단어도 '인센티브'였다. 취업률로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상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취업시켜야만 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지역 교육청에서도 장학사는 교육부의 인센티브를 들먹이며 이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인센티브'는 회사가 실습생을 농락하는 수단이 되었다가, 취업률을 높여 지원을 더 받기 위해서라는 학교와 교육청의 변명이 되었다가, 결국 한 사람을 옥죄는 사슬이 된다. 영화에서 유진이 만난 대부분의 어른들은 입을 모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구조와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정작 소희에 대해서는 "그럴 애가 아니었다"거나 "원래 문제가 많은 애였다"라며 죽음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기 급급하다.

변명하는 어른과 책임지는 어른 사이에서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영화는 "이대로라면 '다음 소희'가 계속 생겨날 것"이라고 말하는 대신, 소희의 친구들과 동료들을 통해 다음 소희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콜센터 직원에서 백화점 안내원, 택배기사로 그 자리만 바뀌었을 뿐 현장실습생들이 일터에서 겪는 문제는 어디서든 반복된다. 그리고 그들 곁에 울타리가 되어줄 어른은 가정에도, 학교에도, 회사에도 아무도 없다.

"적당히 하십시다. 이제 교육부 가실랍니까? 그 다음은요?"

분노하는 유진을 향해 장학사가 내뱉은 이 말은 서늘하고 무력하다. 당신이 아무리 애써봤자 이 견고한 시스템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쉽게 절망하게 하는 강렬한 메시지다.

우리 사회가 그렇듯, 영화에는 현실을 외면하고도 끝내 떳떳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속시원한 결말은 없다. 유진이 형사로서 이들을 단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인간으로서,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에서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소희와 비슷하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태준을 만나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나한테 말해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그 말에 "고맙습니다"라
며 펑펑 우는 태준의 모습에서 우리는 살릴 수 있었던 많은 소희의 얼굴을 본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이 죽음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분노 대신 <다음 소희>를 만들었다. 정주리 감독은 자신도 이 문제를 반복하게 만든 사회의 일원이라는 반성과 부채로 영화를 만들었고, 유진 역을 연기한 배우 배두나는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생각하지 못하던 것들을 되짚어 주기 위해" 출연을 결심했다. 불편함을 예견하고도 이 영화를 보기로 선택한 관객의 마음 또한 아마 비슷할 것이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잘못했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사회. <다음 소희>는 그 구조 안에서 나는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를 묻는 영화다.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시스템을 단번에 무너뜨리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곁의 누군가를 잃지 않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다음소희 배두나 정주리 김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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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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