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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작은 골방에 아이들이 모여드는 이유

[김성호의 씨네만세 477] 제1회 반짝다큐페스티발 <곁에 서다>

23.04.03 15:22최종업데이트23.04.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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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한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연락을 해왔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이라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다큐를 만들고 즐기는 이들이 모이는 축제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지 않겠느냐며 내게 글 몇 편을 요청해왔다. 정부 지원 한 푼 없이 열리는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제인 탓에 프로그램북도 만들지 못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노트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냔 것이었다. 나는 두 편의 글을 써주었고, 개중 하나가 <곁에 서다>라는 작품에 대한 글이었다.
 
반짝다큐페스티발 이전 한국 다큐 영화제는 크게 셋이 있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문을 닫은 인디다큐페스티발과 EBS 국제다큐영화제, 또 DMZ 국제다큐영화제가 그것이다. 극장 개봉을 기대하기 어렵고 OTT 사업자나 공룡 배급자들이 좋은 다큐를 발굴하려 발품을 팔지도 않는 오늘의 한국에서 다큐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가 바로 다큐영화제였다.
 
특히 인디다큐페스티발은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된 지점이 분명 있었는데, 그건 영화제에 참여한 이들 간의 적극적 교류며 풀뿌리라 불러도 좋을 참여에 대한 것이었다. 때문에 다른 영화제와 달리 페스티발이란 단어가 명칭에 붙은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 영화제가 사라진 뒤 비슷한 영화축제를 바라는 다큐인의 요구가 줄을 잇기도 했다.
 
그 결과 어느 선배 다큐인의 풀뿌리 자금 쾌척과 이어진 후원들을 모아서 간신히 삼일간의 영화제를 열게 되니 제1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열리게 된 경위가 이러하다 하겠다.
 

▲ 곁에 서다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그저 곁에 서는 것만으로도
 
다큐가 중요한 건 세상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이들의 삶을 관객 앞에 들어다 전한다는 점에 있다. 힘겨운 싸움이란 건 다큐와 영화제 또한 마찬가지이겠으나 누군가 보고 관심을 가져 더는 홀로 고립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해결의 실마리이자 살아갈 용기가 되곤 하기도 한다.
 
프로그램 노트를 써달라고 요청받은 영화 <곁에 서다> 또한 그런 삶에 대한 다큐였다. 인터넷도, 학원도, 온갖 교육 보조재가 발전하는 세상에서 묵묵히 공부방 운동을 해나가는 이들의 지난 시간이 이 중편 다큐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는 인천 어느 쪽방에 위치한 공부방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기찻길 옆에 있어서인지, 또 단순한 공부방을 넘어 배움의 터전을 꿈꿔서인지 공부방의 이름은 '기찻길옆작은학교'다.
 
5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기찻길옆작은학교에 대한 기록이다. 인천시 동구 만석동에 터를 둔 30년 된 이 학교는 정식 학교가 아닌 공부방이다. 산업화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이촌향도와 도시화의 절정에서 태동한 공부방 운동이 이곳의 모태가 됐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겠다고 도시로 몰려든 이들이 고스란히 도시빈민이 되었다. 그들의 아이들은 부모가 일터로 나간 동안 쪽방에 남겨지기 일쑤였다. 그 고립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고, 다시 그로부터 더욱 큰 변화를 일깨우는 게 다사다난했던 공부방 운동의 변치 않는 지향이었다.
 

▲ 곁에 서다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능력에 따른 균등한 교육, 이뤄지고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①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왜 빈민인가? 헌법은 균등한 교육을 말한다. 전제는 능력이지 재산도 권력도 다른 무엇도 아니다. 능력에 따른 균등한 교육은 그러나 실천되고 있는가. 기찻길옆작은학교가 주목한 것은 무너지는, 그러나 지켜져야만 하는 사회적 질서다. 영화는 똑같은 골방일지라도 다르다고 말한다. 부모 없는 빈 집 대신 이모와 삼촌들이 웃으며 기다리는 그 골방은 다르다고 말이다. 가진 자의 자식과 없는 자의 자식이 달라지는 건 방과 후부터다. 아무도 없는 빈 집으로, 돌봄과 교육의 공백으로 돌아갈 아이들에게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는 일은 그래서 공적 가치의 달성이다. 공부방에 대한 지원은 공적 영역의 수복이다.
 
영화는 공부방 운동의 넓고 긴 역사의 어느 한 곳을 다룬다. 기찻길옆작은학교의 한 해와 지나온 시간들을 오가며 그곳에 몸 담고 몸 담았었던 이들을 만난다. 1987년 설립됐으니 올해로 서른일곱이다. 영화가 제작된 건 7년 전, 갓 서른이 되던 때다. 상근자 김수연씨는 말한다. 부딪치고 힘들어하고 다시 또 선택하고 마는 서른 번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있었다고. 매번 같았던 그 부딪침을 우리는 더 수월하게 해줄 수 없었던 걸까.
 
<곁에 서다>가 보여주는 현장 앞에서 반짝다큐페스티발에 참여한 많은 관객이 무언가를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잊혀지는, 그러나 가치 있는 무엇이 그래도 지켜져야만 한다고, 그렇게 믿는 이들로 가득한 페스티발 현장이었다. 공부방 운동도, 이 다큐를 찍은 이들도, 이 다큐를 보러 온 이들도 모두 그랬다. 그들은 교육도 다큐도, 또한 영화제까지도 반드시 지켜지고 세워져야 한다고 그렇게 믿는 것이다.  
 
이들의 수고를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 한켠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 곁에 서다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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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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